▲ 지인진은… ●출생 1973년 7월 18일(서울) ●신체 키 172cm 체중 70kg ●출신교 당곡고등학교 ●데뷔 1991년 프로복싱 입문 ●경력 전 WBC 페더급 세계 챔피언 2006 KBC 12월의 복서 2008년 2월 K-1 아시아 맥스 서울대회(VS 가지와라 류지). | ||
#장면 2: 복싱 은퇴 후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공사판 허드렛일이나 버스 운전기사직을 알아보던 중에 만나게 된 K-1. 당장 돈이 급했던 그로선 전직 복싱 챔피언이란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계약금 1억 원에 K-1과 인연을 맺게 된다. 전 WBA 슈퍼페더급 챔피언 최용수(37).
당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복싱 챔피언들의 K-1으로의 전향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복싱계에서 매니저, 프로모터 등의 지저분한 계산법으로 돈에 대해 상처를 안았던 그들은 K-1에서마저 돈 문제로 인해 격투기 무대를 떠나게 된다. 현재 지인진은 남은 계약금 8000만 원을 지급하라며 K-1 주관사인 FEG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고 최용수는 자신의 소속사인 티엔터테인먼트로부터 1000만 원을 다 못 받았다며 억울함을 토로한다. 지난 7월 14일과 16일 지인진과 최용수를 각각 따로 만나 속사정을 들어봤다.
경기도 화성시 반송동에 위치한 지인진복싱체육관. 50여 평의 넓은 체육관 안에는 링과 각종 웨이트트레이닝 기구들이 보기 좋게 놓여 있었다. WBA 플라이급 세계2위까지 올랐던 임성태 관장과 함께 체육관을 운영하는 지인진은 기자가 찾아간 날 복싱선수를 꿈꾸는 한 직장인 관원을 붙잡고 지도에 여념이 없었다. K-1 무대에서 접한 지인진의 모습이 약간은 어설픈 격투기 선수의 모양새였다면 복싱계로 다시 돌아온 지도자 지인진은 맞춤옷을 입은 것마냥 편안해 보였고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잠시 후 지인진과 함께 체육관 근처의 곱창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연스레 소주를 곁들였는데 지인진은 친정인 복싱으로 돌아오니까 마음만큼은 홀가분하다며 술잔을 비웠다.
“제가 챔피언 벨트를 반납하면서까지 복싱계를 떠난 가장 큰 이유는 돈 때문이었어요. 챔피언이, 그것도 세계챔피언이 돈 문제로 전전긍긍하면서 가족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싫었거든요. 늘어나는 건 빚밖에 없었고 아내는 계속 살기 힘들다고 하고 아이들은 유치원조차 보낼 형편도 안 됐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지인진이 멕시코 복서 루돌프 로페스한테 빼앗겼던 챔피언 벨트를 다시 되찾아올 때 받은 대전료가 800만 원이었다고 한다. 스폰서도 없는 상황이라 지인진의 1년 수입은 800만 원이 전부였다.
“대전료를 받아도 생활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는 거예요. 그때 (최)용수 형이 계약금을 받고 K-1으로 가는 걸 보니까 ‘나도 한 번?’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복싱계 선후배들이 ‘배신자’ 운운하며 만류하셨지만 복싱계의 열악한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는 ‘가라’고 해주셨죠. 하지만 끝까지 반대한 사람이 용수 형이었어요. 전직 챔프가 격투기를 하는 건 자기 혼자로 충분하다고요. 결국 FEG와 의견 조율 끝에 계약에 합의를 했습니다.”
지인진이 FEG와 계약을 맺은 조건은 계약금 2억 원과 1년에 세 차례의 경기를 뛰는 것이었다. 지인진은 불규칙한 수입으로 너무나 힘들게 생활했기 때문에 FEG 측에 대전료를 월급으로 나눠서 지급해 줄 것을 요구했고 FEG 측에선 한 달에 700만 원씩 통장에 입금시켜줬다. 즉 경기를 한 번을 하든, 두 번을 하든 지인진은 매달 700만 원씩 월급을 받아온 것.
그런데 처음 계약할 때 주기로 했던 계약금은 1억 원만 먼저 지불했고 나머지 1억 원은 2009년 3월 안에 주기로 했는데 그때까지 계약금이 지급되지 않자, 지인진은 지난 3월 맥스코리아대회를 앞두고 훈련 보이콧에 들어갔다.
“일단 시합을 앞두고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떠났어요. 그런데 약속한 날짜에 계약금이 들어오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티엔터테인먼트의 양명규 이사한테 경기를 뛰지 않겠다고 했더니 먼저 2000만 원을 입금하고 나머지 8000만 원은 경기 후에 지급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것도 용수 형이 돈 문제로 경기를 뛰지 않겠다고 하면서 용수 형 상대인 가류신고가 제 상대 선수가 돼 버렸어요. 훈련 과정도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경기 일주일 앞두고 상대 선수가 바뀌니까 제정신이 아니었죠.”
“아무리 복싱챔피언이었다고 해도 K-1에 쉽게 적응할 수가 없었어요. 오랫동안 몸에 밴 스타일 때문이죠. 그런데 K-1에서는 당장 성적을 내길 바랐어요. 처음부터 화끈하고 화려한 승리로 팬 몰이를 하고 싶어 했죠. 그런데 제 몸이 따라주질 못했던 겁니다.”지인진은 가류 신고와의 경기 이후에 FEG 측에 최후 통첩을 한다. 그때까지 계속해서 계약금 지급을 미루는 FEG 측에 법정 소송을 불사하겠다는 내용 증명을 보냈던 것이다.
“복싱을 떠난 게 돈 문제 때문이었는데 K-1 와서도 돈 때문에 얽히는 게 너무 싫었어요. 계약금이란 건 그 선수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에 주는 돈이잖아요. 그 해 성적을 보고 계약금을 깎거나 되돌려 받는 게 아니란 말이죠. FEG 측에선 제가 8000만 원을 마저 지급해 달라고 하니까 저더러 K-1 와서 한 게 뭐가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경기를 못 뛴 건 FEG 측에서 대회를 못 잡아서 그런 것이고 1승1패의 성적을 올린 건 적응할 시간이 부족했던 탓이라 저도 할 말이 있었어요. 그러다 나중에 FEG 측에선 아예 8000만 원도 줄 수 없으니 소송을 하려면 마음대로 하라는 반응이었고 일방적으로 저와의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대응했습니다.”
지인진은 일부러 시합을 안 한 것도, 훈련이 하기 싫다고 도망가지도 않았는데 몇 번 써보더니 더 이상 필요가 없을 것 같으니까 계약금을 주지 못하겠다며 계약까지 파기한 FEG코리아의 처사를 도통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계약 파기를 했다고 주기로 했던 계약금을 안 줘도 되는 건가요? FEG 측에선 ‘배째라’하는 식이에요. 그래서 더 화가 났습니다. 솔직히 지금 심정으론 기자회견이라도 열어서 FEG 측의 비상식적인 행태에 대해 낱낱이 까발리고 싶어요. 더 이상 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말이죠. 그런데 지금 저 말고도 계약금을 받지 못한 선수가 한두 명이 아닙니다. 씨름 김영현, 박용수, 윤동식, 최홍만 선수랑 외국인 선수들도 돈 문제로 얽혀 있다고 들었거든요.”
지인진과의 격정 취중토크를 마치고 이틀 후 경기도 시흥시에 살고 있는 최용수를 찾아갔다. 최용수와도 역시 가벼운 술자리를 갖게 됐는데 최용수는 K-1 선수로 뛴 3년의 시간들이 자신한테 또 다른 굴레를 씌웠다고 토로했다.
“(지)인진이는 FEG코리아랑 계약을 했고 티엔터테인먼트는 매니저 역할을 했어요. 전 FEG가 아닌 티엔터테인먼트랑 직접 계약을 했고요. 그런데 티엔터테인먼트도 FEG코리아에 속한 회사나 마찬가지라 이 돈이든 저 돈이든 나오는 출처는 비슷한 셈이죠. K-1 한국프로모터로 계시는 양명규 이사가 티엔터테인먼트 이사도 겸하고 계시거든요. 즉 전 양 이사님이랑 계약돼 있었어요. 그 분이 저랑 처음 접촉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복싱처럼 돈 문제로 지저분하게 만들진 않겠다’라고요. 그런데 알고 보니 K-1이 복싱보다 더한 것 같아요.”
▲ 최용수는… ●출생 1972년 8월 20일(충남) ●신체 키 178cm 체중 66kg ●경력 전 WBA 슈퍼페더급 챔피언 2006년 9월 K-1 칸 서울대회(VS 드리튼 라마) 2007년 7월 K-1 칸 세계대항전(VS 스즈키 사토루) 2009 최용수복싱클럽 운영. | ||
“처음엔 2월에 준다고 했다가 3월 초, 3월 말로 계속 연기되더라고요. 매니저를 통해 확인을 해봤지만 ‘곧 주겠다’는 얘기만 했어요. 그러다 FEG코리아가 세워지면서 회사를 통해 5000만 원을 빌린 적이 있거든요. 나중에 그 빌린 돈을 대전료로 치자고 하더라고요. 그런 후 2009년 3월 게임이 잡혔어요. 저랑 회사와의 계약은 2009년 2월까지였거든요. 양 이사님은 대전료 없이 게임을 뛰라고 하시더라고요. 1년에 3번 게임을 뛰기로 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두 게임을 못 뛰었으니 무보수로 뛰어달라고. 그게 말이 됩니까? 절 뛰게 하려면 다시 계약을 하든가, 아니면 대전료를 주고 뛰라고 해야죠. 그래서 논란 끝에 가짜 깁스 사건이 나오게 된 겁니다.”
최용수는 2009년 3월 맥스코리아 대회를 일주일 앞두고 경기 보이콧을 선언했다. 티엔터테인먼트 측에선 대전료 없이 경기에 뛸 것을 요구했고 최용수는 한 푼도 못주겠다는 회사 측의 반응에 서운한 나머지 경기 불참을 선언한 것이다. 이미 가류 신고와 대결을 펼치기로 알려진 마당에 최용수가 갑자기 뛰지 않겠다고 하면 여론의 뭇매를 맞을 건 뻔한 일이었다. 내부 사정을 공개할 수 없는 회사와 최용수는 거짓 부상을 생각해 냈고 멀쩡한 팔에 반깁스를 하는 촌극을 벌였다(<일요신문> 880호 단독보도).
“티엔터테인먼트 관계자 분들은 정말 좋았어요. 인간적으로 많은 교류도 있었고요. 그러나 경제적인 관계가 명확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 관계가 계속 이어지긴 어려운 것 같아요. 회사 측에서 최용수란 사람을 K-1 무대에 올린 건 뭔가 상업적인 효과를 노린 거잖아요. 전 그에 응했고 그로 인해 경제적인 도움을 받았고요. K-1에서 마무리를 잘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매듭짓질 못해 안타까워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신뢰, 이런 게 가장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얼마 전부터 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는 최용수. 혹시나 싶어 복싱으로 다시 돌아갈 의향이 있느냐고 묻자 최용수는 아주 단호한 표정으로 “전혀요. 다시 글러브를 잡긴 싫어요. 복싱에선 그냥 전 세계챔피언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이영미 기자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