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믿는 구석은 무엇이었나
역시 가장 큰 의문점은 “결국 이렇게 될 거면서 오리온스와 김승현은 왜 그렇게 경솔하게 행동했나”다. 김승현이 2006년 총액 52억 5000만 원에 5년 계약을 했다는 사실은 농구계 전반에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후 허리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된 활약을 펼치지 못한 김승현이 언젠가 구단으로부터 철퇴를 맞을 것이라는 예상 또한 그리 놀랄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김승현이 대기업 ‘오리온’을 모기업으로 하는 구단을 상대로 철저한 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오리온스 구단은 “계약서고 뭐고 더 이상은 돈 못 주겠다. 소송 하려면 해라” 식의 ‘막가파식’ 행동을 했다. 동료 선수와 언론 등 농구계 전반에서 이미 ‘공공의 적’이 될 정도로 인심을 잃은 김승현이 아니었다면 당연히 선수의 편을 들어주는 분위기가 형성됐어야 했다.
김승현을 오랫동안 지켜본 한 지인은 “오리온스는 설사 민사소송까지 가더라도 잔여연봉을 100%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미리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반면 김승현과 아버지 김찬호 씨는 민사소송으로 가면 당연히 승소할 것으로 판단했다. 물론 은퇴를 불사한 각오였다. 이 부분에서 “최악의 경우 은퇴를 하더라도 중국리그 등 해외로 진출하면 지금보다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지인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 ▲ KBL 연봉조정 관련 재정위원회에 참석한 김승현. -뉴시스 | ||
#왜 극단으로 치달았나
사실 김승현은 2년 전부터 허리에 이상을 느끼고 수술을 받고자 했다. 그러나 50억 원이 넘는 계약서에 사인을 해준 구단 입장에서 김승현에게 수술을 받게 하고 한 시즌을 통째로 쉬게 할 수는 없었다. 10억 5000만 원의 연봉을 받는 선수가 1년 내내 병원에서 혹은 벤치에만 앉아있다면 구단 관계자 중 누구 한 명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구단 입장에서도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허리부상에도 골프장에 드나들고 강남 한복판 클럽에서 자주 목격될 만큼 자유분방한 김승현이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는다 해도 성실하게 재활에 임해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도 어려웠다.
결국 김승현은 갈수록 악화되는 허리를 부여잡고 뛸 수밖에 없었다. 김승현은 오리온스와 연봉 공방을 벌이던 도중 “내 허리부상은 구단도 책임이 있다”고 항변했다. 이런 생각이 점점 깊어지던 도중 심용섭 단장이 “이전 계약서는 전(前) 단장과 체결한 것이니 더 이상 효력이 없다”고 막무가내로 우기고 나서니 이성을 잃을 만도 했다.
결국 김승현은 KBL 재정위원회에 출석해 이면계약서를 던지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하고 만다. 누가 봐도 “혼자서는 죽지 않겠다”는 식의 행동이다.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 구단에게도 씻지 못할 상처를 안기겠다는 각오였다.
김승현은 이처럼 극단적인 행동을 모두 저지른 뒤에 자신이 민사소송을 통해서도 100% 잔여연봉을 받기 힘들고 구단과 연맹의 동의 없이는 해외진출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