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청소년 바둑 대축제에 14개국 1000여 명의 청소년, 학부모, 관계자들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뤘다. | ||
최근 침체 기미를 보이고 있는 청소년 바둑의 새로운 붐 조성을 위한 계기를 만든다는 취지로 기획된 이번 행사는 몇 가지 기록을 남겼다. 우선 규모에서 사상 초유-최대였다.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열렸던 아마추어 바둑 행사로 이만 한 예산과 규모는 없었다. 또 그동안 우리가 주최한 세계 아마추어 대회는 대개 왕복 항공료는 물론이고 숙식에서 관광까지 체재비 일체를 주최 측에서 부담하는 것이 관례 비슷했었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오히려 선수 한 사람당 참가비 12만 원을 받았다. 학부모가 선수들을 따라오는 경우, 4인 1실, 하루 세 끼 식사 제공 기준으로 8만 원을 받았다. 이런 게 맞다. 우리가 바둑 최선진-최강국이라 해서 일방적으로 베풀 때는 지난 것.
아마추어 행사에 프로기사가 대거 동참한 것도 이례적인 일. 조훈현 9단, 서봉수 9단, 이창호 9단을 비롯해 대회 조직위원인 양재호 9단, 유창혁 9단과 심판위원 18명, 도장을 운영하는 프로기사, 자원봉사차 내려온 프로기사, 여름휴가 겸 가족을 동반하고 들른 프로기사 등 120여 명의 프로기사가 행사장 곳곳에서 팬 서비스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얼마 전 휴직계를 낸 이세돌 9단도 밝은 얼굴로 전야제에 참석, 가장 큰 박수를 받았고 이틀을 머문 후에 올라갔다.
이벤트가 돋보인 것도 이번 대회의 특기 사항. 외국인과 한국 소년들, 프로기사가 한 팀이 되는 팀 대항전, 프로와의 9줄 바둑, 경포대 해변 다면기 등은 물론 바둑을 주제로 한 골든벨, 빙고 게임, 스피드퀴즈 등은 바둑 행사와 잘 어울리는 프로그램이면서 재미도 있어 반응이 아주 좋았고, 행사장 주변에 설치된 부스에서는 브리지와 체스, 세계 특허를 냈다는 컬러바둑알 등이 어린이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중국과 일본의 프로기사와 바둑 관계자들이 행사를 벤치마킹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그들은 이구동성 “이번 축제를 보고 배우러 왔는데, 크게 감동했다”면서 눈을 빛냈다. 이에 대해 축제 조직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았던 박치문 중앙일보 바둑전문위원은 “바둑은 지구상에서 비교 대상을 찾을 수 없는 최고의 지적 게임이지만 전자게임에 밀려 서서히 유소년들의 물줄기가 말라가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바둑 지도자들도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바둑이 10년 후엔 큰 위기를 맞을 것이란 점에 공감하고 있기에 이번 축제를 보는 눈이 남달랐던 것”이라고 말한다.
첫 행사치고는 분명 기대 이상이었으나, 첫 행사였던 만큼 문제점도 한두 가지 있었다. 우선 어린이 청소년들이 4일 동안 메인토너 6국, 속기 6국을 소화하는 일정은 다소 무리였다는 것. 대국 수를 줄이고 교육이나 견학 관광 등의 프로그램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대회 일정이 수시로 바뀐 것도, 시정되어야 할 것으로 지적되었다.
어쨌거나 바둑 약세 지역으로 꼽히는 강원도와 강릉이 세계적인 바둑 행사를 유치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행사지가 강릉으로 결정된 것은 최명희 강릉시장과 강릉영동대학 현인숙 이사장이 열정적으로 유치에 힘을 기울인 덕분이었다. 현 이사장은 서능욱 9단의 부인. 지금은 대단한 추진력의 사업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행사에도 구상 단계에서부터 동참하면서 문광부와 강원도, 강릉시 관계자들을 수없이 만나 설득을 거듭, 예산 마련과 장소 선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