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스승 전창진 감독을 다시 만난 신기성. ‘나를 가장 잘 아는 감독 밑에서 다시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며 파이팅을 외쳤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전 감독 부임소식 “난 죽었다”
신기성한테 던진 첫 번째 질문은 “전창진 감독이 KT로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이었다. 전 감독이 “나 있는 거 신경쓰지 말고 솔직하게 대답하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솔직히 반반이었어요. 처음엔 ‘아, 난 죽었다!’ 싶었는데 그 다음에 떠오른 생각은 ‘나를 가장 잘 아는 감독님이라 감독님 밑에서 다시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TG삼보(현 원주동부) 시절, FA가 돼 팀을 떠나올 때 죄송한 마음이 너무 컸거든요. 저로 인해 감독님이 많이 시달리시기도 했었고요. 제 농구인생의 마무리를 감독님과 함께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란 생각이 가장 컸습니다.”
신기성은 2005년 전창진 감독을 떠나 부산 KTF로 이적했었다. TG삼보에서 치른 2004-05시즌 통합우승 당시 정규리그 MVP를 차지한 후 곧장 KTF로 떠난 그는 당시 여론으로부터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프로의 논리상 몸값을 더 많이 주는 곳으로 가는 건 당연했는데 워낙 TG삼보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아 마치 자신의 배만 부르게 하려고 팀을 버린 ‘배은망덕한’ 선수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당시엔 정말 힘들었어요. 아무리 프로 선수라고 해도 인간적으로 너무나 힘든 결정이었거든요. 제가 나온 후 팀이 더 잘 되길 바랐는데 한동안 재정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모습을 보여주더라고요. 괜히 저 혼자 잘되려고 팀을 떠난 것 같아 몸둘 바를 몰랐죠. 더욱이 언론에선 ‘배신’ 운운하면서 비난을 퍼부었어요. 그래도 그땐 이런저런 해명을 하지 않았어요.”
▲ 지난 2월에 열린 프로농구 올스타전에서 신기성 선수가 드리블을 하고 있다. | ||
“만약에 기성이가 의리 때문에 팀에 남겠다고 했다면 제가 나서서 가라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저랑 친한 기자들이 오히려 절 위로한다는 차원에서 기성이를 힘들게 하는 기사를 썼었어요. 그땐 TG삼보가 춥고 배고픈 시절이라 신기성이 부잣집으로 이사간다고 해서 더더욱 오해가 많았습니다. 그런 부분 때문에 오히려 제가 더 미안했어요. 기성이한테.”
전 감독은 사람 사는 게 재미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자신이 신기성을 좇아 KTF(현 KT)로 옮겨올지 4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신기성 또한 KT에서 전 감독과 다시 사제지간의 연을 맺을지 꿈도 꾸지 못했다고 한다. 공식적으론 스승과 감독이지만 체육관 밖에선 큰형과 막내동생 같은 살가운 면면을 보여준다.
술 한 잔 입에 못 대면서도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박사급’인 전 감독이 한마디 더 첨가한다.
“그런데 기성이는 KTF로 오면서 돈 많이 받고 왔지만 전 그냥 팀에서 주는 대로 받았어요. 어디선 제가 계약금까지 받았다고 사실무근의 소문을 남발하던데 진짜 돈 욕심 내지 않았다니까. 기성이랑 저랑은 모양새가 완전 다르다구.”
워낙 씀씀이가 크고 좋아서 구단 직원들 사이에서 ‘뚫린 지갑’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전 감독. 전 감독이 KT로 오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 신기성의 부활이었다. 지난 두 시즌 동안 부진을 거듭하며 침체기에 빠져있는 신기성이 다시 살아나야 다른 선수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신기성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고 한다.
“KTF로 옮겨온 뒤 이상하게 어려운 문제들이 많았어요. 제 자신도 문제가 있었고 팀 분위기도 그랬고, 그러다보니 성적도 안 좋고…. 한마디로 추락하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갈피를 잡지 못했어요. 누군가 잡아준 사람도 없었고요. 그럴 때 전 감독님이 오시게 된 거예요. 변화가 절실할 때, 뭔가 계기가 필요했을 때 감독님이 짠 하고 나타나신 거죠. 뭔가 할 수 있다는 의욕이 생겨요. 용기도 샘솟고요.”
4차례 ‘170클럽’ 역대 최다
신기성이 누구인가? 스피드에 관해선 일가견이 있다고 인정받는 이상민(삼성), 김승현(오리온스) 등 수준급 가드들보다 한 차원 더 빠른, 신기에 가까운 스피드를 자랑하는 그는 별명도 ‘총알 탄 사나이’. 올 초에는 ‘170클럽’(야투성공률 50%, 3점슛 성공률 40%, 자유투성공률 80%를 합친 숫자로 한 시즌 동안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달성한 것을 의미한다. 즉 170클럽은 어떤 상황에서도 다득점을 올리는 전천후 슈터의 기준이 된다)에 이름을 올렸는데 신기성은 1998-99시즌부터 3시즌 연속, 그리고 2006-07시즌에도 다시 기록을 내면서 네 차례나 달성해 역대 한국농구선수들 중 최다기록 보유자다.
“누구든 잘나갈 때는 있기 마련이잖아요. 좋은 기록을 갖고 있지만 전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보다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의 주변에 머물렀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인기가 많고 성적을 많이 내는 선수보다는 팀의 중심이 되고 후배들을 독려해서 잘 이끌어가는 선배가 되고 싶었어요. KTF에서 그걸 잘 해내고 싶었는데 마음 먹은 대로 이뤄지지 않았어요. 팀도 KTF에서 KT로 바뀌고 감독님과 코칭스태프도 바뀌고 선수들의 마음가짐도 달라진 상황이라 이젠 이전의 우울함은 떨쳐버려야 할 것 같아요.”
신기성은 고려대 동기생인 현주엽과 팀 1년 선배였던 양희승이 은퇴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고 털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