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12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2009 월드리그 국제배구대회’ B조 한국과 프랑스의 경기에서 김호철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
A: 그날 따라 훈련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선수들도 운동을 하면 ‘감’이란 게 온다. 그날 그 ‘감’이 너무 좋았고 이런 느낌은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훈련이 끝난 뒤 김호철 감독님이 선수들에게 ‘수고했다’고 말씀하셨고 기분 좋은 얼굴로 훈련장을 나가셨다.
B: 그런데 감독님이 나가시자마자 갑자기 이상렬 코치님께서 인상을 찡그리셨다. 대뜸 박철우를 가리키며 훈련 태도와 얼굴 표정에 대해 지적하고 나섰다. 감독님이 말씀하시는데 표정이 왜 그러느냐고 하시면서 건방지다고 하셨던 것 같다.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설마 그런 폭행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왜냐하면 철우가 잘못한 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C: 이 코치님이 철우한테 야단을 치시면서 더 흥분하셨던 것 같다. 그러던 중 갑자기 발로 복부를 걷어찼다. 몇 번 발로 차다가 급기야 손으로 얼굴을 때렸다. 때리면서 더 열을 받아하셨다. 철우 입장에선 훈련 잘 마치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이 코치님이 막 구타를 하니까 그걸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D: 박철우가 폭행당하는 걸 지켜보면서도 선수들은 이 코치님을 말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간 더 화를 낼 것이고 철우한테 그 화가 다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맞는 걸 멍하니 지켜보면서 내가 더 눈물이 났다. 우리가 봐도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 폭행이었다. 철우가 평소 건방진 태도를 보였거나 훈련에 불성실했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됐을 것이다. 전혀 그런 선수가 아니었다. 기흉으로 세 차례나 수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훈련 때는 우리보다 더 열심히 뛰어 다녔다. 그런 걸 잘 아는 선배들이 어떤 인터뷰에서 철우의 훈련 태도가 불성실했다고 말한 건 이해가 안 간다. 우리한테는 절대 기자들 전화도 받지 말고 인터뷰도 하지 말라고 했으면서 자신들은 진실을 왜곡해서 인터뷰를 했다. 그 부분이 우리가 여기까지 나오게 만든 이유다.
―폭행 사건이 있고 나서는?
B: 그날 오후 훈련을 마치고 선수촌 인근에서 회식이 예정돼 있었다. 철우는 그 몸 상태로 회식에 참여했다. 이미 김호철 감독님이 철우의 얼굴을 보셨는데도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D: 철우를 때린 이 코치님은 물론 김 감독님도 모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식사하셨고 그 다음날 LIG랑 연습 경기를 하면서도 표정이 괜찮으셨다. 지도자 분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린 너무나 황당했다. 선수가 새벽에 선수촌에서 이탈을 했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셨다. 김 감독님이 오전에 선수들을 모아 놓고 박철우 이름을 거론하면서 “몇 대 맞았다고 도망치는 선수는 필요 없다. 너희들도 조심해라”며 목소리를 높이셨을 땐 정말 화가 났다. 만약 감독님이나 코치님 아들이 운동하다가 그 정도로 맞았다면 어떠하셨을까.
A: 정말 안타까운 건 일이 이렇게 커지지 않고 충분히 대표팀 내에서 해결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린 어린시절부터 맞고 운동했었다. 몇 대 맞았다고 팀을 이탈하는 행동은 쉽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철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데도 아닌 대표팀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고 철우 또한 이 코치님한테 사과를 받았거나 김호철 감독님이나 협회로부터 강경 조치를 약속받았다면 기자회견까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문성민도 맞았다던데…
D: 문성민도 맞았다. 선수들이 모두 봤다. 월드리시즈 예선전이 벌어진 프랑스 파리에서 생긴 일이다. 프랑스전에서 패한 뒤 라커룸으로 들어갔더니 분위기가 진짜 살벌했다. 그때 김호철 감독님이 문성민의 서브를 지적하시면서 얼굴을 몇 대 때리셨다. 성민이는 그 이후로 충격을 받았는지 제대로 서브를 넣지 못했다. 자꾸 서브로 인해 지적을 받으니까 더 위축이 됐고 실수할까봐 강서브를 때리지 못했다. 그때부터 성민이가 슬럼프에 빠졌던 것 같다.
A: 이탈리아에서 배구를 하셨던 분이라 선수들 입장에선 감독님의 그런 모습이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요즘 선수들은 야단친다고, 매를 든다고 해서 경기를 잘 뛰는 건 아니다. 그 효과는 잠시뿐이다. 우린 성인이고 프로팀 선수들이다. 무조건 욕하고 때린다고 말을 듣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지도자가 자신이 원하는 바와 진심을 제대로 전달하려면 선수들과의 인간적인 대화가 우선이다.
B: 성민이가 대표팀 생활 자체에 회의를 많이 느꼈다. 유럽에서 생활하며 잠시 한국의 운동 문화를 잊고 지내다 다시 대표팀에 들어가서 그런 일이 일어나니까 상당히 힘들었던 것 같다. 아마 이번 아시아선수권대회 엔트리에 제외된 부분도 물론 부상도 있겠지만 성민이 자체가 대표팀에 들어가는 걸 부담스러워한 걸로 알고 있다.
―선수들의 바람은?
A, C: 박철우나 우리의 행동이 스포츠계에 만연해 있는 구타와 폭력문화를 모두 근절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들이 선수를 때릴 때 단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고 때렸으면 좋겠다. 감정을 실어서 때리지 말고 진정 선수가 잘못을 반성하고 뉘우칠 수 있게끔 지도해야 하지 않을까.
B, D: 만약 축구나 야구대표팀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여론이나 팬들의 반응, 그리고 사회적인 파장이 지금보다 덜했을까? 야구나 축구보단 인기가 적은 배구지만 선수가 용기를 내 벌인 행동은 끝까지 보호받고 인정받았으면 한다. 자꾸 이상한 소문들을 흘려서 본질이 흐려지는 일들이 없기를 바란다.
선수들은 혹시나 하는 우려에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이번 인터뷰는 100% 우리의 자발적인 의사다. 같이 운동하던 선수가 처참하게 폭행당했는데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미안함의 표현이기도 하다. 행여 누가 뒤에서 조종했다거나 하는 식의 억지는 제발 안 나왔으면 좋겠다. 인터뷰를 후회하지는 않지만 솔직히 두렵기도 하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