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정수(왼쪽)과 박진만 사진제공=삼성라이온스 | ||
국내 최고 FA 대박은 2005년 현대에서 삼성으로 옮긴 외야수 심정수(35)다. 그는 삼성과 4년 계약기간에 총액 60억 원의 초대박 계약을 했다. 계약금 20억 원에 연봉 7억 5000만 원. 플러스 마이너스 옵션이 각각 10억 원이 붙었으나 잦은 부상에 따른 결장으로 약 10억 원을 토해내야 했다. 하지만 그가 은퇴 전까지 받은 연봉은 역대 최고액 연봉이다. 현대 유니콘스 유니폼을 입고 있었던 2002년 당시 이승엽과의 열띤 홈런 경쟁은 아직도 야구팬들의 입에 오르내리곤 한다. FA를 통해 삼성 유니폼으로 갈아입기 바로 전 시즌인 2003년에도 그는 출루율(0.478)과 장타율(0.720)에서 1위, 타율에서도 0.335로 2위에 오르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FA선수로 삼성에 입단한 후 통산타율과 평균 홈런수를 기준으로 본 그의 성적은 가파른 하강곡선을 그렸다. 잦은 부상으로 인해 예년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해 ‘심봉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한 심정수. 2007년 홈런왕과 타점왕으로 다시금 인상적인 성적을 냈지만 2008년 시즌 내내 부상으로 고생하다가 결국 전격 은퇴선언을 했다. KBO의 한 관계자는 이적 후 팀 적응문제, 부상 등 여러 원인이 있었겠지만 역대 최고 몸값을 기록하며 관심을 모았던 그의 FA가 과연 구단, 선수 모두에게 ‘대박’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역대 2위 몸값은 FA대박을 두 번이나 터뜨린 박진만이다. 그는 2004년 말 4년 최대 39억 원에 이어 지난 해에는 1년 12억 원(계약금, 연봉 각 6억 원)에 도장을 찍었다(선수 기준 총 51억 원으로 책정함). 최정상급 수비실력을 자랑하는 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로 한국 프로야구 대표 유격수로서 자리매김했다. 삼성에 오자마자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이끈 그는 자기관리가 철저한 선수라는 삼성 관계자의 말처럼 동료들 및 언론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뿐 아니라 꾸준히 좋은 성적을 냈다. 그의 타율은 첫 FA 대박을 터뜨린 2005년을 기준으로 오히려 상승했다. 구단 관계자도 그를 ‘모범 FA’ 사례라고 칭할 정도니, 홈런 개수는 비록 줄었더라도 박진만이 장타율을 필요로 하는 거포가 아닌 이상 그의 명품 유격 수비와 타율만으로도 제 몸값을 해냈다고 볼 수 있겠다.
역대 몸값 3위는 장성호다. 그는 2005년 말 KIA와 4년 최대 42억 원에 계약했다. 장성호는 그해 FA시장을 좌우한 최대어였다. 8년 연속 3할 타율을 만들며 꾸준히 좋은 성적을 냈음은 물론 부상 경력이 없던 그는 당시 FA시장의 주목대상이었다. 장성호는 원 소속팀 KIA와 우선협상 마감일에 4년간 42억 원이라는 대박을 터뜨리며 잔류를 선택했다. FA 계약 첫 해였던 2006년 126경기 모두 출장해 타율 3할6리·13홈런·79타점으로 제 몫을 해냈다. 그러나 그의 성적은 그 다음해부터 계속 하향곡선을 그렸다. 현재 구단과 주변의 예상을 깨고 올해 FA권리를 행사한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상태. 타 구단에서 그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본인 몸값 이외에 KIA 측에 24억 7500만 원의 보상금까지 지불해야 하는 상황. 이번 시즌 선언한 그의 FA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주목된다.
역대 몸값 4위는 2004년 두산에서 롯데로 이적하며 6년간 최대 40억 6000만 원의 계약을 따낸 정수근이다. 1995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해 98년부터 4년 연속 프로야구 도루왕을 차지하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그는 2003년 말 계약으로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그러나 이적 후에는 예전과 같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폭행혐의로 인한 중징계 이후 음주난동 구설수에 휘말리며 소속팀 롯데로부터 방출됐다. KBO의 한 관계자는 “6년 계약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불명예스러운 은퇴를 한 대표적인 FA 실패 사례”라고 밝혔다.
역대 몸값 5위는 2006년 말 LG와 4년간 40억에 계약한 박명환이다. 창단 첫 최하위라는 수모를 당한 LG는 내부 FA였던 이병규가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로 이적하며 전력에 생겨난 구멍을 박명환의 영입을 통해 메웠다. 박명환은 역대 FA투수 중 최고액이었다. 두산에서 11년간 통산 방어율 3.57을 기록해 최정상급 투구 성적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LG는 그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계약 첫 해 박명환은 27경기에 등판해 10승6패 방어율 3.19를 기록하며 에이스다운 모습을 보여줬으나 시즌 막판 이후 어깨 부상으로 인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LG 구단 관계자는 부상으로 인한 부진한 성적은 안타깝지만 그를 FA 성공사례로 말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역대 FA 타율 추이와 박진만과 심정수의 타율추이. | ||
역대 몸값 7위는 2007년 말 소속팀 SK와 4년에 최대 34억 원 조건으로 FA계약을 체결한 이호준이다(조인성과 총액 34억 원은 같으나 계약 조건의 차이로 7위로 책정함). FA 직전인 2006 시즌 타율 3할1푼3리로 타격 8위로 시즌을 마친 이호준은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24타수 9안타(0.375) 1홈런으로 맹활약했다. 부진했던 김동주와 비교되면서 반사이익을 확실히 누렸다. 그러나 FA 계약 직후 무릎 부상 때문에 겨우 8경기에만 출전했고, 올 시즌 또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냈다. 그의 성적은 FA를 기준으로 타율과 홈런성적이 급격하게 하락했다.
이처럼 FA를 통해 역대 최대의 몸값을 받았다고 하여 구단, 선수 모두가 웃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높은 몸값에 비례하는 성적을 내지 못하면 구단 입장에선 지불한 금액이 아까울 따름이고 선수 또한 ‘먹튀’로 불리며 한 시즌을 힘겹게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야구 관계자들이 꼽은 FA모범 선수들은 누구일까?
롯데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홍성흔’을 FA 대박 선수로 꼽았다. 롯데와의 FA계약은 구단, 선수 모두에게 최고의 선택이었다. 홍성흔은 올해 158안타, 64타점에 0.371의 타율과 0.533의 높은 장타율을 기록했다. LG 박용택(30)에게 단 1리 차이로 타격왕 자리를 내어준 점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FA계약 직후 홍성흔만 한 상승세를 보여준 선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BO 관계자는 박경완을 FA 모범 사례로 꼽았다. 박경완은 2003년 현대에서 SK로 이적하면서 3년 총액 19억 원에 계약했고, 4년째는 연봉 4억 원 조건으로 계약을 연장했다. 2007년에는 두 번째 FA 자격을 얻어 2년 총액 10억 원에 재계약했다. “꾸준한 성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해 높은 연봉을 계속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를 FA대박 선수로 꼽는다”며 “박경완은 선수로서의 자기 관리를 참 잘했다”고 언급했다.
LG 구단에서는 이진영을 FA 모범 사례로 꼽았다. 이진영은 계약기간 1년에 연봉 3억 6000만 원에 도장을 찍었다. 타율은 작년에 비해 약간 떨어졌지만 (0.315→0.300), 안타(102→114), 홈런(8→14), 타점(59→69), 장타율(0.451→0.463) 부문에서 모두 상승세를 보였다. FA계약 직후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대표적인 선수로 꼽혔다.
한편, KBO 관계자는 보상선수 성공 케이스로 ‘이원석’을 꼽았다. 지난 시즌 후 홍성흔의 FA보상선수로 두산으로 이적한 이원석은 올 시즌 3할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하며 주전으로 거듭난 모습을 보여줬다. 이 관계자는 “소문에 의하면 이원석만큼은 안 데려가길 바랬는데, 그를 지목하자 롯데 측에서 땅을 쳤다”며 홍성흔이 올해 잘했기 때문에 이원석의 이적에 대한 아쉬움이 묻힌 것이라고 언급했다.
FA 불명예 3인방
홍현우 진필중 마해영 '꿀먹고 잠수'
▲ 왼쪽부터 홍현우 진필중 마해영 | ||
한편 한때 삼성의 에이스였던 김상엽은 보상선수로 2000년 LG에 입단해 재기를 노렸지만 어깨 부상으로 인해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홍현우의 보상선수였던 최익성은 해태-KIA-현대-SK 등 여러 팀을 거치다가 조용히 은퇴했고, 이상목의 보상선수 신종길(롯데), 박종호의 보상선수 노병오(히어로즈) 등은 이적 후 자취를 감췄다.
눈가리고 '계약서 쪼개기'
허점투성이 '다년계약금지' 조항
KBO가 작년부터 다년계약을 금지하자 각 구단은 이를 지키자는 약속에서 FA 베팅을 시작했다. 이 때문에 선수를 한 구단에 오랜 기간 매어두는 조건으로 거액을 제시하는 기존의 방식이 사라질 것이라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다년계약금지의 이면에는 ‘갱신’을 통한 기간 연장 방식이 숨어있었다. 기자는 2009년 야구규약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다년계약을 금지한다는 조항을 찾아볼 수 없었다. 즉, 다년계약을 체결해도 규약 169조의 FA계약 위반 시 가해지는 5000만 원의 제재금과 직무정지 등의 처분을 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KBO 측에서는 “다년계약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맞다. 규약엔 명시되어 있지 않고, 계약서 자체가 1년 단위로 작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형식상 다년계약이 이뤄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1년 단위로 만들어진 계약서에 미리 금액을 써놓고 계약할 당시 날짜만 수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라며 실질적으로 다년계약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다년계약을 금지하여 몸값이 아닌 연봉을 공개하도록 함으로써 실제 계약기간과 수령액이 베일에 가려졌다.
이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다년계약을 전면 금지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며 5~6년의 장기계약을 금하고 차라리 2~3년 단위로 FA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정유진 인턴기자 kkyy122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