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노무현 대통령 최측근 안희정 씨가 “한강전선이 아니라 낙동강전선에서 용이 나올 것”이라고 말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진은 지난 10월 10일 청와대 오찬을 위해 현관에서 전직 대통령들을 기다리는 노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 ||
이런 점에서 통합신당파는 고건 전 총리를 가장 유력한 후보로 내심 점찍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아직은 양측이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친노그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직까지 딱히 떠오르는 후보는 없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올해 8월 ‘외부선장론’을 제기하면서 친노그룹이 원하는 대권 후보 자격의 일단을 공개한 바 있다. 여기에 노 대통령 측근 안희정 씨가 최근 ‘낙동강 용’을 언급하면서 친노그룹 ‘잠룡’의 모습이 서서히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노 대통령 흉중에 있는 차기 대권 후보의 그림을 스케치해보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석에서 입버릇처럼 ‘정치 전략에 관한 한 내가 세계 정상급이다. 나를 믿고 따라 오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그렇다. 노 대통령은 정치 승부에 관한 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능가하는 ‘지략가’에 속한다. 그래서 그의 ‘복심’을 해독하기란 쉽지 않다.
노 대통령이 상정하고 있는 ‘대권 후보 코드’를 읽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그는 대권 후보를 점찍기 위해 2007년 대통령 선거가 어떤 구도가 될 것인지를 먼저 생각했을 것이고 두 번째는 자신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그것에 부합하는 ‘맞춤후보’를 그려냈을 것이다.
2007년 대통령 선거부터 생각해보자. 노 대통령의 정치 시작 초기부터 친분을 맺어온 영남권 인사 A 씨는 “지금은 참여정부의 실정에 대한 국민적인 불만이 최고조에 이르렀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집권이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는 지방선거와 달리 미래를 새롭게 재단하는 국민적 축제다. 이런 점에서 노 대통령의 시선은 ‘지금’이 아니라 내년 대선 경쟁의 최정점으로 향해 있다. 그는 결코 현재의 정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대권 후보를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노 대통령의 또 다른 ‘복심’으로 불리는 안희정 씨의 최근 인터뷰에서도 확인된다. 안 씨는 여권의 차기 대권 후보 부재와 관련해 “지금은 비교 대상 없이 일방적으로 ‘집권여당이 다 책임져라’ 그러지만 이 구조 안에서 다음 대통령 후보가 나오는 게 아니다. 대선 때가 되면 다음 5년의 대한민국은 무엇이냐고 후보에게 묻기 시작한다. 그땐 한나라당 후보들이 참여정부 꼬투리 잡아서 점수 못 딴다. 자기 것으로 승부해야 한다. 지금 조급증을 낼 필요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 안희정 씨는 “조급증을 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 ||
안 씨의 발언에 대해 한나라당에서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한 초선 의원은 “안 씨가 2년 동안 공개적인 발언을 하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 작심하고 노 대통령의 입장을 대변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그는 ‘지금은 여권에서 한나라당 대선주자들과 대적할 만한 인물이 안 보이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나타날 것’이라는 시그널을 지지층에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노 대통령의 ‘외부선장론’과 안 씨의 생각이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노 대통령은 올해 8월 초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회동에서 공개적으로 ‘외부선장론’을 제기한 적이 있다. 정치권에선 이것을 ‘정동영-김근태에 대한 사형선고’로 받아들인다. 그 뒤 두 사람을 지지하던 당내 의원들조차도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며 대안을 찾아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치권에서는 안 씨의 ‘낙동강 용’을 토대로 해서 ‘노심’이 담긴 후보 조건을 유추하고 있다.
먼저 영남 후보론. 낙동강 유역 출신인 영남권 인사가 차기 대권 후보로 적합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현재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1, 2위를 달리는 한나라당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영남권이기 때문에 그들과 대적하려면 여권에서도 영남권 후보를 내세울 수밖에 없다는 의미일 수 있다. 또한 그동안 정치권의 주류였던 한강(국회) 주변에서 익히 알려진 인물이 아니라 ‘프레시맨’(신선한 인물)이 등장할 것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그래서 현재 여권에서 대선 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이 아니라 ‘영남권의 새로운 다크호스’가 ‘역사의 해안가’에서 바람이 불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차기 대선 승리를 위해 ‘영남 출신 프레시맨’을 선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는 노 대통령이 현재 처한 정치적 상황을 상정해 봐도 유력한 해석으로 통한다. 정치권 일각에선 노 대통령이 통합신당을 ‘지역주의 회귀’로 규정하고 반대를 하는 배경에는 그 과정에서 영남개혁세력이 고사할 가능성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지역주의를 청산하려면 영남 개혁진영의 정치세력화가 중요하다고 보는데 호남 위주의 통합신당으로 정계개편이 진행되면 영남 세력이 설자리가 없어지고 결국 그의 퇴임 후 역할도 줄어들 가능성을 우려해 ‘친노그룹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 (왼쪽부터)박원순, 김혁규, 유시민, 진대제 | ||
이를 볼 때 친노그룹에서는 영남에서 기본적으로 25%의 득표를 할 수 있는 영남후보를 내세우거나 인위적으로 한나라당 독무대인 영남의 표를 25% 이상 가져갈 수 있는 제3의 후보 출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다음 대선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친노그룹(안희정)에서는 “호남의 민주 역량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자신들이 영남 후보를 내세우더라도 결국 호남은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영남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노 대통령은 최근 열린우리당에 보낸 편지에서 “정당은 선거 승리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다. 그러기 위해서도 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어려운 때일수록 당의 정체성은 더욱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승리를 위한 가장 확실한 ‘무기’로 정체성을 지키는 것을 꼽았다. 그에게 최대의 정체성은 ‘지역주의 청산’이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의 무기를 가장 확실하게 업그레이드 해줄 대권 후보는 바로 지역주의 청산의 명분을 쥔 ‘낙동강 용’이지 않을까 정계에서는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낙동강 용’은 누가 될까. 최근 움직이기 시작한 이수성 전 총리 외에 ‘프레시맨’으로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경남 창녕)가 영남후보론에 부합하는 인물로 꼽힌다. 일부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강력하게 영입을 희망하는 최선의 후보”라는 말이 있지만 본인이 여러 번 손사래를 치며 정치참여를 부인했기 때문에 좀 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정치권 인사로는 김혁규 의원(경남 합천)이 “실물경제에 대한 경력과 식견을 가지고 있어 이명박 전 시장 등 한나라당 후보와 맞설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유력한 후보다. 친노세력의 핵심인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경북 경주)에 대해서는 “노 대통령 바통을 이어 지역정당 반대를 외치면서 당내 정계개편 과정에 개입할 경우 자연스럽게 영남권 대선 주자로 부각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추미애 전 민주당 의원(대구)과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경남 의령)도 단골로 거명되는 영남 출신 ‘잠룡’들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