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 인터뷰 추억>
지난 4월 떠났던 일본 출장. 가장 크게 신경을 쓴 인터뷰 대상자는 요미우리 이승엽과 야쿠르트의 임창용이었다. 마침 요미우리가 야쿠르트 홈구장으로 원정 경기를 온 시기라 별다른 어려움없이 이승엽과 임창용을 ‘한방에’ 인터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급 마무리로 ‘미스터 제로’란 별명까지 달고 있는 임창용은 뛰어난 성적 때문인지 여유 있고 편안한 모습을 보여줬다. 당시 WBC 결승전의 후유증으로 인해 일본에서의 경기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거라 걱정했지만 임창용은 오히려 “일본전에서 만났던 선수들을 야쿠르트 유니폼을 입고 상대 선수로 다시 만나니까 의욕이 불타오른다”면서 “아마도 그때 못 푼 한을 여기서 다 푸는 것 같다”고 일본 무대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반면에 이승엽은 개막 이후 침묵을 지키는 타력으로 인해 꽤 심한 마음 고생을 하고 있었다. 더욱이 선발 명단에 제외되는가 하면 경기 도중 교체 수모를 당하는 바람에 이전처럼 얼굴이 밝지 않았다. 일부에선 하라 감독과 이승엽의 신뢰 관계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다. 이에 대해 당시 이승엽은 “그건 나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해도 내가 먼저 그렇게 생각해서 득 볼 게 없다. 뭐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며 담담한 입장을 취했다. ‘국민타자’가 일본에서 용병으로 살아가는 데 대해선 “많이 외롭다. 가끔 한국에서 경기 끝나고 숙소에 모여 야구 얘기하고 장난치고 편하게, 사람 냄새 나게 지냈던 시간들이 그립다”라는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운동선수한테는 돈보다 성적이 더 중요하다는 걸, 성적이 좋아야 행복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준 인터뷰들이었다.
지난 7월, 미국의 시애틀과 애리조나에서 만난 추신수와 박찬호와의 인터뷰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시애틀 원정팀 클럽하우스에서 동료 선수들과 함께 있는 추신수는 아시아 선수라는 느낌보다는 오래 전부터 클리블랜드 소속 선수로 뛰고 있는 선수처럼 팀 속에 제대로 녹아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자신을 내보낸 시애틀과의 경기에서 제대로 복수하고 싶었던 추신수는 기자가 경기장을 찾은 날, 팀은 9-0 대승을 거뒀지만 정작 추신수는 4타수 무안타에 삼진도 2개나 당했다. 웬만해선 시즌 중에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그였지만 그날만큼은 너무나 힘든 나머지 뒤늦은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가 소주 석 잔을 연거푸 마시며 쓰린 속을 달랬다.
폭염으로 호흡하기조차 곤란한 애리조나에 원정 경기를 온 박찬호. 취재 요청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제대로 된 인터뷰가 가능할지 걱정이 컸지만 박찬호는 기꺼이 인터뷰에 응하면서 지금까지 봤던 선수 박찬호와는 다른 ‘인간적인’ 박찬호의 이미지를 풍겼다. 클럽하우스에서 예정된 인터뷰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인터뷰가 미비하다고 생각했는지, 오히려 기자에게 더 많은 질문을 해도 된다고 얘기했고, 팀 관계자들의 눈치가 보이자, 아예 의자를 들고 클럽하우스 입구로 나와 편하게 인터뷰를 하도록 배려했다.
박찬호는 잘나갈 때, 특별한 대우를 받을 때, 야구하는 것과 지금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2002년 LA 다저스에서 텍사스 레인저스로 갔을 때 많은 부와 명예를 챙길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걸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계속해서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었다”면서 “지금은 비록 그때처럼 특별 대우는 받지 못해도 이전보다 훨씬 마음 편히 야구를 즐기며 살고 있다”는 의미 있는 얘기를 전해줬다.
<‘취중토크’ 술술술~>
시즌이 끝나거나 선수의 요청이 있을 때는 보통 저녁을 겸한 술자리에서 인터뷰가 이뤄진다. 일명 ‘취중토크’는 선수들의 진솔한 모습을 직접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이다. 보통 1차에서 인터뷰를 마치면 좀 더 편하게 술을 마시려고 2차를 가는 게 비공식 코스.
올 시즌 가장 인상적인 ‘취중토크’ 취재 대상은 롯데 홍성흔이다. 지난 10월, 부산 달맞이고개의 한 일식집에서 만난 홍성흔은 최근 사케에 푹 빠졌다며 대뜸 사케 900ml를 시켰다. 팔팔 뛰어오를 것 같은 생선회는 상 위에 진열만 해놓고 계속 술만 원샷을 하는 바람에 4병째 들이부은 다음 홍성흔과 기자 둘 다 취했던 기억이 있다. 이날 홍성흔은 “이 얘긴 꼭 한국야구위원회(KBO)관계자분들께서 관심 있게 봐 주셨음 좋겠다. 내가 춤을 좀 추는 편이다. 올해 골든글러브 시상식 때 나한테 기회를 준다면 가수 비의 ‘레이니즘’은 정말 끝내주게 할 수 있다”라며 2차로 일행 모두를 노래방으로 이끌었다. 지난 11일 열렸던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야구 선수 최초로 선보인 홍성흔의 현란한 ‘레이니즘’ 춤을, 부산 해운대의 한 노래방에서 먼저 감상할 수 있었다.
한국시리즈가 끝난 후 광주에서 만난 KIA 서재응은 오래 전부터 ‘취중토크’ 단골 손님이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시절, 귀국하면 어떻게 해서든 술자리 인터뷰에서 꼭 만났다. 탬파베이 마이너리그 시절, 경기장을 찾은 기자와 함께 가까운 펍을 찾았다가 우연히 류제국과 동료 선수들과 함께 자리가 이어지자 거기서도 폭탄주를 돌렸던 추억도 잊지 못할 부분이다.
평소 거침없는 언변으로 기자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그가 한국시리즈에 대한 회한 때문인지, 많은 얘기들을 토해냈다. 그중에서 SK와 관련된 내용은 수많은 댓글이 넘쳐나게 할 정도로 그 파장이 엄청났다. 인상적인 것은 서재응의 반응. 기사가 나간 이후 서재응을 공격하는 악플에 기자마저 심경이 복잡다단할 정도였는데, 오히려 서재응은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읽고 싶은 것만 읽는다”면서 “그런 반응에 일일이 신경 썼으면 지금까지 야구 못했을 것”이라고 오히려 기자를 위로(?)해줬다.
서재응을 만나고 2주 후에 다시 광주에서 만난 장성호. FA 선언 후 심하게 가슴앓이를 했던 그는 선수단이 한국시리즈 우승 기념으로 사이판을 떠났지만 그 대열에 빠져있었다. 분명히 한국시리즈에서 KIA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뛰었는데도 말이다. 장성호는 “굳이 가겠다면 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내가 안 가겠다고 했다. 선수들한테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면서 “지금은 한창 인생 공부 중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비우는 중이다”라고 토로했다. 장성호와는 소주에 맥주를 섞어서 마시는 ‘폭탄주’가 주종이었는데 인터뷰 내용 때문인지 술병이 쌓여가도 도통 술이 취하지 않았다.
<어렵게 만난 스타들>
사우디아라비아 알 나스르로부터 이적 제의를 받고 임대팀 전남과 에이전트와 현격한 입장 차이를 보이다 급기야 전남의 김봉수 코치와 불미스런 일까지 벌였던 이천수. 자기가 입을 열 때마다 악플이 1만 개씩은 더 달린다며 더 이상 기자들과 만나지 않겠다고 했던 이천수를 지난 7월 강남의 한 한정식집에서 우여곡절 끝에 만날 수 있었다. 당시 이천수는 심한 패닉 상태였다. 진실이라고 얘기해도 거짓으로 몰고 가는 분위기로 인해 입을 떼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했다. 여자 연예인들과의 스캔들부터 폭행 사건, 사기 사건 등으로 얼룩진 이미지가 그의 정체성을 흔들어놨던 탓이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데뷔 첫 골을 터트리는 등 현지 적응에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천수에게 목표가 있다면 분명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에 승선하는 일일 것이다.
언론 노출이 굉장히 적은 김병현과의 깜짝 만남이 인터뷰로 이어지기도 했다. 당시 김병현은 기자에게 “메이저리그 무대에 재도전하겠다”는 폭탄 선언과 함께 “곧 미국으로 들어가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 김병현은 주변 정리를 하고 자신의 집이 있는 LA에서 플로리다로 건너가 트레이닝캠프를 차렸지만 가벼운 햄스트링 부상으로 다시 LA로 돌아왔고, 야구하는 후배와 함께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런 김병현이 최근 한국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김병현은 지난 16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어제 들어왔다. 중요한 결혼식이 있어서 참석차 왔는데 한국에서 연말을 보내고 내년 초에 다시 미국으로 들어갈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김병현은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메이저리그 복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훈련은 잘 진행되고 있다. 갑자기 몸을 만들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은 있었지만 나름 만족하는 편이다. 일부에 보도된 것처럼 윈터리그 미팅에서 스프링캠프 참가팀을 협의할 것이라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지금은 정확한 얘기를 할 수가 없다. 좀 더 자신이 생겼을 때 진로 문제에 대해 말하겠다.”
김병현에게 내년 시즌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도 있냐고 재차 물었지만 김병현은 특유의 웃음을 터트리면서, “좋은 소식 갖고 다시 통화하자”며 짧은 대화를 마쳤다.
‘봉타나’에서 ‘봉중근 의사’로 인기를 쓸어 담은 봉중근은 야구장보다 야구장 밖에서 훨씬 더 소탈한 이미지를 전했고, 전북에서 재활 희망가를 부른 이동국은 쌍둥이 아빠로서 살아가는 얘기를 털어놓으며 태극마크에 대한 간절함을 나타낸 바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상렬 코치에게 폭행당한 사건으로 전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현대캐피탈 박철우와의 인터뷰는 기사화하지 못한 얘기들이 훨씬 많았고, 그 내용은 박철우가 배구계를 떠나기 전까진 결코 쓸 수 없는 부분들이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