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월 스페인의 서남부 도시 카디스에서 4일간의 일정으로 바둑대회 ‘카디스 오픈’이 열렸다. | ||
재작년에는 북유럽을 돌았고, 그동안 유럽에서는 스페인을 못 가보아 언젠가 한번 꼭 가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드디어 지난 12월에 초청을 받아 스페인도 갔다왔으니 유럽은 얼추 끝난 셈이다. 아시아에서 바둑을 두는 나라 중에서는 베트남과 인도를 아직 못 가보았다. 남미와 아프리카도 남아 있는데, 아~ 거긴 너무 멀다. 스페인에 앞서 이스라엘에도 초청을 받아, 둘러보고 왔으니 중동에도 발은 디딘 셈이다. 다음은 천 8단이 전하는 스페인 바둑여행 얘기다.
스페인의 서남부, 대서양 연안에 카디스(Cadiz)라는 도시가 있다. 지도에서는 섬처럼 보인다. 육지와는 떨어져 있는 것 같은데, 들여다보면 아주 작은 도로 하나가 실핏줄처럼 가늘고 길게 연결되어 있다. 12㎢ 면적에 인구 13만, 유럽 대륙의 서쪽 끝, 이베리아 반도에서도 한쪽 귀퉁이에 숨어 있는 작은 도시다. 그러나 위치나 규모에 비해 서유럽 대서양 연안에서는 사람이 가장 오래 전부터 살았던 곳, 기원전 10세기쯤에 페니키아인이 개척했다는 곳으로 그 역사가 만만치 않고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8개 자치주 가운데 하나인 카디스 주의 주도(州都)이며, 우리에게는 덜 알려져 있지만, 맑고 푸른 바다, 눈부신 태양, 하얗게 빛나는 도시의 거리가 유명해 유럽 쪽에서는 손가락에 꼽히는 휴양도시다.
여기서도 바둑대회가 열린다. 그것도 정기적으로. 지난 12월에도 열렸다. 다른 것은 둘째 치고, 대회장이 아름답다. 창을 열면 바로 백사장이고, 파도가 대서양의 바람을 싣고 달려온다. 지브롤터 해협이 지척이고 거길 건너면 아프리카다. 대서양의 바람에서는 모로코나 알제리의 냄새도 난다. 건너지 않고 동쪽으로 방향을 틀면 지중해.
지난해 12월 5~8일 열린 ‘카디스오픈’의 참가자는 남녀노소 41명. 겨우 41명. 그것도 대회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기우회 모임도 그 정도는 되는데. 그래도 대회다. 남녀노소, 국적불문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오픈대회다. 참가신청서를 보면 스페인 한가운데쯤에 있는 수도 마드리드나 동쪽 끝자락의 바르셀로나, 저 북쪽 끝 빌바오, 그리고 비교적 가까운 세비야나 그라나다 등 스페인의 이름 있는 도시들은 다 들어 있다. 카디스에서 마드리드까지는 1000㎞, 바르셀로나나 빌바오까지는 그것의 1.5배는 된다.
40여 명이 모여 경기를 하고 세미나를 하고, 연구발표회도 한다. 유럽 바둑대회라면 으레 그렇듯 여기도 일본인 중국인은 빠지지 않는데, 한국인은 없다. 이번 카디스오픈에서는 일본인 유학생 쿠와노 하쿠바 6단(23)이 우승을 차지했고, 중국 유학생 이유에 6단이 준우승, 바르셀로나에서 날아온 파우 카를로스 5단이 3위에 입상했다.
▲ 천풍조 | ||
“사비를 들여 개발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 보여 준 저게 돈이 되느냐?”
“아직 안 된다.”
“그럼 왜 이런 일을 하느냐?”
“컴퓨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다. 컴퓨터로서도 가장 어려운 게 바둑인 것 같은데, 지금은 이게 프로기사에게 9점으로 버티는 정도지만, 앞으로 6~7점으로 버틸 수 있는 수준까지 된다면, 그렇게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어떤 상황에 대처할 줄 알게 된다면 그 다음엔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본다. 예컨대 항공기 조종 같은 것도 이륙부터 착륙까지 컴퓨터 혼자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보다 더 어려운 일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생각을 하면 즐겁지 않은가….”
이런 사람들이 만나 이런 얘기들을 주고받는 것이니 불과 41명이 모인 행사라 해도 심심하거나 지루할 까닭이 없다.
유럽의 바둑대회는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아직까지 바둑 인구는 많지 않지만, 웬만한 도시에는 바둑클럽 없는 곳이 없고, 그들이 모두 대회를 연다. 유럽의 나라 수는 40개가 넘는데, 한 나라에 5개 도시씩만 쳐도 크고 작은 바둑대회가 200개는 가볍게 넘는다.
스페인에서는 정기적으로 열리는 대회가 둘이다. 하나는 2~3월, 봄철에 바르셀로나에서, 다른 하나는 11~12월 카디스에서 열린다. 스페인에서는 바르셀로나가 바둑이 제일 활발하고 실력도 세다.
프로기사는 새해 첫 날 타이틀을 꿈꾸고, 본선의 꿈을 꾼다. 삼성화재배, LG배, BC카드배, 농심배 같은 국제기전을 생각하고, 한국리그의 개막 날짜를 헤아리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나 누구나 똑같은 것을 꿈꾸는 것은 아니리라. 천 8단처럼 새해 첫 날 바둑 승부와 함께, 아니 바둑 승부보다 먼저 바둑 여행을 설계하며 올해는 또 어디서 새로운 얼굴 누굴 만날까, 가슴 설레는 사람도 있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