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식이 있을 때마다 장미란은 부모님과 동행한다. 장미란의 아버지 장호철 씨와 어머니 이현자 씨는 항상 꽃다발을 준비해서 딸의 수상을 직접 축하해준다. 너무나 많은 시상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지만 장 씨 패밀리들은 감사함과 겸손함을 내세우며 여건이 허락되는 상황에서 열심히 참석하려 한다. 훈련 중에는 항상 떨어져 지내야 하는 탓에 비시즌 동안만이라도 가급적 같이 보내려 하는 남다른 가족애가 보기만 해도 훈훈해지는 풍경들이다.
“제가 우리 집 기둥이잖아요(웃음). 체격만으로도 한 기둥하겠죠? 하하. 부모님들이 옆에 계시면 시트콤과 코미디를 찍는 것처럼 재미있고 정신없어요. 무뚝뚝한 아버지와 소녀 같은 엄마 사이에 있다 보면 아주 피곤한 라이프가 된다니까요.”
장미란은 어머니 이 씨에 대해 이런 설명을 곁들였다.
“사람들이 절 처음 보면, ‘어머, 장미란 선수 반가워요. 어휴, 듬직하네’라고 말해요. 옆에서 엄마가 ‘안녕하세요, 전 미란이 엄마예요’하고 인사를 하시면, 대부분의 반응이, ‘어쩜, 어머님 패션이 그냥 죽이네요’하며 웃어요. 엄마가 은근히 화려한 스타일을 좋아하거든요. 손도 크시고, 아빠에 대한 인내심도 최고이고요. 엄마를 닮고 싶지만, 엄마처럼 살 자신은 없어요.”
아버지 장 씨가 아마추어 역도 선수 출신이라면 이 씨는 학창 시절, 전국대회에 출전할 정도의 실력 있는 육상 선수였다. 체격과 파워는 아버지한테, 순발력과 인내심은 어머니한테 물려받았다는 장미란의 말이 여실히 증명되는 순간이다.
‘아름다운 역사’ ‘여자 헤라클레스’ ‘가장 아름다운 챔피언의 몸매를 지닌 선수’ 등 해외 언론이나 기자들로부터 다양한 수식어와 찬사를 받는 장미란은 지난 11월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렸던 세계역도선수권대회가 자신의 선수 생활에 큰 점을 찍게 해준 쾌거였다고 설명한다.
“올림픽이 끝난 뒤,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렸던, 그것도 소속팀이 있는 고양시에서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렸잖아요. 어마어마한 부담이 됐어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응원과 기대감을 나타냈는데 올림픽 대회 때보다 더 떨리더라고요. 역도 경기를 처음 접한 관중 분들이 박수를 치고 함성을 보내며 응원을 보내주셨는데, 그건 잘 몰라서 벌어진 일들이니까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어요. 단, 그 많은 기대에 보답하려면 목표했던 기록을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대단했죠. 다행히 용상에서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4연패를 달성하긴 했는데, 또다시 한국에서 국제대회가 열린다면 정말 자신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 경기 후 인터뷰에서 ‘다시는 한국에서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거였어요.”
장미란은 대회를 준비하면서 계속 불안했다고 털어 놓는다. 올림픽 때와는 달리 훈련 여건이 좋지 않았다. 결국 몸이 좋지 않아서 목표했던 것만큼의 기록을 올리지 못했다.
▲ 일러스트=장영석 기자 | ||
여자 역도 최중량급(75㎏ 이상)에서 장미란을 긴장시킬 만한 적수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장미란은 더 힘들다고 말한다. 눈에 띄는 라이벌이 있다면 목표를 정하기가 쉬운데 라이벌이 없다 보니까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렇게 극한 상황을 이겨내고 좋은 성적을 낸 것도 보람되지만 아이들이나 여성 분들이 인상이나 용상 등 역도 동작에 대해 물어보고 아는 척을 하면 기분이 아주 좋아요. 역도가 비인기 종목이라 메달을 따지 못하면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하잖아요. 여러 선수들이 노력하고 매스컴에서도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이전보단 역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어요. 역도를 소재로 한 영화까지 나왔으니까, 이젠 인기 종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하하.”
장미란은 역도 선수와 지도자 간의 아름다운 사제의 정을 보여준 영화 <킹콩을 들다>란 영화 덕분에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어느 주일 아침에 교회 가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친한 언니가 전화를 해선 ‘미란아, 난 네가 그렇게 힘들게 운동하는지 몰랐어’라고 말하면서 막 울더라고요. 그 영화를 보고 나왔다면서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언니, 난 그렇게 심하게 운동 안 했어. 먹을 거 다 먹고, 좋은 여건에서 운동했으니까 너무 속상해 하지마’라고요. 영화이기 때문에 극화된 부분이 있지만 선수들 노력하는 건 영화나 실제나 똑같아요. 메달에 대한 간절함, 성적을 내려는 목표 의식이 동기부여를 하니까요. 쉽지 않은 소재를 굉장히 감동적으로 만든 영화였어요. 물론 저도 그 영화를 볼 땐 눈물이 나더라고요.”
장미란은 팬이 많다. 그중에서도 아이들한테는 인기 ‘짱’이다.
“아이들을 만나면 절 많이 좋아한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왜 날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힘이 ‘쎄’ 보여서래요^^. 즉 저랑 다니면 웬만한 남자들을 다 이겨서 기분 좋을 것 같다는 거죠. 지식인 검색을 보면 ‘장미란을 싸워서 이기려면?’이란 질문도 있어요. ‘역도하는 여자 선수=힘이 센 여자’로 보는 거예요. 역도는 힘만 세선 절대 성적을 낼 수 없거든요. 파워 외에도 기술과 유연성이 필요해요. 어린 아이들이 그 부분까지 이해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죠?”
고려대 체육교육학과 4학년인 장미란은 예정대로 내년 2월 졸업한다. 세계선수권대회가 시작하기 직전에 졸업 시험을 치른 그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시험 공부를 했다.
▲ 지난달 29일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장미란 패밀리’. 장미란은 이날 스포츠발전부문 상을 받았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역도선수 장미란’은 어디를 가나 환영받고 인정을 받는 선수지만 학교 내에선 선수 장미란은 존재하지 않았다. 장미란 또한 일반 학생들과 똑같이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르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리포트 작성도 직접 하면서 과제물 제출하는 데 소홀함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미란은 한 교수한테 충격적인 지적을 받게 된다.
“운동선수가 쓴 논문은 모두 가짜라고 단정지어 말씀하시더라고요. 다 베낀 게 무슨 논문이냐고 하시면서. 일반 학생들이 있는 자리에서 체육특기생들을 이상하게 몰아가는 데 대해 참을 수가 없었어요. 쉬는 시간에 교수님을 찾아가 처음으로 제 목소리를 냈어요. 물론 베껴서 논문을 쓴 사람도 있겠지만, 모든 특기생들이 다 그러는 건 아니라고 말씀 드렸죠. 선수 생활 경험이나 대회를 준비하면서 느끼는 심리를 논문으로 쓴다면 굉장한 논문이 나올 수도 있다면서요. 제 말씀을 들으신 교수님께서 나중에 ‘미안하다. 내가 오해한 것 같다’며 사과하시더라고요. 결국, 그 교수님 저한테 D플러스 주셨어요^^.”
2010년 대학 졸업과 함께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을 치러야 하는 장미란은 대학원 진학을 계획하고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마치면 은퇴 후 외국으로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그래서 ‘그럼, 결혼은 언제쯤 할 생각인지’를 물었다.
“결혼이 제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엄마는 2015년, 서른 살에 결혼하라고 말씀하세요. 은퇴 후 유학 갔다와서 결혼하라는 말씀이신 거죠. 지금도 제 배우자를 위해 항상 기도하고 있어요. 듬직하고 제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운동선수로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자로서의 행복도 느끼고 싶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결혼’은 아직 크게 와 닿지가 않네요.”
인터뷰 말미에 ‘돌발 질문’으로 ‘세종시 이전 문제’와 ‘이건희 회장의 특별 사면’에 대한 장미란의 의견을 물었다. 장미란은 의외로 이런 정치, 사회적인 사안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특히 이건희 회장의 특별 사면에 대해선 “사면이 돼서 스포츠 외교에 도움을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맙겠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비판이나 책임져야 할 부분들이 먼저 해결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는 의미있는 답을 내놓았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