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승을 달성하면 또 한번 깜짝쇼를 선보이겠다는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 | ||
올해 새로 들어온 가빈 슈미트가 이전 용병 안젤코 이상의 맹활약을 펼치는 바람에 지난해까지 ‘젤코화재’가 올 시즌에는 ‘가빈화재’란 별명을 달게 됐다. 일부에선 ‘삼성의 용병 보는 안목이 뛰어난 것인지, 아니면 삼성만 가면 용병들의 기량이 성장하는 것인지’ 궁금해 하는 시선들이 생겼을 정도다.
현역 최장수 감독(15년)으로 꼽히는 신치용 감독과 평소 궁금했지만, 쉽게 묻지 못했던 내용들을 중심으로 ‘돌발 인터뷰’를 진행했다.
―솔직히 안젤코가 일본으로 옮겨갈 때만 해도 올 시즌 삼성화재의 전력에 큰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가빈 슈미트가 합류하면서 또 다른 삼성화재로 거듭났다. 다른 팀은 용병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한데, 유독 삼성화재는 용병농사가 잘 된다. 그 비결이 뭔가.
▲난 용병을 볼 때 실력보다 인성을 더 중요시한다. 가빈은 먼저 동영상으로 플레이를 봤고 그의 스타일이 우리 팀과 맞을 것 같았다. 신종플루가 대유행일 당시, 일부러 멕시코까지 직접 가서 계약을 맺은 것이다. 가빈이 당시 멕시코에서 국가대항전에 출전한다는 정보를 듣고 가서 만났는데 가빈은 삼성화재란 팀을 잘 알고 있었다.
―가빈이 한국 프로배구팀에 관심이 있었단 말인가.
▲그게 아니라 가빈은 이미 한국에서 한 달여 동안 훈련을 했었다. 가빈이 테스트를 받은 팀은 현대캐피탈이었다. 현대에 숀 루니가 가고 앤더슨이 오기 전의 일이었던 것 같다. 그때 결국 퇴출당했다고 하더라. 그때 한국에 있으면서 삼성이란 팀에 대해 많은 얘길 들었다고 했다.
―가빈이 삼성과 계약을 맺기 전에 LIG손해보험과도 접촉했다고 들었다.
▲가빈과 저녁에 만나 얘기하고 다음날 아침에 가계약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 다음날 아침에 만났더니 가빈의 에이전트가 전날 LIG에서 왔었다고 귀띔했다. 가빈 측에서 돈 액수 갖고 장난칠 것 같아서 가빈한테 직접 ‘네가 삼성이랑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고, LIG랑 하려면 그쪽이랑 계약을 맺어라. 단, 돈 액수 갖고 저울질한다면 우리가 포기하겠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랬더니 가빈이 무조건 삼성으로 가겠다고 했다.
―안젤코와 가빈의 차이가 무엇인가.
▲만약 안젤코가 올 시즌에도 우리 팀에서 뛰었다면 이전과 많이 다른 플레이를 펼쳤을 것이다. 안젤코는 전쟁 지역에서 살았기 때문에 냉정함이 있었다. 반면에 캐나다 출신인 가빈은 순진함이 가득하다. 얼마 전에도 나를 찾아와선, 자기한테 특별대우하지 말라고 부탁하더라. 팀에서 막내 선수답게 잔심부름도 하겠다면서 말이다. 난 가빈보다 우리 선수들에게 고맙다. 용병에 대한 질투도 없고 정말 친동생처럼 아끼고 살갑게 대한다.
▲ 현대캐피탈 박철우. | ||
▲내 딸도 인격이 있는 존재다. 아버지라고 해서 딸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박철우를 조정하느니, 철우를 통해 상대팀 정보를 빼낸다느니, 정말 한심하고 어이없는 소문들을 양산해낸다. 내가 15년 감독을 하면서 딸의 남자친구를 통해 정보를 빼낼 정도로 형편없는 지도자였다면 지금 당장 옷을 벗어야 한다. 솔직히 혜인이한테 참으로 미안했다. 그 아이는 어느 팀 선수가 아니라, 그냥 남자 박철우를 좋아하는 것뿐인데, 아빠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았다. 지금은 내가 참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는 대놓고 얘기할 날이 올 것이다.
―만약 박철우가 이번 시즌 이후 FA가 된다면 삼성화재로 이적할 가능성이 있나.
▲박철우 정도의 선수라면 당연히 데려오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박철우만큼 위력적인 공격수가 또 누가 있겠나. 사는 사고, 공은 공이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선입견 때문에 좋은 선수를 못 본 체할 수는 없지 않나. 박철우는 정말 탐이 나는 선수다.
―딸의 남자친구 박철우와 선수 박철우에 대해 코멘트를 한다면.
▲난 혜인이의 선택을 존중한다. 비시즌 때는 철우랑 우리 가족들과 몇 번 식사도 하고 그랬다. 딸의 아버지로서 말이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되면 만날 수도 없고, 만나서도 안 된다. 성실한 친구라고 생각한다. 기흉으로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운동에 대한 욕심이 대단했다.
―벌써부터 배구계에는 감독의 자리 이동과 관련해 여러 소문이 나돌고 있다. 혹시 삼성이 아닌 다른 팀에서의 지도자 생활도 가능한 부분인가.
▲내 바람은 영원히 삼성 사람으로 끝났으면 하는 것이다. 물론 종종 이런저런 제의를 받긴 하지만, 난 선수들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신치용 감독은 잘난 척하는 것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싫다고 말했다. 지도자 생활하면서 가장 무섭고, 자신을 긴장시키는 건 바로 동고동락했던 선수들의 평가라는 말도 덧붙였다. 15년 최장수 감독의 철학이 담긴 의미 있는 메시지였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