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태환(왼쪽)과 노민상 감독. | ||
‘존경하는 노민상 감독님, 항상 저로 인해 많은 마음고생을 하시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일을 거울삼아 좀 더 나아지는 제 자신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새해에도 변함없는 지도와 편달을 부탁드립니다. 늘 건강 유념하십시오. 수영선수 박태환.’
노민상 감독은 <일요신문>에 이번 크리스마스 때 박태환으로부터 받은 카드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노 감독은 이 카드를 읽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이런 게 지도자에게는 마약 같은 거예요. 말할 수 없이 힘들어도 이런 카드 글귀 하나, 말 한마디에 모든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죠. 태환이 아주 멋진 녀석입니다. 요즘엔 정신적으로 크게 안정됐고, 자기성찰도 많이 합니다. 모든 것이 좋아졌습니다.”
사실 박태환은 노민상 감독이 항상 어렵기만 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수영에 입문하면서부터 자신을 가르쳐온 아버지와도 같은 스승이다. 노 감독은 한국을, 전담코치, 외국인 지도자 등의 얘기가 쉴 새 없이 나오며 노 감독과는 결별과 재결합을 반복했다. 노민상 감독과는 잔정을 주고받기가 힘들다. 이런 박태환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평생의 넘어 세계정상에 서기 위해서는 혹독한 훈련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고, 어린 선수는 수영 말고도 하고 싶은 것이 것이다.
박태환은 2009년을 보내는 소감에 대해 “하늘이 보다 큰 영광을 주려고 내게 시련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로 도전자로 출발선에 다시 서겠다”고 말했다.
박태환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일단 ‘로마참변’을 딛고 정신적으로 크게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면서도 훈련에는 빈틈이 없을 정도로 매진한다. 또 가장 중요하게는 사생활이 많이 정리됐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지난 11월 호주 전지훈련 때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노 감독은 슬쩍 제안을 하나 했다. “평소에 하던 훈련을 그냥 할래? 아니면 100m 100개를 할래?” 훈련 때는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물에서 보내는 박태환이 훈련량을 모를 리 없다. 100m 100개는 워밍업을 빼도 1만m. 평소에 하던 훈련은 잘해야 8000m다. 연일 강도 높은 훈련을 하던 중이기에 그냥 평소훈련을 택하기가 쉽다. 그런데 박태환은 스스로 “지루하니까 변화를 택할게요. 100m 100개요”라고 말했고 실제로 이를 다 소화해냈다. 노 감독이 애제자의 부활을 확신한 순간이다.
노민상 감독은 “어느 운동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아무리 세계적인 선수라고 해도 정신자세가 가장 중요해요.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지만 저는 태환이가 새해 아시안게임, 2011년 세계선수권, 그리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예전 못지않은 쾌거를 달성할 것으로 확신합니다”라고 말했다. 박태환은 11월 호주 전훈 때 기온변화가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훈련량을 군소리없이 마쳤다.
그럼 현재 박태환의 몸 상태는 어떨까? 노 감독은 “일단 지금은 몸을 만들고, 부상을 방지하는 것이 우선이다. 1월 특별강화위원장과 상의해 훈련스케줄을 잡고, 11월 아시안게임 전에 두 차례 호주나 유럽에서 전지훈련을 할 계획이다.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최고의 컨디션을 만들 것”이라고 자신했다.
지나간 과거를 돌이켜보면 박태환은 노민상 감독과 호흡을 맞췄을 때 모두 좋은 성적을 냈다. 반면 지난해 로마세계수영선수권처럼 전담팀 체제로 별도의 훈련을 했을 때는 경기력이 뚝 떨어졌다. 그래서 한번 물었다.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전담팀 체제로 전지훈련을 했던 미국 LA의 USC대학에 갈 계획은 없냐고.
대답은 당연 “네버(NEVER)”였다. 비용도 좀 비싸고, 훈련여건도 그렇고 등등의 이유가 나왔지만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진 전지훈련장소를 굳이 찾을 이유가 없는 것이 뻔했다.
연말 훈련도 체크해보니 빡빡하기만 했다. 남들은 송년회 등으로 유흥을 즐길 12월 내내 태릉선수촌에서 합숙훈련을 했고,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부터 3박4일간 짧은 휴가를 가졌고, 마지막 날인 31일에 외박이 한 차례 있을 뿐이었다.
최근 박태환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수칠 때 떠나고 싶다”며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낸 후 은퇴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2012년이면 아직 23세의 한창 때다.
하지만 박태환은 “너무 단정적으로 알려졌다”라고 말했다. “아직 은퇴시기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라며 “일단 런던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겠다는 각오를 밝힌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그럼 새해에는 언제 마린보이의 역영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노민상 감독은 “최소한 봄에는 국내나 국제대회를 하나 택해 가볍게 뛰어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국내대회는 좋은 추억이 많은 4월 동아수영대회가 박태환의 컴백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어 2010년 아시안게임에 대한 전망도 물었다. 세계를 제패한 까닭에 조금만 제 컨디션을 찾으면 아시안게임 정도는 2006년 도하대회 이상의 성적이 나올 것이 확실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게 만만치 않아 보였다.
“4년 전에 비해 중국 남자 수영이 눈부시게 성장했다. 박태환의 라이벌로 알려진 장린은 물론이고, 18세의 순양 등 선수층이 아주 두터워졌다. 지난해 12월 홍콩 동아시안게임에 참석했는데 신화통신 등 중국언론도 태환이에 대해 많이들 궁금해 하더라. 예전보다 더 힘들 것이다.” 참고로 로마세계선수권에서 고개를 떨군 박태환과는 대조적으로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낸 장린은 홍콩에서 3위에 그치는 등 크게 부진해 세계 남자수영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달라진 정신자세, 앞만 보고 달리는 강도 높은 훈련, 그리고 치밀한 준비. 어쨌든 여름소년의 겨울나기는 생각보다 유쾌했다. 2010년 마린보이의 부활을 미리 상상할 만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