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해 연말 귀국 후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급적 축구인들과의 만남과 인터뷰를 자제했던 그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13일 오후, 강남의 한 식당에서 만나 늦은 점심 식사를 하며 나눈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 본다.
2004년, 전남 드래곤즈 시절부터 기자와 안면이 있었던 이장수 감독은 농담삼아 “기자 생활, 오래하고 계시네요”하며 악수를 건넸다. 자신은 그동안 전남에서 FC서울로, 그리고 베이징 궈안으로 팀을 옮겨 다니면서 이런저런 마음 고생을 많이 했는데 기자는 한 곳에서 ‘잘리지 않고’ 잘 버티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덧붙였다. 먼저, 베이징 궈안팀으로부터 해임당한 사유에 대해 물어봤다.
―납득이 안 가는 해임 사유를 듣고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 같다.
▲해임되기 전부터 이상한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특별 선수를 꼭 뛰게 하라든지, 어떤 선수는 빼라는 등 선수 기용과 관련해 간섭이 많았다. 또 한번은 회장이 베이징 지역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데 갑자기 이런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당시 팀이 1위를 달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자가 ‘이장수 감독을 경질한다는 소문이 돈다. 사실이냐?’라고 묻자, 회장이 ‘1위팀 감독을 자를 수 있겠나’라고 얘기했다. 그 후 궈안팀이 잠깐 주춤한 나머지 2위로 내려앉자, 바로 경질시킨 것이다.
―2위라고 해서 경질시켰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뭔가 더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베이징은 중국의 수도이다보니 어느 팀보다도 더 많은 관심과 스포트라이트의 대상이었다. 팀 성적이 예년과 달리 상위권을 달리자, 외국인 감독인 나를 취재하려고 항상 수십 명의 방송 카메라들과 기자들이 따라 다녔다. 자연히 나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팀에선 감독이 자주 언론에 노출되는 부분에 대해 불편해 했다고 하더라. 베이징 궈안팀이 1위를 했는데 구단이나 선수는 없고 왜 감독만 노출이 되느냐면서. 이런 얘기도 나중에 중국을 떠나올 때 중국 기자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우연히 전해 들은 내용이다.
―원래 2007년 궈안팀과 2년 계약을 맺었다. 2008년 시즌이 끝나고 1년 재계약을 한 건데, 재계약이란 건 감독을 신임하고 있다는 의미다. 팀에서 7경기밖에 안 남았는데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해임시킨 건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다.
▲구단 사장이 날 불러놓고 직접 해임 통보를 하는 순간, ‘이 사람이 장난하나?’ 싶었다. 전혀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고, 팀도 우승을 눈 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시즌 중에 감독을 정리한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너무 억울했다. 그 앞에선 쿨하게 받아들인 척했지만 숙소로 돌아가서 억울하고 분해서 잠이 안 올 정도였다. 그렇게 고생해서 팀을 만들어놨더니 얼토당토 않는 이유로 쫓겨난다는 생각이 드니까 못 마시던 술만 찾게 되더라.
―그런데 해임 통보 사실이 알려지고 많은 팬들이 울면서 숙소 앞을 떠나지 않았다고 들었다.
▲중국인들의 축구 사랑은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된다. 매 경기마다 4만, 5만 명이 경기장을 꽉꽉 메운다. 더욱이 궈안팀은 팬이 많기로 유명한 팀이다. 내가 해임된 사실을 알고 흥분한 팬들이 숙소 앞으로 찾아와 울면서 애원했다. 제발 떠나지 말아달라고. 다음날 중국 경찰까지 출동해서 팬들을 해산시키려 했고 구단관계자가 찾아와 당분간 숙소를 옮겨 달라는 부탁도 했다. 하지만 아들이 중국에서 유학 중이고 내가 같이 있어줘야 했기 때문에 숙소를 떠날 수가 없었다. 결국 큰 트렁크 가방을 들고 내가 그곳을 떠나는 것처럼 쇼를 한 다음에 팬들 몰래 다시 숙소로 돌아갔고, 10일 이상 바깥 출입을 삼가고, 아들이 사다준 도시락이나 빵으로 생활을 했었다.
▲ 일러스트=장영석 기자 | ||
―지난해 중국축구협회가 발칵 뒤집어진 일이 있었다. 바로 승부조작을 통한 축구도박 사건이었는데 이로 인해 축구계 인사가 대거 구속되기도 했었다. 혹시 이 감독한테는 그런 제안이 들어온 적이 없었나.
▲있었다. 1999년 충칭팀을 맡았을 때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선양팀에 져주면 거액을 주겠다는 브로커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결국엔 감독인 나와 용병 두 명만 빼놓고 선수들과 구단이 결탁해서 후반 경기를 이상하게 몰고 갔다. 선수들 움직임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경기 종료하기도 전에 양복 상의를 벗어 던지고 라커룸으로 들어가 버린 적이 있었다. 한국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때 내가 언론을 향해 승부가 조작됐다고 폭로했지만, 유야무야 그냥 지나갔다.
―한국에선 승부 조작은 아니지만 변병주 전 대구FC 감독이 용병 비리와 연루돼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다.
▲변병주 감독 건은 한국 지도자들의 위상을 땅에 떨어트린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빈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27명이 감독 모집에 응시했다는 소리를 듣고 기분이 참으로 씁쓸했다. 이전 내가 전남에 있을 때도 용병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구단 관계자들과 에이전트들이 구속된 바 있었다. 그때 이상하게 나도 거기에 연루됐다는 소문이 돌아, 날 거의 패닉 상태에 빠트리기도 했다. 난 그때도 대충 수사하지 말고 제대로 수사해서 조금이라도 먼지가 나는 사람들은 모두 잡아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한테 뭔가 구린 냄새가 난다면 데려가서 조사하라고도 말했다. 난 자신있었고, 전혀 두렵지 않았다. 한국 축구계에 용병 비리는 다시 반복되지 말아야 하는 사건이다. 그런 일들이 자꾸 발생하면 중국처럼 한국 축구가 발전하는 데 한계가 생긴다. 변병주 감독 건도, 비단 그 감독 혼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좀 더 파보고, 언론도 좀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길 바랐다. 그냥 노출된 선에서만 마무리 짓고 서둘러 여론을 잠재우려다보니 자꾸 악습이 반복되는 되는 것이다.
―좀 다른 얘기를 해보자. 이전 FC서울 감독으로 있을 당시 제자였던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선수가 모두 해외로 진출했다. 세 선수에 대한 소회를 말한다면.
▲먼저 (박)주영이는 ‘축구천재’라는 타이틀을 달고 언론의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선수였다. 겨우 대학 2학년 중퇴하고 온 선수였는데, 여론도, 사회도 잘 모르고 정말 축구만 해온 선수였는데, 그가 가진 ‘그릇’에 비해 세상의 관심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첫 시즌 잘 치르고 두 번째 시즌에서 조금 부진했더니 곧바로 ‘2년차 징크스’ 운운하고, ‘건방지다’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며 마구 쪼아대지 않았나. 주영이 성격상 ‘건방진’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아이다. 언론에서 조금 여유있게 그가 프로에 적응하길 기다려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AS모나코 입단 소식을 듣고, ‘잘 나갔다’ 싶었다. (이)청용이는 열일곱 살 때 2군에서 1군으로 올라와 바로 삼성전에 베스트 멤버로 투입됐는데 70분 동안 정말 센스 있게 볼을 잘 차며 그라운드를 휘젓고 다닌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볼에 대한 센스, 판단력, 기본기가 굉장히 훌륭한 선수였다. 당시 내가 구단 단장한테 나중에 해외 나가서 성공할 수 있는 선수는 이청용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기)성용이는 2006년 말에 FC서울에 입단했고, 그때 내가 ‘잘리고’ (웃음) 팀을 나가는 상황이라 같이 훈련을 해본 경험이 없다.
▲정환이를 직접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경기 끝나고 따로 식사를 했는데 굉장히 착하고 성실해 보였다. 잘생기기도 하고(웃음). 정환이가 팀에서 풀타임을 뛰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주어진 시간 안에선 자기 몫은 충분히 해내고 있지만 풀타임 주전멤버로 뛰기엔 나이가 걸림돌이 되는 듯했다. 은중이가 있던 창샤 지역은 한국 교민들도, 한국 식당도 없는, 정말 한국인이 살기엔 좋지 않았다. 더욱이 팀 전력이 탄탄치 않았다. 많이 힘들어 보였지만 시즌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이전의 모습을 회복하더라. 제주에서 열심히 해나가길 바란다.
중국을 떠나오기 전 세 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고 그중 한 팀과는 계약서에 사인하기 직전까지 갔지만, 절대적인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에 결국 정중히 거절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이장수 감독. 한 달을 쉬었더니 몸이 근질근질하다는 그는 당분간 유럽으로 축구 유학을 떠날 계획이다. 그 다음은 월드컵이 열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건너가 직접 월드컵 현장을 누빌 그림도 이미 그려 놨다. 그러면서 다음 지도자 생활은 또 다시 중국이 될 것 같다는 발언을 했다.
“팀이 결정된 건 아니다. 그래도 오라는 데는 있다(웃음). 감독 자리 하나 놓고 20여 명이 피 튀기는 신경전을 벌이는 한국보단 좋은 대우로 ‘모셔가는’ 중국이 지도자 생활하기엔 편하다. 어디에 있든 내가 하고 싶은 축구를 하는 게 중요한 거 아닌가.”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