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25일 경북 경산에 있는 삼성라이온즈 볼파크에서 김응용 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특유의 거침없는 화법으로 최근 불거진 승률제 논란부터 자신의 야구인생까지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지난 12일,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지난해처럼 ‘무승부=패’로 계산하는 승률 방식을 유지하기로 결정하자, 현장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특히 SK 김성근 감독(68)은 ‘현장의 목소리가 도무지 반영되지 않는다’며 어느 감독보다도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더욱이 이사회의 논의가 결국엔 김응용 사장의 발언으로 인해 ‘무승부=패’로 결정났다고 알려지자, 일부에서는 김응용 사장 대 김성근 감독의 싸움처럼 묘사하기도 했다.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코끼리’ 사장과 ‘야신’ 감독. 지난 25일, 경산의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에서 만난 김응용 사장은 김성근 감독과의 대립 구도로 몰고 가는 여론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노출하면서 인터뷰에 응했다.
오랜만에 마주한 김응용 사장은 몰라보게 ‘날씬해진’ 모습이었다. “전보다 더 건강해지신 것 같다”라고 인사를 건넸더니, “내가 한 가지 후회되는 게 5년 전에 감독을 그만두지 못한 것”이라면서 “감독은 딱 60까지 했어야 하는데, 5년을 더 하면서 진이 다 빠졌다”라고 웃음을 터트렸다. 거침없이 앞만 보고 달리던 감독 시절에는 ‘건강검진’이란 단어조차 떠올려보지 못했지만 사장 부임 후 정기검진을 받다가 몸에 이상 징후를 발견했고 결국엔 용종 7개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기도 했다. “의사한테 어떻게 하면 살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고기랑 술은 무조건 먹지 말라고 하는 거야. 그거야 간단하잖아. 그래서 그 후부터 고기랑 술은 일절 입에 안 댔지. 그런 다음 20킬로그램을 뺐다니까. 그런데 너무 안 먹다보니까 사람 몰골이 이상해지는 거야. 그 후부턴 조금씩 먹으라고 해서 적당히 조절해 가며 먹어.”
인터뷰 후 볼파크 내 식당에서 김 사장과 같이 식사를 했는데 김 사장은 식판에 기자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밥을 퍼서 담았다.
김응용 사장에게 최근 가장 이슈가 됐던 ‘무승부=패’란 승률 계산 방식과 관련해 질문을 던졌다. 8명의 야구단 사장과 KBO 총재가 참석하는 이사회에서 이 안건을 놓고 팽팽한 대립을 펼치다 막판에 김 사장의 의견이 크게 작용했다는 부분도 확인하고 싶었다.
“사장들 의견이 4-4였어. 이사회는 다수결원칙이잖아. 난 그냥 한마디도 안 하고 가만있었더니 총재가 왜 김 사장은 말을 안 하느냐고 묻는 거야. 그래서 한마디 한 거지. 작년에 관중동원에도 성공했고, 시즌 막판까지 순위가 결정나지 않으면서 얼마나 야구가 재밌었느냐. 결국 이런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흥미진진한 경기가 되지 않았느냐고 의견을 제시한 거지. 그 얘길 듣고 총재가 지난해대로 가자고 한 거고, 4-4에서 총재가 한 표를 행사하는 바람에 5-4가 된 거고. 마치 내가 분위기를 몰고 간 것처럼 말하는데,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래? 뭐, 그렇다고 본다면 아직까지 김응용이 살아 있는 거네.”
‘무승부=패’의 승률 계산 방식을 두고 김응용 사장과 김성근 감독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듯 비치자, 언론에선 ‘김의 전쟁’ ‘끝장 토론을 벌이자’ 등등 두 사람의 상반된 의견에 대해 많은 흥미를 나타냈다. 이에 대해 김 사장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무슨 토론? 나랑 김성근 감독이랑? 토론 붙어서 나한테 이길 사람 있을까?(웃음) 물론 김 감독이야 지난 시즌 무승부가 많아서 손해를 봤겠지. 하지만 올해 삼성이 무승부가 많을지, SK가 무승부가 많을지, 어떻게 알아? 개인적인 이해 관계는 떠나야 해. 야구팬 입장에서 생각해야지. 사실 2008시즌에 무제한연장제(끝장 승부)를 실시한 뒤에 감독들 반대가 얼마나 많았어? 현장을 고려하지 않는 제도라고 난리를 쳐서 2009 시즌에 ‘무승부=패’로 바꾼 거 아니야? 그런데 또 그것도 아니라고 하면 어떤 제도로 바꾸냐고? 그랬더니 이번엔 또 다시 끝장 승부로 가자고 하는 감독들도 있더라고. 난 개인적으로 끝장 승부가 더 낫다고 봐. 야구팬들을 위해서라면 끝까지 승부를 봐야 제대로 된 야구가 되는 거지.”
김응용 사장은 언론에서 자신과 김성근 감독을 자주 비교하거나 대립시키는 부분과 관련해서 의미있는 우스갯소리를 내놓았다.
“왜 자꾸 김성근 감독과 나를 붙이는지 모르겠어. 난 현장 12범이야. 현장에서 10번 우승했고 사장하고 나서 2번이나 더 했다고. 김 감독은 2범 밖에 안 돼. 난 별이 12개이고, 김 감독은 겨우 2개라고. 그게 비교가 돼? 내가 도둑질 할 때 그 친구는 1범도 못했어. 내가 도둑질 은퇴하고 나니까 요즘 좀 하는 거야. 친구끼리 자꾸 싸움 붙이지마(웃음).”
김성근 감독을 가리켜 ‘친구’라고 한 부분에 대해 ‘진짜 친구 맞냐?’고 묻자, 김 사장은 “친구보다는 그냥 같은 동료지. 친하진 않았어. 같이 야구를 해보지 않았으니까. 아! 선수 때는 못했어도 해태에선 같이 있었다. 내가 1군에 있을 때 김 감독은 2군 감독이었잖아. 뭐, 내 밑에 있었다고 말하긴 그렇고. 하하.”
김 사장은 “김성근 감독은 지금부터가 자기 실력이다. 올 시즌부터 제대로 성적내는 게 진짜 김 감독 작품”이라며 의미가 함축된 메시지를 전했다.
“한일은행 전에 대한통운에서도 있었고, 그 전엔 한국전력에 있었지. 지금 사장까지 50년 동안 돈 벌이를 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45년은 ‘현장’에서 돈을 번거야. 감독 생활하면서 안 잘린 것만큼은 내가 최고 기록이지. 한 번도 쉬어 본 적이 없으니까. 비결? 한우물만 파야 해. 이해 타산이 밝으면 자꾸 움직여. 요즘 사람들은 융통성이 없어 보인다고 하겠지만, 오래 가려면 지금 있는 곳이 최고의 직장이라고 생각해야 해. 내가 해태에 있을 때, 이런 소문 못 들었어? 감독 마음대로 해 먹는다고. 한 군데 오래 있으면 주위에서 평가를 해주기 때문에 뭐든지 하기가 편해.”
그러면서도 김 사장은 해태 타이거즈 감독으로 지낸 18년 동안 아침에 운동장으로 출근할 때마다 매일같이 가슴에는 사표를 써넣고 다녔다고 말했다.
“언제든지 그만둘 각오를 하고 나갔어. 평생 직장이 어딨어? 성적 못 내면 잘리는 거지. 사장도 마찬가지야. 무능하면 그만둬야지. 난 50년 동안 전쟁을 치른 사람이야. (웃으면서) 이젠 평화롭게 살고 싶어. 물론 감독보단 사장이 조금 낫지. 감독은 전쟁의 장수야. 오늘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했다고 쳐봐. 그럼 그날 밤 감독이 두 다리 쭉 펴고 잘 것 같지? 절대 아니야. 그날부터 다시 시작이야. 오늘 전쟁이 끝났다고 다음에 전쟁이 없겠어? 또 마찬가지라고. 항상 불안한 거지.”
수많은 선수들이 김응용 사장과 감독과 제자의 연을 맺었다. 그중에서도 한때 김 사장과 ‘불편한 관계’였다고 알려진 임창용에 대한 얘기로 화제를 옮겼다. 김 사장은 지난 WBC에서 임창용이 결승전 때 이치로를 거르지 않은 부분과 관련해서 자기가 말한 걸 제대로 써 달라며 이런 얘기를 털어놓았다.
“당시 몇몇 언론에서는 내가 창용이에 대해 ‘의도적인 사인 무시라며, 창용이가 나랑 있을 때도 종종 그런 적이 있었다’라고 말한 것처럼 보도됐어. 그러나 난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내가 봤을 땐 그때 창용이가 잘못한 게 아니었어. 벤치에서 잘못한 거지. 감독이나 코치가 마운드로 올라갔어야지. 모든 사람들이 보는 데서 작전을 지시하고 내려왔어야 했고, 포수도 미트를 빼거나 일어섰어야지. 그런데 벤치에서도 가만있었던 것 같고, 포수도 정면승부하는 것처럼 앉아 있었잖아. 창용이는 고집이 있는 선수야. 다른 선수도 아니고 이치로인데, 벤치에선 조용하고, 그런 상황에서 공을 빼겠어? 난 김인식 감독한테도 대회 끝나고 들어왔을 때 뭐라고 했다고. 창용이가 고집 있는 아이라는 걸 알면, 사람들 보는 데서 작전을 내렸어야 한다고. 창용인 잘못 없어. 제대로 사인을 안 낸 벤치의 잘못이지. 여론에서 창용이만 나쁜 놈으로 몰고 간 거야.”
김 사장은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승엽은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끝낸 뒤 삼성으로 복귀하는 것은 반대한다’라고 말한 부분에 대해서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설명을 덧붙였다.
“난 외국에 나갔을 때는 한국 돌아와서 야구할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외국에서 모든 인생을 걸어야 한다는 거지. ‘국민타자’라고 칭송 받던 선수가 일본에서 활동하다가 한국 들어와서 평범하게 야구 인생을 끝내는 것보다는 선동열 감독처럼 멋진 모습으로 은퇴하는 게 맞다는 얘기였어. 즉 야구선수는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도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는데, 이상하게 전달이 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네. 다른 선수 같으면 이런 말도 안 해. ‘국민타자’니까 하는 얘기지. 일본에서 승부를 걸라는 말이야. 내 말은.”
감독 시절, ‘애주가’로 소문났던 김 사장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면 1년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수들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그때 선수들 수십 명이 따라 준 술을 모두 받아 마시고도 끄떡도 하지 않은 걸로 유명했다. 그 얘길 꺼내자, 김 사장이 슬며시 웃음을 띠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사람인데, 어떻게 그걸 다 마시고 버티겠어. 술 마시는 척 하고 미리 준비해놓은 통에다 살짝 버렸지. 그랬더니 선수들이 ‘저 새끼 술 쎄네’ 했다고 하더라고. 하하.”
지금도 꿈을 꿀 때는 넥타이 메고 있는 ‘김응용 사장’이 아닌 유니폼 입고 있는 ‘김응용 감독’이 등장한다는 그는 올 시즌 삼성 라이온즈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선, ‘우승 말고 할 게 뭐가 있겠느냐’고 딱 잘라 말한다.
●김응용은…
출생 1941년 9월 15일 신체 185cm 95㎏
소속 삼성 라이온즈(대표이사 사장)
학력 우석대학교 데뷔 1962년 한일은행ㆍ
국가대표 경력 1977년 국가 대표님 감독 나카라과 대륙간법 우승(한국 야구 최초 국제 대회 우승), 해태 나이거즈 감독(1983~2000), 삼성 라이온즈 감독(2000.10~2004.11), 2000년 시드니올림픽 야구 국가 대표님 감독 동메달, 2004년 12월 삼성 라이온즈 사장
경산=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