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은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총 12억여 원을 들여 퇴임 후 머물 집을 짓고 있다. 이곳에 기념관도 함께 건립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아래는 봉하마을에 있는 노 대통령의 생가. 연합뉴스 | ||
봉하마을 사저는 1300여 평의 부지 위에 연건평 287평 규모의 한 개 동이 지어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약 절반인 137평 정도를 노 대통령의 사저로 사용하게 되고 나머지는 경호원용 건물로 사용된다고 한다.
총 공사비는 토지 매입비용까지 합쳐 모두 12억 955만 원이라고 밝혔다. 현재 노 대통령이 가용할 수 있는 재산이 6억여 원 정도이기 때문에 부족한 6억 원은 대출을 받기로 했다는 전언이다. 물론 퇴임하는 대통령의 사저를 새로 짓거나 증·개축하는 데 드는 공사비용은 전부 대통령 사비로 충당해야 한다. 단 대통령 경호실법에 따라 경호원용 건물은 국가 예산으로 만들어진다.
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귀향하는 사례를 남길 예정이지만 정가 일각에서는 의혹의 시선을 쉽사리 거두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서울에 제2의 사저를 마련할 것”이라는 얘기와 함께 “봉하마을에 대규모의 ‘노무현 타운’을 건설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태재단’ 등에서 보듯 전직 대통령들이 퇴임 후에도 왕성한 정치적 영향력 행사를 꿈꿨다가 좌초했던 전력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의 경우에는 과연 어떻게 될까.
전직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노무현 대통령의 사저 건축 계획에도 갖가지 구설수들이 불거지고 있다. 전직 대통령들이 서울의 한 중심에 거대한 저택을 증·개축했던 전례에 비춰보면 귀향을 택한 노 대통령의 경우는 분명 신선한 감이 있다. 따라서 여론의 박수를 내심 기대했던 청와대 측은 뜻밖의 구설수에 다소 섭섭한 표정이다.
노 대통령의 사저 건축에서 첫 번째 의혹으로 대두되는 것은 토지를 판 원래 주인이 공교롭게도 노 대통령과 연관이 있는 인사라는 점 때문이다. 봉하마을 사저 터 1300여 평의 원 주인은 정 아무개 씨로 밝혀졌는데 그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2002년 대선 전후 노 캠프 측에 수억 원대의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다. 그는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등과 함께 노 대통령의 후견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정 씨는 태광실업의 관계 회사인 H 사의 사장인 것으로 밝혀졌다. 토지 매매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는 배경이다.
노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 터의 토지는 2006년 1월 개별공시지가 기준으로 평당 10만 원대로 나타났다. 따라서 전체 공시지가는 약 1억 3000만 원이 된다. 현지 부동산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최근의 공시지가는 현지 시세에 많이 근접해 있기 때문에 이 정도 토지를 1억 9000여만 원에 매입했다면 터무니없이 싸게 샀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봉하마을 사저 바로 옆에 이른바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을 지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는 점이다. 실제 노 대통령은 지난 8월 청와대에서 가진 노사모 회원들과의 만남에서 “퇴임 후 고향에 집을 크게 짓겠다고 생각하는데 그곳에는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이 만들어질 것이다. 거기에는 노사모의 모든 기록이 다 담길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에서는 이와 관련해 “5년 전 DJ가 동교동에 사저와 5층 건물의 아태재단을 동시에 건축하며 소위 거대한 ‘DJ 타운’을 만들었던 것을 연상시킨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대통령 사저 건축비를 은행 대출로 충당하는 것을 보면 그보다 훨씬 규모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노 대통령 기념관 건립 역시 측근들의 도움이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시사월간 <신동아>는 최근호에서 ‘노 대통령에게 팔고 남은 정 씨의 땅 6700여 평이 노 대통령이 언급한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이 들어설 유력 후보지로 떠오를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땅은 노 대통령의 사저 부지와 바로 맞닿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봉하마을 수천 평의 광활한 부지에 대규모 ‘노무현 타운’이 건설될 여지를 남겨놓고 있는 셈이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노 대통령이 고향 봉하마을에 준비 중인 퇴임 후 사저 건축 계획은 바로 5년 전 DJ의 동교동 ‘DJ타운’ 논란과 자주 비교되고 있다.
당시 특히 논란이 됐던 것은 사저를 신축 공사했던 S건설의 우 아무개 회장과 DJ 측과의 특별한 인연 관계 때문이었다. 전남 신안 출생으로 DJ와 동향인 우 회장은 2000년 총선 당시 서울에 민주당 공천을 신청한 전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수백억 대의 재력가로 알려진 우 회장이 호화 주택을 지어 대통령에게 헌납한다는 루머까지 나돌았다.
▲ 노무현 대통령 | ||
반면 퇴임 후 자신의 사무실로 사용하게 될 아태재단 건물에 정작 주인 격인 DJ는 단 한 푼도 내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더 큰 의혹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결국 정권 말기 들어 ‘이용호 게이트’ 등으로 아태재단의 비리 연루 의혹이 드러나면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자 DJ는 이 재단 건물을 연세대에 기증했다. 연세대 측은 이 재단 건물을 ‘김대중 도서관’으로 개명해서 지난 2003년 11월 개관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기 전 연건평 30여 평 규모의 평범한 한옥집이 퇴임 후 5년 만에 거대한 저택과 빌딩 두 채로 둔갑하는 것을 지켜본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사실상 정상적인 임기를 마친 첫 전직 대통령 격인 전두환 전 대통령 역시 퇴임을 준비하며 연희동 사저를 대거 증축하고 일해재단을 준비하면서 상당한 사회적 파장을 야기시켰다. 김용갑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91년 자서전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에서 전 전 대통령의 임기 말 연희동 사저 증·개축을 말렸던 비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이 연희동 사저를 처음 구입한 것은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이던 69년의 일로 장인인 이규동 씨가 구입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40여 평 정도의 1층짜리 한옥이었다. 그러다가 전 전 대통령이 권력을 잡으면서 연희동 사저의 규모도 점차 커진다. 80년 7월 그가 국보위 상임위원장으로 있던 시절, 연희동 지번 통폐합 여파로 대지 면적이 250평으로 늘어나게 됐고, 퇴임을 준비하던 86년에는 대지 94평의 2층짜리 이웃 한옥집을 추가로 매입하면서 기존의 저택과 함께 지금의 ‘대저택’으로 새롭게 개축했다. 바로 김 의원이 밝힌 아방궁 논란이 그것이다.
전 씨의 퇴임 후 구상이 여론의 직격탄을 맞고 결국 ‘5공 청산’의 역사적 소용돌이까지 몰고 간 데에는 ‘일해재단’이 자리하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의 호를 따서 설립된 일해재단은 85년 말 성남에 대규모의 재단 건물을 완공하는 것으로 대통령 퇴임 준비의 서막을 알렸다. 당시 풍수지리학자를 동원, 청와대에 못지않은 최고의 명당자리를 물색한 것으로 알려졌고 영빈관 등 호화시설물이 들어서는 등 사실상 ‘제2의 청와대’로 불리기도 했다.
일해재단은 이후 5공 특위 청문회에서 전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국정원로자문회의 의장으로서 대통령을 자문하는 ‘상왕’의 정치적 영향력 행사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된다. 결국 일해재단은 오늘날 남북 관계 연구를 위한 민간 연구소 성격의 ‘세종연구소’로 바뀌는 운명을 맞았다.
전임자의 퇴임 후 논란을 생생히 지켜본 탓인지 노태우 전 대통령은 사저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조용히 넘어갔다. 그는 자신의 연희동 사저를 거의 고치지 않았고 다만 빈 터에 경호원용 가건축 건물을 세우는 것으로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확인된 바에 따르면 외부 손님들의 접견 장소가 다소 비좁은 탓에 퇴임 한참 후인 90년대 말에 사저 별관 공사를 따로 했다고 한다.
이에 반해 김영삼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상도동 사저를 개축하는 문제로 당시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YS 자신이 92년 대선 과정에서 “퇴임 후에도 사저에 못 하나 박지 않고 그대로 들어가겠다”고 한 공약을 스스로 어긴 결과가 됐기 때문. 하지만 그 규모에 비하면 이는 다분히 정치적 공세 성격이 짙었다. YS의 경우 IMF 사태로 인한 경제 위기 초래로 여론이 가뜩이나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실제 상도동 집은 30년이나 지난 오랜 건물이어서 개축이 불가피했고 또 역대 대통령 사저치고는 무척 소박한 편으로 전해진다. 또한 건축비용 역시 YS의 개인 사비로 충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YS 측은 약 3억 원 정도 들었다고 밝혔으나 부동산 전문가들은 약 4억~5억 원 선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