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전문기자 | ||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대로 된 사회 생활을 경험한 적이 언제부터일까요? 고등학교 졸업 후 곧장 미국으로 건너왔으니까 한 10년 정도 사회를 경험했다고 말해도 될까요? 아마 그 부분도 엄밀히 따지면 여러분들이 겪는 사회와는 좀 차이가 있겠죠. 전 줄곧 야구팀에서만 생활을 했으니까요.
한국에서 35일을 머물면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많이 쌓고 왔습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제 가족들을 방치하다시피하면서 유소년 야구교실과 유소년 야구 기금 모금 등에 열정을 쏟아 부으며 뭔가 의미있는 일들을 하는 데 치중했습니다. 그런데 그로 인해 아주 오랜만에 얼굴을 뵌 부모님과 하나뿐인 동생한테 너무 소홀히 대했고 내심 가족들이니까 저의 분주하고 정신없음을 이해해 주리라 믿었습니다. 물론 부모님께서도 당신들 걱정하지 말고 스케줄대로 움직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미국 오기 전까지 제대로 된 식사 한 번 못하고 아들을 다시 보내야 했던 부모님 심정이 오죽했을까요.
지난 번 귀국해서 출국 직전에 잠시 부산 집에 머문 적이 있었습니다. 백화점에서 수백 명의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집에 들어가니까 집 안에도 수십 개의 야구공들과 모자, 방망이, 그리고 유니폼들이 잔뜩 쌓여 있더라고요. 생전 얼굴도 보지 못한 친척들부터 이웃 분들, 그리고 이런저런 지인들의 사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안고 온 부모님께선 힘들더라도 고마운 마음으로 사인을 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님의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기에 저 또한 새벽까지 쏟아지는 잠을 쫓아가며 사인을 했습니다.
하루는 연기자로 활동 중인 제 동생 신영이가 조심스럽게 클리블랜드 모자를 건네며 “사인 하나만 해도”라고 말하는 거였어요. 신영이가 사인 부탁을 해온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형 생각해서 그동안 모두 거절해 왔는데 이것만은 거절을 못하겠다”면서 미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이래 부모님은 항상 저랑 출퇴근을 같이 했습니다. 아버님은 운전기사로, 어머님은 선수들 식사 당번 등을 맡아 학교 아니면 경기장에서 살다시피했었죠. 저로 인해 하나뿐인 동생은 늘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자랐습니다. 제가 원정 경기나 전지훈련이라도 가면 며칠 동안 동생은 부모님 없이 할머니와 함께 지냈습니다. 형한테 엄마 아빠를 빼앗긴 셈이었지만 동생은 단 한 번도 불평 불만을 터트리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관심을 못 받고 자랐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특징을 잘 살려서 연기자의 길을 선택했고, 지금은 배고픈 배우 생활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동생이 있는데, 형이란 사람은 동생과 개인적인 시간을 못 갖고 ‘공인의 삶’만 추구하다가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동생이 저한테 한 말이 있습니다. “형, 걱정마라. 내가 형 호강시켜줄게. 난 형한테 바라는 거 하나도 없다. 형 몸이나 잘 챙기면 된다.”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한테 양보만 하고 살아온 동생이 형에게 의지하기보단 자기가 형을 호강시켜준다고 하니, 얼마나 든든하고 감동적이었겠습니까.
인간 관계가 우스운 게, 잘나갈 때, 돈을 많이 벌 때, 사람들이 좋아해 줄 때는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오고갑니다. 심심하고 지루해질 틈이 없겠죠. 그러나 만약 제가 야구를 못하고, 노숙자가 돼서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 취급을 당한다면, 과연 제 옆에 남아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여러분에게 꼭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여러분한테는 자신의 모든 걸 줘도 아깝지 않은 친구가 몇 명이나 있습니까. 진정한 친구,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친구가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름이 알려지고 절 좋아해주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진정한 친구, 저의 모든 걸 줘도 아깝지 않은 사람을 만나기가 참으로 힘들다는 걸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가족이 소중해지는 것 같아요. 가족은 제가 야구선수 추신수가 아니라고 해도 절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해 줄 테니까요. 만약 자기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가 있는 분이라면, 전 메이저리그의 그 어떤 유명한 선수들보다 그 분이 백만 배는 더 부러울 것 같습니다. 그 분이야말로 인생을 제대로 산 분이기 때문이죠.
조금씩 얼굴이 알려지고 이런저런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워질 때가 있습니다. 돈이야 다시 벌 수 있지만 사람한테 배신당하면 회복하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자꾸 생각이 많아집니다.
동생 신영이한테는 늘 미안한 마음뿐이네요. 저만 사랑받고 관심받고 자라서 미안하고, 형 노릇 한 번 제대로 못해서 더욱 미안하고, 또 형이 도움을 못 줘서 더더욱 미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줘서 고맙고, 지금 선택한 길, 용기 잃지 말고 계속 도전해 보라는 당부도 덧붙이고 싶습니다.
아무리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스타가 된다 할지라도 나중에 주위를 돌아봤을 때 제 옆에 가족도, 친구도, 후배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중·고등학교 때 같이 야구하면서 장난도 치고, 혼나기도 많이 혼나고, 그러면서 멋진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던 그때 그 친구들이 많이 보고 싶었던 하루였습니다.
애리조나에서 추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