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연아 동영상’이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2008-2009 그랑프리 파이널 쇼트프로그램 부문에서 김연아가 받았던 ‘다운그레이드 판정’ 때문이다. 네티즌들은 당시 테크니컬 심판의 다운그레이드(회전 수 부족) 판정이 오심이었다는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 김연아의 회전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지만 얼마 후 저작권 침해라는 이유로 강제 삭제 됐다. 이에 분개한 네티즌들은 돌아가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영상이 지워질 때마다 다시 올리고 있다. 네티즌들은 “클릭수가 높아지고, 세계인들이 편파 판정 문제에 대해 주목해야 다음 올림픽 때는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며 증거 동영상의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동영상을 거듭 클릭하는 노력까지 보이고 있다.
네티즌들이 이 같은 수고를 감수하는 첫 번째 이유는 여태껏 김연아가 편파 판정에 의해 피해를 받아왔는데 이것이 올림픽 때까지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우려 때문이다. 편파 판정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지난 ‘2008-2009 시니어 그랑프리 3차 대회’ 때 김연아가 받은 ‘롱엣지’ 판정과 ‘2009 ISU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받은 ‘다운그레이드’ 판정이다.
김연아는 성인무대 데뷔 후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수차례 성공시키면서 기본점수 9.5점에 가산점을 받는 폭발력을 보여 왔다. 가산점 행진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 것은 판정 논란 속에 있는 ‘시니어 그랑프리 3차대회’ 때부터다. 트리플 플립의 경우 얕은 인엣지(스케이트 날을 안쪽으로 향하게 하는 것)로 도약하는 것이 정석인데 당시 테크니컬 패널은 김연아의 ‘날의 방향이 모호하다’고 판정, 롱엣지 판정을 내렸다. 이러한 판정은 국내외 피겨 전문가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첫 번째 사건이었다.
결국 김연아는 편파 판정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첫 점프에 트리플 플립 대신 트리플 러츠를 넣었다. 트리플 러츠는 시계방향으로 빙 돌아오다 반시계방향으로 도는 점프로 트리플 플립과 반대로 바깥쪽으로 스케이트 날을 세우는 고난이도의 동작이다.
이러한 시도가 성공하며 김연아는 결과적으로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 기본점수로 10점을 챙기며 0.5점 더 높은 가산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것으로 판정 논란이 사라지나 했지만 이번엔 스케이트 날의 방향이 아닌 회전수가 한 차례 부족하다는 이유로 가산점이 취소됐다. ‘2009 ISU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 때 세 바퀴를 돌아 착지해야 하는데 두 바퀴에 그쳤다는 테크니컬 패널의 판정 때문이었다.
피겨 팬들은 김연아가 세 바퀴를 돌아 착지하는 당시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온라인 사이트에 올리며 문제를 제기했다. 또 편파 판정의 순간에 항상 동일 인물이 테크니컬 패널로 참여했던 점을 들어 단순한 오심이 아닌 외부 압력에 의한 편파 판정이라는 점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패널이 이번 올림픽 때도 참여한다는 소식이 들리며 이러한 주장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편파 판정에 대한 우려는 피겨 팬뿐 아니라 전문가 집단에서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피겨부문 해설을 맡은 방상아 해설위원(SBS) 역시 일반인 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해석을 내놨다. 방 위원은 “여태껏 김연아가 그랑프리파이널과 컵 오브 차이나에서 납득할 수 없는 판정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면서 “실력만으로는 김연아를 따라올 후보가 없지만 이전에도 볼 수 있었던 판정시비가 올림픽에서 의외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 금메달을 예약해 놓은 김연아에게도 ‘편파판정’이라는 의외의 복병이 도사리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심판석 앞에서 김연아가 연기하는 모습. | ||
실제 아사다 마오의 예술점수(PCS) 편차에서 주관성이 가진 한계를 찾아볼 수 있다. 지난 3년 동안 피겨대회에서 마오의 경우 아시아권 대회에서는 190점에 달하는 점수를 기록하는 반면 북미권 대회 출전에서는 20점 정도 낮은 점수를 받아 왔다. 점수의 편차는 예술점수(PCS)에서 갈렸다. 이를 두고 일본의 입김이 작용하는 대회와 그렇지 않은 대회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고개를 드는 것이다.
배기완 캐스터(SBS)는 “편파 판정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ISU 스폰서 7곳이 모두 일본 기업이라는 점에서는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한다. 그는 “현장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어린 선수들에게 성적에 대한 부담을 주고 판정 논란을 제기하는 것보다 한국어로 돼 있는 간판을 몇 개 더 다는 게 현실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는 말로 선수들이 외국경기에서 갖게 되는 위축감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런저런 우려에도 불구,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번 피겨 종목에는 한국인 심판도 참여하게 됐다는 점이다. 한국빙상연맹 이지희 부회장은 한국 최초로 피겨 부문 심판으로 활동하며 이번 밴쿠버 올림픽 때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등 세계적 선수들의 경기를 채점하게 됐다. 이 부회장은 “피겨 종목에 어떤 불합리한 관행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 선입견마저 거뜬히 넘어 버리는 것이 여태까지의 김연아였다”면서 “이번 올림픽에서 불합리한 편파 판정을 받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고 단언했다.
▲ 김해진(왼쪽), 박소연 | ||
“연아 언니, 다리 힘 풀리면 안돼”
피겨계에 초등학생 두 명이 신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주인공은 전국남녀 종합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 시니어 부문에 1, 3위를 기록한 김해진(12·관문초), 박소연(12·나주초).
김해진의 경우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김연아와 함께 출전하는 곽민정(수리고 1)보다 무려 14.55점을 더 받으며 우승트로피를 차지했다. 박소연 역시 대학생 선배들을 제치고 3위에 오르는 놀라운 기량을 선보이며 둘 다 ‘김연아 키즈’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두 선수의 꿈은 4년 후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것. 꿈의 무대를 먼저 밟게 될 선배 김연아에게 두 후배가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과천 아이스링크 위에서 만난 김해진은 김연아에게 보내는 동계올림픽 응원 메시지를 주문하자 두 손을 모으고 한참을 고민한다.
“처음 트리플 악셀에 성공했을 때 연아 언니 어머님이 박수를 치며 칭찬해 줬던 기억이 있다. 훈련이 고되게 느껴지는 순간마다 그때의 기억이 늘 힘이 된다”고 말한다. 때문에 자신도 연아 언니에게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해주고 싶다며 고심하다 “큰 시합 때 긴장하면 다리에 힘이 풀린다. 언니도 많이 떨리면 그럴 수 있을까봐 걱정이다”라고 말하며 활짝 웃는다. 큰 무대에 도전하는 선배가 긴장하지 않고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기를 기도할 계획이란다. 동시에 “다른 선수들은 실수 하나만 해도 크게 감점되는데 언니는 표정 연기랑 점프를 잘하니까 가산점을 더 받아 꼭 1등할 것이다”라며 후배로서 아낌 없는 지지와 함께 “파이팅!”을 크게 외친다.
김해진과 함께 피겨계의 유망주로 주목받는 박소연 역시 선배에게 보내는 응원메시지에 신중한(?) 모습이다. 박소연은 가방 속에 넣어둔 종이 한 장을 꺼내들고는 “전날 밤 응원메시지를 미리 적어 놓았다”며 “혹시 하나라도 빠뜨릴까봐 가져왔다”고 홍조 띤 얼굴로 답한다.
그는 “아이스쇼도 같이 하고 훈련도 받으면서 언니가 하는 걸 옆에서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죽음의 무도를 할 때 언니가 제일 예쁘고 멋있었다. 이번 동계올림픽 대회에서도 멋진 모습으로 금메달 따기를 바라고, 언니가 꼭 잘해줬으면 좋겠다”라며 밤새 준비해 온 멘트를 또박또박 읽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