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는 옛말대로라면 김연아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금메달 획득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설문조사 참여자의 83%가 금메달 획득을 100% 확실시했기 때문이다. 김연아의 열혈팬이라며 설문에 응한 20대 여성은 “점프의 예술성, 기술적인 면에서 김연아를 따라올 선수가 없다”며 “이번 올림픽에서 피겨 역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가 장식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혹시나’ 하는 우려에 금메달 획득 가능성을 50% 이하로 보는 시민들도 있었다. 큰딸이 피겨스케이팅 선수라는 한 ‘피겨 맘’은 “미리암 로리올이라는 테크니컬 스페셜리스트가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그동안 롱엣지, 다운그레이드 등 김연아가 불미스러운 피겨 판정을 받을 때마다 테크니컬 스페셜리스트로 참여한 사람인데 올림픽에서 또 만난다니 김연아가 풀어야 할 숙제가 더 많아진 것 같다”며 걱정스런 표정을 나타냈다.
이러한 특정 테크니컬 심판에 대한 우려는 시민들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금메달을 따지 못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45.5%가 편파판정으로 인해 김연아가 2위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에 스티커를 붙였다. 불리한 판정에 대한 걱정만큼 국내외의 과열된 기대와 관심이 경기 집중력을 흐려 놓을 수 있다는 응답도 40%에 달했다. 40대의 한 여성은 “이제 겨우 스무 살이 된 어린 소녀가 자신이 치러야 할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전 세계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부담감이 어떨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면서 “금메달보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라고 스티커와 함께 응원의 메시지를 덧붙였다.
그동안 경기 때 입은 의상마다 찬사를 받았던 김연아. 이번 올림픽에선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가 팬들 사이에선 경기 결과 못지않은 관심사다. 그렇다면 여태까지 입었던 의상들 중 시민들은 어떤 것을 ‘베스트’로 기억하고 있을까.
시민 52.8%가 선택한 베스트 의상은 2009-2010 피겨 시니어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 보여준 ‘본드 걸’ 의상. 007 영화음악에 맞춰 관중들에게 총알을 날리던 모습은 시민들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2008~2009 시즌 쇼트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죽음의 무도’ 의상 역시 많은 지지를 받았다. 시민들은 “보다 성숙해진 김연아를 볼 수 있어 신선한 충격이었다”며 32.5%가 베스트로 꼽았다. 물론 20~30대 남성들은 “셰헤라자데에서 보여준 붉은 의상이 섹시하고도 예뻤다”면서 카리스마보다는 여성미 넘치는 록산느의 탱고 같은 의상에 스티커를 붙였다.
은반 밖에서는 스포츠계의 ‘품절녀’로 불리는 김연아. 경기 때 착용한 귀고리는 한 달 안에 완판되고 대학교 입학 인사 차 방문했을 때 입었던 상의는 국내에 단 한 장도 남지 않았다. 김연아가 출연한 광고 역시 매출효과를 톡톡히 봤다. 삼성전자의 에어컨과 휴대폰은 김연아 출연 전후를 비교했을 때 20% 정도의 매출액 차이를 보였다.
▲ 다정한 사제 지난해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 경기를 마친 김연아가 오서 코치와 기쁨을 나누고 있다(위). EPA/연합뉴스. 조니 위어와의 환상적인 갈라쇼 연기(아래). | ||
연아 때문에 산 두 번째 아이템은 휴대폰. 여성들 대다수의 선택을 받으며 32%의 스티커를 차지했다. 김연아는 광고에서 ‘연아의 하루’라는 주제로 평범한 여대생의 일상을 보여주었는데 이 점이 20대 여성들에게 강한 공감대를 일으키며 높은 매출효과로 이어지고 있었다.
국내와 해외를 오고 가며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 김연아. 스무 살에 꼭 해야 하는 게 연애라는데, 그래서 준비해 본 질문은 스무 살 꽃띠 김연아에게 시민들이 나서서 사귀라고 소개해주고픈 남자친구는 누구일까. 박태환, 박지성, 이승기, 아이스쇼 파트너였던 조니 위어까지 외모와 실력, 재력을 두루 겸비한 쟁쟁한 후보들이 떠오른 가운데 설문에 참여한 시민들의 61%가 이승기를 택했다. 특히 이승기는 40~50대 여성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설문에 참여한 40대 여성은 “김연아에게 기가 너무 센 남자는 안 된다”며 “약간 어리숙하면서 착해 보이는 이승기는 연아 말이라면 꼼짝을 못할 것 같다”고 한 표를 보탰다.
반면 박지성은 “같은 운동선수이기에 둘 중 하나는 꼼짝 없이 내조만 해야 할 것 같다”면서 두 스타플레이어를 모두 보기 위한 바람 때문인지 16.6%의 낮은 응답률을 보였다. 질문에서 몇몇 남성들은 “내가 사귀고 싶다”며 대답을 회피하기도 했다.
김연아의 빙상 밖 남자친구의 조건이 ‘유순한 성격’이라면 은반 위 김연아 남자는 ‘경력’이 주요한 기준으로 보였다. 아이스쇼 파트너로 맺어주고 싶은 선수를 선택하는 질문에는 이미 함께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조니 위어와 스테판 랑비엘이 스티커를 양분하며 1, 2위를 차지했다. 1위를 차지한 조니 위어는 2008-2009 시즌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 갈라쇼 피날레 무대에서 빅뱅의 ‘붉은 노을’에 맞춰 김연아와 호흡을 맞춘 파트너다. 이후 김연아가 ‘이상형’이라고 밝히기도 해 잠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조니 위어는 57.1%의 지지를 받으며 은반 위 김연아의 남자 1위로 뽑혔다. 뒤를 이어 ‘아이스올스타즈 2009’ 오프닝무대에서 듀엣 열연을 보여준 스테판 랑비엘이 28%를 차지했다.
물론 빙상 안팎으로 김연아와 ‘찰떡궁합’으로 불리는 이성은 이미 존재한다. 현재까지 가장 오랜 시간을 김연아와 함께 해온 브라이언 오서 코치. 김연아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만큼 천생연분 사제지간으로 통하는 오서의 행동 하나하나도 시민들에겐 또 다른 볼거리다. 시민들의 기억 속에 브라이언 오서와 김연아가 함께할 때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은 무엇일까.
다수의 공감을 얻은 것은 점수 발표 후 김연아를 자랑스레 껴안아 주는 모습으로 44.2%의 스티커를 차지했다. 피겨를 가르치고 있는 30대 강사는 “경기 때 보는 것은 7분 정도의 연기지만 동작 하나하나를 몸에 익혀가는 과정 동안 선수와 지도자 간에는 수십 배의 긴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며 “서로 안고 기뻐하는 모습에서 그동안의 고생이 녹아나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하다”고 답했다.
역대 올림픽 피겨 금메달리스트들은 정상의 자리에서 은퇴를 선언하며 프로로 전향하는 수순을 밟은 게 대부분이었다. 올림픽 이후 어떤 길을 걸을지 김연아 자신이 선택할 몫이지만 상상은 자유라지 않는가. 시민들이 김연아에게 권하고픈 은퇴 이후의 진로에 대해 알아봤다.
단연 피겨 여왕의 아름다움을 더 지켜보고 싶다는 응답이 대다수로, 아이스쇼나 뮤지컬 등에 출연하며 스케이트화를 벗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62.5%를 차지했다.
시민들은 “여태껏 피겨라는 종목의 인기를 한껏 올려놓았는데 이 관심을 꾸준한 활동으로 이어갔으면 한다”라고 대답했다. 다음엔 지도자로 꿈나무 양성에 힘썼으면 한다는 응답이 19.5%를 차지했다. 그동안 김연아는 예능프로그램에서 화려한 노래 실력과 춤 실력을 보여줬지만 연예계 진출을 권하고 싶다는 응답은 13.6%로 의외의 낮은 비율이었다. 한 40대 여성은 “연예계에 진출하면 여태껏 쌓아온 순수하고 맑은 모습을 잃을까 걱정 된다”면서 “선수로서 보여 온 겸손하고 성실한 모습을 꾸준히 이어나갔으면 한다”는 당부도 함께 전했다.
한편 응원메시지를 남기는 자유게시판에는 응원보다 남성 팬들의 구애(?)로 가득 찼다. “연아야 오빠가 밴쿠버 금메달 예약해 놨다. 26일 찾아가라” “금메달 못 따도 괜찮아 내가 너 책임질게” “연아야, 오빠 돈 좀 빌려줘…”라는 각종 남성팬들의 이색(?) 메시지들이 게시판을 장식했다.
설문조사 풍경
스티커 설문 조사를 준비하며 고민할 수밖에 없는 부분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참여하게 할 수 있는가 였다. 그러나 은반 위 여왕 앞에서 이러한 고민은 사치(?)였다.
명동 거리에 김연아 사진이 부착된 설문조사 판이 등장하자마자 저절로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준비한 스티커가 모자랄 정도로 한 표를 보태고 싶어하는 사람이 줄을 이었고 김연아의 인기 덕에 처음의 고민은 생각보다 쉽게 해결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더 어려운 고민이 던져졌다. 세계적인 스타이다 보니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다양한 국가의 팬들이 다가와 사진 촬영과 함께 설문 참여를 원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설문 조사는 국적이 다양한 관광객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며 국경을 넘나드는 김연아의 인기를 실감케 했지만 기자는 바디 랭귀지로 질문을 설명해야 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일본인 관광객들의 스티커 향방이 또 다른 관전 포인트(?)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번 피겨 종목에서 아사다 마오와 김연아의 동갑내기 대결이 주목을 끌다보니 설문에 참여한 일본 관광객은 설문 조사 판 앞에서 날선 경쟁심을 보이기도 했다. 가령 금메달 획득 가능성을 점치는 질문에 0%라고 응답하는 일본인들이 눈에 띄는가 하면 금메달을 놓쳤을 경우 그 이유를 ‘다른 선수와의 실력차이 때문’이라고 응답하기도 했다. 어떤 관광객은 자유게시판에 아사다 마오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일본어로 살짝 남겨 두기도 했다.
일본인 친구와 동행 중이던 한국 남성은 설문 문항을 해석하며 “김연아는 아사다 마오의 라이벌이다”라고 친절히 소개하다 “경쟁자는 무슨…사실 라이벌이라 하기도 그렇지”라며 한국어로 혼잣말을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