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전문기자 | ||
―얼마 전 박찬호 선수가 뉴욕 양키스에 전격 입단했다. 당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찬호 선수는 추신수 선수한테 홈런을 맞아도 기쁠 것 같다고 했는데, 실제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어떤 마음이 들 것 같나.
▲양키스하면 미국 최고의 명문구단 아닌가.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뛰고 싶어하는 팀이라 내심 부러운 게 사실이다. 박찬호 선배님이랑 투수와 타자로 맞붙는 상황을 예상한다? 그 결과를 미리 예측하기란 매우 어렵다. 어느 때보다 긴장되고 흥분되겠지만 지지 않을 거란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할 것 같다.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내가 양키스 구장에선 유난히 홈런이 많이 나온다는 사실이다(웃음).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한국 선수들로는 박찬호, 추신수 선수들이 있을 뿐이다. 평소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이인지 궁금하다.
▲이전에는 한두 번 전화통화를 한 적도 있고 경기 앞두고 잠시 만나 뵌 적은 있지만 서로 스케줄도 다르고 시간대가 맞지 않아 친해질 기회를 갖지 못했다. 후배들에게 메이저리그의 문을 열어준 분이고 그분의 활약에 의해 한국 선수들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다고 본다. 양키스에서 박찬호 선배님을 원했다는 게 대단한 일이다. 그분의 활약을 보면서 많은 힘을 얻고 있다.
―일본 롯데 지바에 진출한 김태균 선수랑 동갑이라고 들었다. WBC 대표팀에서 만난 적도 있는데, 그의 일본 진출에 대해 갖고 있는 ‘느낌표’가 있다면?
▲솔직히 일본보다는 미국이 적응하기에 더 쉽지 않았을까 싶다. 일본은 선수의 약점만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스타일이다. 반면에 미국은 한국이나 일본처럼 정교하지 못하다. 일본이 같은 동양권이고 거리가 가깝다는 장점은 있지만 야구면에선 미국을 선택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태균이가 워낙 성격이 좋기 때문에 이런 모든 우려를 가뿐히 뛰어 넘을 것으로 본다.
―일본 야구보다 미국 야구가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이 훨씬 많지 않나.
▲뭐랄까, 미국 야구는 좀 더 공격적이라고 하면 맞겠다. 직구도 훨씬 많이 던진다. 만약 내가 몸쪽 공에 약하다 치자. 미국 선수들은 그 약점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 약점만 노리진 않는다. 가만 보면 일본은 상대 선수가 못 치는 부분만 계속 공격하더라. 변화구도 많이 던지고. 미국에선 커브는 던져도 스플릿공은 잘 안 던진다. 그런 점에서 힘들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훈련장에 매일 출퇴근하면서 몸을 만들어 온 것으로 안다. 그런데 트레이너 코치가 추신수 선수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얘긴 무슨 소린가?
▲많이 알려졌지만 내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야구장에 일찍 나가는 편이다. 캠프 직전에는 매일 저녁 8시에 취침해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와이프랑 차 한 잔 마시고 야구장에 가면 새벽 5시다. 그렇다보니 트레이너가 너무 일찍 나오게 된 것이다. 하루는 그 트레이너가 나한테 ‘부탁하건대, 6시 넘어서 나오면 안 되겠냐?’고 사정을 하더라. 팀에서 신경 쓰는 타자다보니 못 본 척은 못하고, 맞추자니 시간 때문에 벅차고, 고민하다가 그런 얘길 꺼냈는데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6시 15분까진 나오기로 약속했다.
―도대체 그렇게 일찍 야구장을 나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 미국 진출 10년 만에 처음으로 장만한 스위트홈을 배경으로 가족사진 한 장 찰칵! | ||
추신수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깔끔한 스타일이다. 그의 성격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자신의 옷방 정리. 마치 군대 내무반처럼 재킷, 티셔츠, 유니폼, 모자, 속옷, 양말 등 모든 의류들이 각이 잡혀서 색깔별로 구분돼 정리돼 있는 걸 보고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였다. 옷방뿐만 아니다. 색깔별, 디자인별로 나란히 진열된 신발장을 보고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제(현지시간 2월 24일) 샤피로 단장, 매니 악타 신임 감독과 미팅을 했는데 어떤 말들이 오고 갔는지 궁금하다.
▲지금까지 야구하면서 처음으로 주전 자리에 대한 부담 없이 한 시즌을 스타트하게 됐다. 단장과 감독이 올 시즌에는 우익수 자리를 보장해준다는 얘기를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좌익수와 우익수를 오간 적이 있는데 올해는 계속 우익수에 세우겠다고 하더라. 내가 사이즈모어를 보고 목표를 세웠듯이 많은 젊은 선수들이 날 롤모델로 삼고 있다는 부분도 강조하셨다. 그리고 아직 결정 나진 않았지만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게 된다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결과를 얻어냈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악타 감독이 남미 출신이긴 해도 영어도 잘하고 성격이 굉장히 쾌활한 편이다. 잘나가는 선수든 나이 어린 선수든 차별을 두지 않고 잘 대해준다. 우리 팀이 묵직한 선수들은 별로 없지만 부상에서 돌아온 선수들과 젊은 선수들이 잘 뭉치면 나름 괜찮은 성적을 낼 수도 있다. 팀 분위기가 아주 많이 좋아졌다.
―어느새 팀의 주축이 된 모양새다.
▲선수들이 구단에 무슨 항의할 게 있으면 모두 날 찾는다. 나밖에 얘기할 사람이 없다면서. 그만큼 구단은 물론 선수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는 소리다. 한편으론 고맙고, 또 한편으론 자만해질까봐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감독이 나한테 우익수 자리를 보장해줬다고 해도 그게 계속 진행될 거란 생각은 안 한다. 그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추신수는 지금까지 만족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아시아 선수 최초로 20-20클럽을 달성하며 메이저리그 중심타자로 인정을 받았지만 그 기록을 달성하는 순간 잊어버렸고, 다음날 다시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기자가 ‘30-30클럽’이냐고 물었더니 “지난해 성적보다 더 나은 선수가 되는 게 목표”라며 자세를 낮췄다.
―해마다 새로운 도전과 숙제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어느 해보다 올 시즌이 추신수 선수한테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피겨의 김연아 선수가 정말 대단해 보인다. 남자도 아닌 여자가 그 큰 무대에서 실수 없이 연기를 펼친다는 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전혀 동요 없이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는 걸 보면서 진심으로 부러웠다. 더욱이 피겨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 선수의 연기는 다른 선수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김연아 선수를 보면서 나 또한 많은 깨달음을 가졌고, 뭐든지 열정을 갖고 노력하는 자에겐 당할 자가 없다는 사실도 새삼 알 수 있게 됐다.
―어제, 김용달 전 LG 코치가 클리블랜드 훈련장을 방문해서 추신수 선수와 많은 얘길 나눴다. 김 코치가 타격과 관련해서 많은 조언을 한 걸로 알고 있는데.
▲한국에서 타격코치로 유명한 분이 직접 훈련장까지 찾아와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하고 황송했다. 김 코치님은 내가 왜 삼진이 많은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리적으로 정확히 짚어주셨다. 난 미국코치든, 한국코치든 나에게 도움이 되는 지적이라면 그걸 달게 받아들이고 노력해볼 의향이 있다. 김 코치님은 올 시즌,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려고 하기보단 장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내 고민을 제대로 꿰뚫고 계셔서 너무 놀랐고 명쾌한 해결책 제시에 정말 감사했다.
추신수는 그동안 이런 저런 인간관계로 인해 많은 아픔을 겪었다. 진심으로 다가섰던 사람들에게 배신감도 느꼈고 모든 일이 자기 맘 같지 않다는 현실도 깨달았다. 그래서 앞으론 ‘나쁜 남자’가 되고 싶다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만큼 제대로 상처를 받았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긴다. “사람은 노력해도 배신당하고 배신할 수 있지만 야구는 노력하는 만큼 결과가 주어지기 때문에 더더욱 야구가 좋아지는 것 같아요.”
‘6년 짝꿍’ 앨런과 결별 마음 아파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며칠 전에 결정했다. 마음은 아프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추신수가 2004년부터 에이전트 관계를 맺어온 앨런 네로와 결별하고 메이저리그 최고의 에이전트로 평가받는 스캇 보라스와 새로운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한국 야구 팬들에게 스캇 보라스는 텍사스 레인저스에 입단한 박찬호의 초대형 계약을 이끌어낸 능력 있는 에이전트로 알려져 있다. 구단 입장에선 만나고 싶지 않은 최악의 협상 대상이지만 선수들을 위해 최고의 계약을 만들어낸 최고의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가 추신수와 파트너를 이룬 것이다.
“스캇 보라스는 6년 전부터 나한테 연락을 해왔다. 그 당시엔 별 볼일 없는 마이너리그 선수였는데도 불구하고 나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표현했었다. 솔직히 스캇 보라스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잘나가는 선수들한테는 많은 돈을 받은 만큼 열심히 도움을 주지만,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위해선 별로 하는 일이 없다는 이미지다. 그러나 이번에 몇 차례 접촉하면서 그가 왜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에이전트로 평가를 받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추신수의 말에 의하면 스캇 보라스는 이미 추신수에 대한 모든 자료를 완벽히 만들어 놓고 있었고, 클리블랜드의 재정 상태부터 한 해 수입, 그리고 다른 선수들의 몸값 분석까지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준비해 놓은 후 추신수에게 자신이 추신수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프리젠테이션을 했다고 한다.
“단순히 높은 몸값을 챙기기 위해서 스캇 보라스와 손을 잡은 건 아니다. 메이저리그 선수로 성장하면서 자신이 어떤 에이전트와 일을 하느냐에 따라 구단에서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 스캇 보라스는 구단 입장에선 굉장히 까다로운 에이전트이고, 가급적이면 상대하고 싶지 않는 대상이다. 클리블랜드 구단 또한 내가 스캇 보라스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는 데 대해 불편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나 추신수는 이전 에이전트 앨런 네로와 결별하는 과정에서 큰 아픔을 겪었다고 말한다.
“앨런은 정말 가족 같은 사이였다. 내가 클리블랜드에 정착할 수 있게끔 모든 배려와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클리블랜드와 장기 계약을 앞둔 상태에서 앨런 또한 많은 준비를 했을 텐데 내가 다른 에이전트와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을 때의 실망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너무 좋은 분이셨고 나한테 아버지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더더욱 관계를 정리하기가 힘들었다. 솔직히 지금도 그분에 대한 미안함이 사라지질 않는다.”
추신수는 앨런 네로와 결별하게 된 배경에는 이런 이유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 많은 아픔이 있었다. 정을 내세우다보면 결국 내가 다치게 되더라. 앨런 네로와도 비즈니스 관계일 뿐이다. 공적인 입장만을 생각하게 됐다.”
거물급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와 계약을 맺고 새로운 시즌에 들어가는 추신수. 앞으로 야구 외적인 일은 모두 잊고 오로지 야구에만 전념하겠다는 그의 각오는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현장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애리조나=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