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학, 전창진 | ||
일단 휴대전화 벨소리부터 다르다. 외모 상 훨씬 세련되고 유해 보이는 유재학 감독은 그냥 “따르릉”이다. 반면 우직한 스타일인 전창진 감독의 휴대폰은 백지영의 감미로운 목소리(잊지 말아요)가 반긴다. 기본적으로 유 감독은 말수가 적다. 무척 예의 바르고, 겸손하며 타인을 존중하지만 그렇다고 상냥한 스타일은 아니다. 유행 이런 거 신경 안 쓴다. 반면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진 전 감독은 외모와는 달리 멘트 하나하나가 죽여준다. 같이 있으면 심심하지 않다. 남도 잘 웃기고, 자기도 잘 웃는다. 연예가 뒷얘기 이런 거 좋아하고, 각종 트렌드를 즐길 줄 안다. 따지고 보면 패션도 신경을 쓰는 편인 전 감독 쪽이 더 낫다.
두 감독은 농구계에서 대인관계가 좋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방식이 전혀 다르다. 먼저 농구단 주무에서 시작해 최고의 감독 자리에 오른 전창진 감독은 두루두루 친하지만 그중에서도 확실한 자기사람들이 있다. 강을준 LG 감독, 강동희 동부 감독 등 후배들은 물론 선배들까지 포함한 ‘전라인’이 형성될 정도다. 이 라인에 찍히면 농구계에서 제대로 운신하기 힘들 정도란 말이 나돈다. 강을준 감독은 정규리그 막판 KT와 모비스의 선두다툼이 치열할 때 “창진이 형님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모비스를 이기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 감독의 대인관계는 ‘무적(無敵)’으로 표현된다. 도대체 적이 없다. 뭐 행동 하나 말 하나 남에게 피해를 끼칠 만한 일은 좀처럼 하지 않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이는 뒤집어보면 정말 친한 사람은 없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실제로 실과 바늘의 관계인 임근배 모비스 코치 등 한솥밥 식구들을 제외하면 특별히 가깝게 지내는 농구인은 별로 없다. 이동훈 모비스 홍보팀장은 “(유) 감독님의 베스트프렌드는 대개 고교나 대학시절 사귄 일반인들”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관점에서 둘의 관계도 정확히 진단할 수 있다. 유재학 감독은 “서로 바쁘고, 또 최근 들어 시즌 때는 성적 등 라이벌구도가 되니 자주 연락할 수는 없다. 그래도 경기장에서 만나면 다른 감독들은 짧게 인사만 해도 창진이와는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다”고 말했다. 유 감독에게 이 정도면 농구인으로는 많이 친한 것이다. 이에 물론 전창진 감독도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으로 어려서부터 한 팀에서 오랫동안 운동했으니 서로를 잘 아는 친구 사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로 연락을 자주 하지는 못 한다”고 덧붙였다. 정리하자면 둘은 나쁠 게 없는 확실한 친구 관계임에는 분명하지만 수시로 연락하고, 속내를 털어놓는 ‘죽고 못 사는’ 정도는 아닌 것이다. 이런 절친들은 전 감독의 경우, 농구계에 사조직처럼 존재하고, 유 감독은 농구판 밖의 일반인들로 구성돼 있다는 게 차이다.
이런 차이는 구체적인 농구지도법과 선수관리에서 발견된다. 훈련과 휴식을 엄격히 구분하고, 특히 훈련만큼은 혹독하게 하는 것은 둘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전수법은 좀 다르다. 유재학 감독은 전술훈련 때 선수들의 위치를 50cm 단위로 치밀하게 챙긴다. 워낙에 세부전술이 뛰어나다 보니 평범한 선수도 열심히 이를 마스터하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다. 모비스 선수들이 “감독님이 한 말은 다 맞아 떨어진다”며 ‘농구의 신’이라고 부를 정도다.
유 감독이 미시적이라면 전 감독은 상대적으로 거시적이다. 기본적으로 세부전술도 많이 연구하고 선수들에게 전수하지만 이에 앞서 선수들에게 동기를 유발하고, 하나된 팀워크를 만들어내는 것을 중시한다. 지난해 꼴찌였던 KT가 패배의식을 딛고 ‘올 시즌 소닉붐(KT의 팀이름) 신화’를 쓴 원동력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둘의 뛰어난 선수장악력도 그 과정이 좀 다르다. 전 감독은 엄한 훈련만 끝나면 일상생활에서 선수들에게 더없이 편한 형님, 아저씨가 된다. 농담은 물론 술자리, 당구, 가벼운 게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선수들과 가깝게 지낸다. 이러니 가끔 군기를 잡기 위해 전 감독이 입을 다물어 버리면 그것이 무서운 것이다.
유재학 감독은 거꾸로다. 훈련이 끝나면 거의 선수들을 터치하지 않는다. 그냥 편하게 놔둔다. 필요한 말만 하지 선수들에게 일부러 다가가기 위한 멘트는 거의 없다. 대신 선수별로 1년에 한두 번 면담을 할 때 완벽한 소통을 이룬다. 팀의 간판 양동근이 MVP까지 수상했는데 감독이 인정하는 것 같지 않아 한 번 면담을 하고는 끝내 울음을 터트린 것은 유명한 일화다.
1남1녀를 둔 기러기 아빠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둘은 일상생활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유 감독은 온화한 이미지에 가려져서 그렇지 따지고 보면 전체 농구계에서 1~2위를 다투는 애주가다. 농구인으로는 작은 체구인데 그 많은 술을 어디로 빨아들이나 생각이 들 정도로 양과 횟수가 많다. 과음으로 건강이 나빠지기도 했지만 운동을 강화했을 뿐 아직도 스트레스는 주로 술로 푼다.
이에 비해 전창진 감독은 술을 한 잔도 하지 않는다. 스트레스는 사람들과 이것저것 잡기를 즐기고,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푼다. 또 혼자 쉴 때는 주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유 감독이 독서를 즐기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심지어 좋아하는 하계전지훈련지도 태백산(KT)과 미국 서부(울산)로 극과 극이다. 전 감독의 태백훈련은 매년 쏠쏠한 재미를 본 까닭에 타 팀이 따라할 정도이고, 유 감독은 올 시즌까지 최근 5년 중에서 미국전훈을 다녀온 4번은 모두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여우와 호랑이로 불리는 유재학, 전창진 감독의 경우 겉으로 드러난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늬에 불과하다. 결과는 같지만 그 과정은 서로 다른 쪽에서 진행됐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명성 대신 훈련과 조직력이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로 국내 프로농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둘의 지도스타일이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이다.
●유재학 감독은…
▲출생 1963년 3월 20일 ▲신체 180cm 80㎏ ▲소속 울산 모비스 피버스 ▲학력 연세대학교 ▲수상 2009년 동부프로미 프로농구 감독상, 2007년 프로로농구 정규리그 감독상 ▲경력 인천 전자랜드ㆍ울산 모비스 감독
●전창진 감독은…
▲출생 1963년 5월 20일 ▲신체 185cm 102㎏ ▲소속 부산 KT 소닉붐 ▲학력 고려대학교 ▲데뷔 1986년 삼성전자 입단 ▲수상 2010년 KCC 프로농구 감독상 ▲경력 원주 동부ㆍ부산 KT 감독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