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과 ‘취중토크’를 했다. 선수들의 질문과 전창진 감독의 ‘취재’로 진행된 아주 특별한 인터뷰였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선수들 부탁으로 실명 공개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신치용 감독의 거듭되는 강요에 이름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질문 내용을 들은 신 감독은 “자슥들이 이런 기회에 좀 더 쎈 질문 좀 하지”라며 여유 있는 표정을 지었다.
―평소 술을 많이 드시는데 술 마시는 특별한 요령이 있나요?(최태웅)
▲니가 나만 보면 ‘술 좀 적게 드세요’ 해놓고, 요령을 말해달라고?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어. 사람들과의 관계가 있으니까. 특별한 요령은 없다. 원래 내 스타일이 술을 눈치보면서 먹지 않아.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운동하는 것도, 항상 열심히 하니까^^. 난 술 마시고 들어가선 항상 양치질을 하고 잔다. 그래야 다음날 술이 잘 깨더라고. 아침에 일어나선 무조건 7킬로미터씩 뜀박질을 하고 사우나를 하지. 술 마실 땐 무조건 기분 좋게 마시는 것이 중요해.
―술 많이 드시고도 다음날 아침에 똑같이 일어나시는 비결이 뭔가요?(이형두)
▲자슥들이 감독을 아예 술로만 보내버리려고 하네(웃음). 무슨 술 질문이 그리 많아? 술 마신 다음 날은 솔직히 나도 힘들다. 속이 부대낄 때도 많고. 하지만 안 잘리려고 정신력으로 버티는 거야. 내가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봐. 감독을 뭘로 알겠어? 새벽 3시까지 마시고 5시에 일어나는 사람이 제정신이겠냐? 하지만 술 마신 다음날 더 일찍 기어나오는 건 정말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거야.
―배구계에 지대한 업적을 남기셨는데, 마지막 인생의 목표는 뭔가요? 팀 우승, 이런 거 말고요.(신선호)
▲글쎄, 이 질문에 대답을 해도 되는 건가? 내가 오랫동안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배구계 현안들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어. 그래서 기회가 주어지면 행정 쪽 일을 해보고 싶다. 그럴 기회가 없다면 내가 가진 배구 지식과 노하우를 유소년들에게 가르쳐주거나 배구 발전에 도움이 되는 곳에 쓰고 싶기도 해. 그냥 백수됐다고 ‘뒷방’으로만 물러나 있으면 너무 아깝잖아. 내가 갖고 있는 경험과 지식들이.
―언제까지 배구 감독을 하실 건가요?(고희진)
▲이름 안 들어도 이런 맹랑한 질문을 할 사람은 희진이밖에 없을 거야(웃음). 이 대답은 분명해. 당연히 잘리는 날까지 하는 거지. 올 시즌 개막 전에 선수들한테 부탁했던 내용들이 있었다. 제일 먼저 기본을 지키자. 그 다음에 겸손하자. 그 안에 답이 다 있거든. 기본을 지키자는 건 배구 얘기가 아니었어. 인간적인, 사람이 살면서 지켜야 하는 기본을 말한 거였지. 겸손도 마찬가지고. 감독이 프런트나 선수들한테 군림하려고 들면 ‘바보’나 마찬가지야. 선수들을 존중하고, 프런트를 인정해주면 불협화음이 일어날 일이 없거든. 만약 내가 선수들과 프런트한테 인정받지 못하는 감독이라면 계약 기간이 남아 있어도 내 스스로 그만둘 것이다.
―감독 생활 중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인가요? 그리고 그걸 어떻게 극복하셨나요?(손재홍)
▲15년간 감독하면서 단 한 번도 힘들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긴장을 풀어본 적도 없고. 오히려 해가 갈수록 더 힘들었지.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매번 우승만 하다가 2년 연속 현대캐피탈에 패했을 때였어. 그때가 우리 팀의 가장 큰 위기가 아니었나 싶어. 그 위기를 극복한 방법은 누구 탓을 하지 않고 모든 원인을 감독의 자질 부족으로 몰고 간 거야. 현대가 잘해서 졌다는 생각은 안 했어. 내가 선수 구성을 잘못했던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됐었지. 그리고 그 다음 시즌을 노렸다. 두 번은 져도 세 번째는 지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는데 그 각오가 효험이 있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해.
―돈 관리는 누가 하시나요? 재테크는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해요(석진욱).
▲ 기자와 사케잔을 부딪치는 신치용 감독. | ||
사케 잔을 연신 기울이며 인터뷰를 하던 신치용 감독은 특급 용병 가빈에 대해 이렇게 귀띔했다. “가빈이 지금 캐나다에 가 있다.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짓고 일주일 휴가를 줬는데 그 사이에 캐나다에 있는 여자친구를 만나고 싶어 하더라. 구단에서는 반대가 심했지만, 그거 안 보내줬다가는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아서 보내줬다. 캐나다로 떠나기 전에 가빈이 나한테 이렇게 말하더라. 돌아와선 초심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고. 가빈이 잘하면, 내 작전이 먹힌 거고, 빌빌거리면 내가 속은 거지 뭐.”
신치용 감독과의 인터뷰를 하던 중에 부산 KT 전창진 감독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자연스럽게 두 감독들이 통화를 하게 됐고, 평소 신 감독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던 전 감독이 전화로 인터뷰에 합류했다. 지금부터는 전창진 감독이 질문한 내용이다.
―가장 화려한 멤버들로 구성됐던 삼성화재 창단팀 감독 때는 ‘카리스마’로 대변됐던 이미지였어요. 그런데 오히려 선수구성이 더 열악한 지금은 ‘카리스마’가 아닌 ‘친화력’을 강조하시더라고요. 다른 감독들은 반대 상황으로 선수들을 이끌어 갈 것 같거든요.
▲그건 나보다 전 감독이 더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웃음)? 멤버가 좋을 때는 개성이 강한 애들이 모이니까 감독이 분명한 중심이 돼 줘야 해요. 멤버가 별로일 때는 선수들이 자포자기의 심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더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고 서로 의지할 수 있게끔 동지애를 이끌어 내야 하는 거지. 사람이 뭉치면 정말 어마어마한 힘과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거든. 훈련을 독하게 시켜도 선수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버리면 안 돼. 내가 보기엔 전 감독은 나보다 한 수 위인 것 같은데 뭐.
―이전에 삼성 주무 시절에, 정말 형님을 미워했어요. 농구는 매일 지는데, 배구는 매번 우승하니까 죽을 맛이더라고요. 도대체 선수들 훈련을 어떻게 시키시는 거죠?
▲선수를 강하게 몰고 가려면 감독이 제대로 서 있어야 해. 선수들한테 흉 잡힐 일이 없어야 하는 거지. 즉 말발이 서야 한다고. 난 균형이란 말을 상당히 좋아해. 배구도, 인생도 균형감각이 있어야 성공하는 거라고. 뭐 익히 소문이 났듯이 훈련은 정말 무섭게 시켜. 단 그 훈련 뒤의 결과, 즉 열매에 대해선 내가 책임을 지려고 해. 고생한 만큼 값진 열매를 맺는 것이고, 그 열매를 맺은 만큼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거지. 난 그게 균형이라고 생각하거든. 전창진도 대단한 감독이야. 꼴찌팀을 2위로 올려놓았으니까. 오히려 내가 배울 게 많은 후배야.
―혹시 형님 생각나세요? 5~6년 전에 개포동의 한 목욕탕에서 절 만나신 거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창진이 몸매보다는 내가 좀 더 나았던 것 같은데? 하하. 그때 만나서 골프 한 번 치자고 했는데 연락을 안 해서 내가 좀 삐쳤지(웃음).
―어휴, 연락을 하려고 했다가 골프 실력이 엄청나다는 소식 듣고 바로 접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미애(신치용 감독의 아내 전미애 씨) 누나 팬이었어요. 누나가 숙명여고 시절, 우리 학교가 숙명여고 농구팀이랑 연습 경기를 많이 했었거든요. 그때 저랑 재학이(유재학 감독)를 유독 예뻐해주셨어요.
▲나도 와이프한테 종종 얘기 들었어. 용산중학교 농구팀에서 뛰던 창진이를 특별히 아꼈다고. 하튼 우리가 서로 마무리를 멋지게 장식해서 좋은 얼굴로 진짜 한번 만나자고. 골프말고 술이나 한잔? 아니지 술 못하는 사람이니까 밥이나 먹자고. 괜찮지?
전창진 감독은 자신의 롤모델이 신치용 감독이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전 감독은 신 감독이 ‘멋지게 시즌을 마무리해서 웃는 얼굴로 보자’는 제안에 “일단 KCC 허재부터 꺾고 답변 드릴게요”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부산 KT는 플레이오프 4강전 상대로 전주 KCC를 맞아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중이다.
신치용 감독과 일대일로 붙어 720ml 사케 세 병을 똑같이 나눠 마셨다. 취중인 기자의 상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오는 27일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신치용 감독은 또 한 번의 ‘깜짝쇼’를 준비 중이다. 지난 번 10연승 때 반짝이 의상을 입고 ‘영일만 친구’를 열창했던 당시의 상황을 리바이벌한다고 보면 된다. 단, 이번에는 선수들이 반짝이 의상에다 선글라스를 쓰고 백댄서로 나설 예정. 신 감독은 무조건 가수로 무대에 오른다. 곡목은? ‘무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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