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양시 바둑선수단 선발전에 수많은 아마추어 바둑 동호인이 참가했다. | ||
아마추어 선수들로 구성된 고양시 바둑선수단은 국내외 아마대회 단체전-개인전에 출전하고 고양시민을 위해 바둑보급 활동을 펼치게 되는데, 조금 이른 전망이지만 시민들의 호응 속에서 성과를 올린다면 다른 지자체들도 이를 본받아 아마추어 바둑선수단이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경우 최근 한국 프로 바둑의 대표기전으로 공인받고 있는 ‘한국리그’처럼 지역 연고의 ‘아마추어 한국리그’도 생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고양시 바둑선수단 창단에는 몇 가지 동인이 있다. 우선 바둑이 강한 도시라는 것. 바둑 인구가 많고 아마추어 강자도 많다. 또한 강현석 시장, 김인규 부시장이 바둑팬이다. 강 시장은 프로에게 다섯 점으로, 김 부시장은 석 점으로 짱짱하게 버티는 실력. 김 부시장은 수십 년 기력(棋歷)으로 프로에게 석 점으로 지면 본인 스스로 서운하게 생각하는 정도다.
리더의 성향은 결정적이다. 회장이나 사장이 바둑에 대한 이해가 없는 기업체라면 사원들이 적극적으로 바둑 활동을 하기도 어렵고 회사에서 바둑을 장려하거나 지원하기는 어려운 일. 도지사나 시장이나 군수가 바둑을 잘 모르는 지자체에서 바둑선수단 같은 꿈을 꾸기도 어려운 일.
그런 점에서 고양시는 바둑으로서는 비옥한 토양인 셈이다. 바둑대회도 많다. 고양시장배 바둑대회는 이제 전국 규모 아마추어 대회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2008년 가을에는 국무총리배 세계 아마추어 대회가 고양에서 열렸다.
‘선수단’이라는 아이디어를 내고 창단 과정을 이끈 사람은 프로기사 유건재 8단. 젊어서 ‘유묘수’로 불리며 크게 활약했고, 승부 일선에서 조금 물러난 후에는 바둑TV, 바둑학과 창설 등 한국 바둑의 획기적 인프라 확장에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함으로써 “역시 반외에서도 유묘수”라는 말을 들었다. 2003년 시즌에는 한국기원 사무총장으로 바둑계 전반의 지휘봉을 잡기도 했다.
선수단은 시니어부 3명, 주니어부 3명, 여성부 3명 등 모두 9명으로 구성되었다. 선발의 기준은 연고와 실력. 각 부 1명은 지명, 2명은 선발전을 거쳤다. 안병운, 김현찬, 조경진이 각 부 지명 선수로 먼저 선발되었고, 3월 21~23일 고양종합운동장 인터뷰실에서 선발전이 열려 시니어부에서는 50대의 김동섭-김동근, 주니어부와 여성부에서는 20대 초반의 정찬호-조인선, 김희수-이선아가 선수단에 합류했다.
김동섭과 김동근은 새삼 소개가 필요 없는, 오래 전부터 전국구 멤버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 요즘은 연구생 출신 후배들에게 밀리고 있지만, 이제 새로운 길을 찾았다. 안병운(49)은 아마 랭킹 20위권이며 한양대 OB 대표선수. 일산에 거주하는 대표적 아마 강자라는 장점으로 ‘무시험 특채’의 행운을 누렸다. 주니어부의 김현찬과 여성부의 조경진, 선발전을 통과한 주니어부의 정찬호, 조선진, 여성부의 김희수, 이선아 등은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으로 용인의 명지대 바둑학과, 전남 목포-영암 경계에 대불대 사회체육학과 바둑전공 동문이기도 하며 모두들 크고 작은 대회에서 우승했거나 입상권에 자주 들었던 막강한 실력들이다.
이들은 앞으로 고양시 선수단의 이름으로 대회에 출전해 성적을 올려 고양시를 국내외에 널리 알릴 것이며, 평소에는 고양시의 노인, 주부-여성, 어린이 회관과 문화센터를 순방하며 바둑 강의와 지도를 하면서 올해는 12월까지 국내외 대회 출전 경비와 보급활동수당 외에 매달 100만 원의 연구수당을 받는다. 계약은 1년 단위. 성과가 있으면 당연히 재계약이 될 것이며 연구수당도 인상될 것이다.
고양시 바둑선수단은 4월 2일 오후 4시 고양시 종합운동장 대연회장에서 창단식을 갖는다. 바둑의 체육화를 위해서는 거의 최선이라고 느껴지는 바람직한 새 모델을 선구적으로 제시한 공로가 크며, 선수단에 대한 바둑계의 기대도 크다.
고양시 바둑선수단에 뒤를 이어 다른 많은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이런 선수단을 만들어, 프로기사는 아니지만 젊음을 바둑에 바치고 평생을 바둑과 살아온 나이든 세미프로급 강자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바둑의 길로 들어서 프로입문을 열망했으나 입단에 실패해 문득 방향을 잃을지도 모르는 뛰어난 두뇌의 10대 남녀 청소년들을 수용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거시적, 미시적으로 바둑계의 중요한 몇 가지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다.
선수단의 초대 단장은 고양시 바둑협회 장양운 부회장(64·대양산업개발 상임고문)이 맡았다. 아마 2~3단 수준으로 바둑이 센 편은 아니지만, 주변에서는 “바둑 열정은 고양시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라고 말한다.
장 단장 말고도 선수단 창단을 위해 고양시바둑협회 정성배 회장을 비롯해 김영칠 고문, 김기원 부회장, 기술이사 차수권 6단, 임춘기 감사, 신길수, 김병문 국장, 곽웅구 신용표 신경주 김재훈 이사 등 관계자들이 마음을 합해 도왔다. 특히 신길수 총무국장은 회사일도 제쳐 놓고 동분서주했다. 감독은 선수단 구성 아이디어를 낸 유건재 8단. 과연 이번에는 또 어떤 묘수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어쨌거나 고양시가 대단한 일을 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고양시는 역도, 빙상 등을 통해 큰 성과와 효과를 보고 있다. “문화체육도시를 지향하면서 이제스포츠의 메카로 발돋움하고 있다고 자부한다”는 것인데, 바둑을 통해서도 분명히 그 이상의 성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