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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치훈 9단 | ||
제한시간 각자 3시간에 1분 초읽기 5회, 덤 7집 반이며 우승상금은 15만 달러, 약 1억 7000만 원이고 준우승은 5만 달러다. 이번 대회 참가자는 중국 10명, 한국 5명, 일본 5명, 대만 2명, 미주 1명, 유럽 1명 등으로 모두 24명.
한국은 이창호(35) 이세돌(27) 최철한(25) 강동윤(21) 9단과 허영호(24) 7단이 출전했고, 중국은 창하오(34) 구리(27) 콩지에(28) 천야오예(21) 왕시(26) 9단과 후야오위(28) 치우쥔(28) 8단, 그리고 씨에허(26) 쑨텅위(18) 7단, 구링이(19) 5단이 출전했다.
일본은 조치훈(54) 이야마 유타(21), 야마시타 게이고(32) 요다 노리모토(44) 유키 사토시(38) 9단이, 대만은 저우쥔쉰(30) 린즈한(30) 9단이, 미주지역은 장밍주 7단 (중국 출신)이, 유럽은 차바 메로 아마6단(헝가리)이 대표로 참가했다.
중국은 예의 인해전술이고, 한국은 소수정예, 일본은 신구조합이다. 일본은 어딘지 좀 쓸쓸해 보인다. 유키는 관서기원 소속. 요즘 이야마가 그런 것처럼 한때 ‘관서의 샛별’로 불렸던 소년인데, 어느덧 나이 서른이 되었다.
16명이 벌인 2차전 토너먼트의 대진표와 결과는 다음과 같다. 앞쪽이 승자. 구링이-이창호, 이세돌-쑨텅위, 콩지에-최철한, 허영호-창하오, 조치훈-치우쥔, 씨에허-이야마, 구리-야마시타, 왕시-유키.
이창호의 패배는, 이제는 자주 보는 일이 되었지만, 그래도 늘 가슴이 저릿하다. 쉬엄쉬엄 가기를 바란다. 구링이는 열아홉 살. 경계해야 할 신예다.
이세돌은 시종일관 특유의 현란한 행마와 가공할 화력으로, 구링이와 함께 중국 신예대표로 나온 쑨텅위의 대마를 포획, 단명국으로 마무리하면서 복귀 후 11연승을 달렸다. 쾌속진군이다.
최철한은 1차전에서는 후야오위에게 처절한 역전승을 일구어냈으나 근래에 중국 1인자로 올라선 콩지에의 벽을 넘지 못했다. 허영호는 1차전에서 일본의 카리스마 요다를 제치더니 2차전에선 전기 우승자 창하오를 꺾어 기염을 토했다. 춘란배에는 창하오를 꺾는 자가 우승했다는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이 징크스대로 허영호가 우승할지는 두고볼 일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참가자 중 최고령인 조치훈의 2연승. 1차전에선 한국의 강타자 강동윤을 제압했고, 2차전에서는 중국의 ‘마왕’ 치우쥔을 눕히면서 일본 팀에서 혼자 살아남았다.
이창호는 지면 가슴이 저릿하지만, 조치훈은 이겨도 져도 가슴이 저릿하다. 아무 것도 모르던 여섯 살 때 작은아버지의 손을 잡고 일본에 건너가 형을 아버지처럼 생각하면서 바둑만 두면서 50년을 살아왔다는 그의 삶을 잘 알고 있기에 그런 것인지. 자기 나라가 아닌 일본에서 바둑을 둔 것으로는 위칭위엔이나 린하이펑, 조훈현도 비슷한데, 위칭위엔이나 린하이펑, 조훈현에게서 고독의 그림자 같은 것은 그다지 짙게 느껴지지 않건만, 조치훈을 보면 왜 그런 느낌이 먼저 드는 것인지.
‘목숨을 걸고 둔다’ ‘승부는 황야를 홀로 걸어가는 것’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 ‘오른손과 머리가 멀쩡하니 바둑을 두겠다’…. 조치훈이 직접 이런 말을 한 것인지, 아니면 조치훈과 인터뷰하며 얘기를 나눈 작가들이 조치훈의 말을 듣고 핵심과 느낌을 정리해 표현한 것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이런 어록을 남긴 프로기사는 없다.
한국 바둑 부흥의 기폭제는 조치훈이었다. 1975년 일본기원선수권전, 당대의 최고봉 사카다를 상대로 2연승 후 3연패. 1980년 명인 쟁취. 1983년 일본 바둑 천하통일. 1986년 미스터리의 교통사고, 휠체어대국. 1987년 재기, 일본 바둑 7대 타이틀 섭렵으로 그랜드슬램 달성. 일·중 슈퍼대항전 11연승의 영웅, ‘철의 수문장’ 녜웨이핑과의 특별3번기에서 두 번을 거푸 네웨이핑을 깨끗이 보냄. 1996년 두 번째 천하통일. 이 모두가 드라마였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한국의 바둑팬들은 그냥 바둑을 좋아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조치훈의 바둑을 좋아한 것이고, 조치훈의 드라마에 열광했던 것은 아닐까.
세계대회에서의 성적은 별로 없었다. 1980년 세모, 잠시 귀국해 조훈현과 기념바둑 두 판을 두어 두 판 다 이겼지만, 이후 세계대회에서는 공교롭게도 조훈현을 자주 만나 한 판도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사람들이 두 거장의 승패를 놓고 환호하거나 비난하지는 않게 된 시절이었다. 조치훈은 또 성적을 내지는 못했으나 스스로 안타까워하거나 초조해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지면 담담히 복기를 했고 복기가 끝나면 대국장을 한가한 표범의 걸음으로 어슬렁거리며 다른 사람의 바둑을 구경했다. 시대는 가고 오는 것. 나의 시대도 있었지만, 그게 이제 다시 오지는 않으리라. 여전히 고독해 보이기는 했지만 초라해 보이지는 않았다.
조치훈은 회색 싱글에 엷은 푸른색 셔츠, 갈색 타이의 정장이었는데, 넥타이는 헐겁게 매어져 있고 머리는 퍼머한 장발에 콧수염을 기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누군가 코디를 해 준 패션인지 모르겠지만, 해 주었다면 부인이기가 십상이지만, 조치훈에 대한 무조건적인 호감의 선입견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뭐랄까, 예인의 멋 같은 것이 있었다.
8강전의 대진표는 조치훈-씨에허, 이세돌-왕시, 허영호-콩지에, 구리-구링이. 작년에 조훈현 9단은 BC카드배 4강까지 올라갔다가 구리에게 반집을 졌는데, 이번엔 혹시 또 조치훈의 드라마를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누구 하나 만만한 상대는 없지만 기대해 보자. 8강전은 11월에나 가서야 열린다고 한다.
이광구 바둑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