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실업야구팀 CMS가 3월 28일 장충리틀야구장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아랫줄 맨 오른쪽이 김주현 씨.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국내 여자야구의 역사는 길지 않다. 2004년 여자사회인야구단 ‘비밀리에’ 창단을 시작으로 처음에는 주말마다 취미삼아 야구를 즐기는 것이 시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여자야구연맹 안에 소속된 여자야구단만 22개로 점차 몸집이 늘어나고 있다.
그저 재미로만 야구를 하던 것에서 서로 실력의 우위를 가리는 경쟁으로 판이 커졌다. 그간 여자야구팀들은 꾸준히 전국규모로 열리는 국내대회는 물론 미국, 일본 등 세계 여자야구 리그에도 도전장을 내밀며 실력을 쌓고 있다.
이렇듯 그 규모와 활동범위는 해마다 커졌지만 대중의 무관심 속에 있다 보니 제대로 된 후원 기업 하나 잡지 못해 그동안 감내해야 한 어려움은 적지 않았다. 훈련비부터 국제대회 참가비까지 선수 개개인이 사비를 털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주현 씨의 끈질긴 노력 덕분에 CMS(센트럴메디컬서비스)라는 제약회사가 손을 내밀었고 국내 여자 야구 실업팀이 창단되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에 첫 희망이 생겼다. 그러한 희망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고진감래’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김 씨는 초창기부터 사회인야구를 해오며 각종 국제대회에 참여했고 이 과정에서 국내 여자야구도 제대로 해본다면 세계 1위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사회인 야구팀 소속으로 국제 클럽 리그에 참여해보며 일본, 미국, 중국 팀과 국내 팀의 실력 차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지원만 뒷받침된다면 외국팀들과 붙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런 시각에서 한국 여자야구의 현실을 바라보자 무엇보다 선수들 주머니로 모든 비용을 충당해야 하는 것이 난제로 느껴졌다.
“지난 2년 동안 비용 문제를 해결하려고 여자야구에 관심이 있는 기업들을 찾아 열심히 뛰어 다녔어요. CEO가 야구 마니아라는 소문이 들리면 무작정 이메일을 드리거나 직접 찾아뵙고 여자팀도 할 수 있다고 설득하면서 관심을 끌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열정만 가지고 마주한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여자가 야구를 해 봤자’라는 선입견에 부닥치거나 그 와중에 몇몇 뜻 있는 기업이 스폰서를 하겠노라 답변했지만 경기불황과 함께 안타깝게도 약속이 번번이 깨지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나 오랜 노력에 하늘도 감동한 것일까. 결국 올해 제약회사인 CMS가 스폰서 기업이 되겠다고 약속했고 드디어 2년 만에 실업팀으로 첫 걸음을 내딛었다.
“그동안 야구 하는 데 드는 돈이 만만치 않았거든요. 유니폼이나 장비를 사는 데 기본비용만도 개인당 40만 원에서 출발했으니까요. 여기에다 국제대회에 나가려면 항공권부터 숙박비까지 해외여행 못지않은 금액이 들어 중도 포기하는 여자 선수들도 있었고요. 그런데 이제 모든 비용을 스폰서 기업에서 후원해주게 됐으니 입회비 2만 원만 내면 돼요. 이제 돈 걱정 없이 제대로 야구를 해 볼 동기나 환경이 조성됐다는 게 가장 큰 수확인 셈이죠.”
스폰서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약속받자 선수들도 자연스레 모이게 됐다. 한 달 만에 열다섯 명의 선수가 입단 신청서를 냈고 가정주부, 대학원생, 직장인까지 다양한 직업군들이 한데 어우러졌다. 국내에 제대로 된 실업팀이 꾸려졌다는 소식에 중국에서 귀화한 선수도 있다. 왕조연 씨(28)는 한국 실업팀에서 뛰겠다며 흔쾌히 귀화를 결심했다.
‘CMS’팀에는 여자만 있는 게 아니다. 이들의 훈련을 적극 도와주기 위해 사회인 야구팀을 나와 여자 팀에 합류한 네 명의 남성들이 있다. 이들은 코치 역할을 자청하며 그동안 쌓은 그라운드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선수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다. 구속 110㎞/h를 기록하는 투수가 두 명이나 있고 회사에서도 틈만 나면 야구공을 만지작거린다는 악바리 신입 다섯 명도 기대주로 성장 중이다.
그들의 가장 큰 목표는 ‘여자 야구팀에 투자하길 잘했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최초 실업팀으로서 승승장구해 세계 그라운드 위에 한국여성의 역사를 쓰는 것. 그래서 여자야구팀을 서로 후원하겠다고 기업들이 앞 다투어 나서게 하는 것이 그들의 최종 목표다.
▲ 코치 박종관 씨가 아내 김진영 씨에게 타격 지도를 하고 있다. | ||
여보, 큰거 한방 부탁해!
여성들이 모이다보니 가정사 때문에 운동은 제2 순위로 밀려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내의 주말 그라운드 행을 적극 후원하는 남편, 남자친구가 데이트 장소를 아예 야구장으로 바꿔 개인 코치(?)에 버금가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 선수도 있다. 이들 중에는 아예 아내의 선수생활 지원을 위해 코치 겸 트레이너로 팀에 들어 온 남편도 있다.
팀 코치이자 트레이너를 맡은 박종관 씨(30)는 대학 때까지 야구선수로 활동하다 졸업 후 진로를 바꿨다. 그 후 사회인 야구 활동으로 야구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던 중 주말마다 남편의 그라운드 행을 지켜보던 아내 김진영 씨(31)가 자신도 제대로 야구를 해보고 싶다고 나섰다. 그래서 글러브를 벗어던지고 아내 김 씨의 팀에 합류해 코치로 활동 중이다.
남편 박 씨와 아내 김 씨는 “매주 주말마다 그라운드에 나와서 같은 목표를 향해서 땀을 흘리니 훨씬 사이가 돈독해지고 살 맛, 야구 할 맛이 난다”고 밝게 웃는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