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임금 체불은 중동의 전통?
K리그 전남에서 임대 선수로 뛰었던 이천수는 작년 6월 팀과 마찰을 빚고 사우디 리그로 진출했다가 불과 한 시즌도 채 마치지 못한 채 10개월여 만에 돌아왔다.
항간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알 나스르는 선수 임금을 수시로 체불해 왔다고 한다. 받지 못한 돈만 봉급과 각종 수당 등을 합쳐 최소 7억 원에 달한다는 게 이천수 측의 주장. 알 나스르와 이천수의 계약 기간은 올해 7월까지다. 좋든 싫든 본인 의사를 떠나 분명한 점은 이천수가 현재 알 나스르 소속이라는 사실이다. 알 나스르는 이천수가 한국으로 떠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현지 언론들을 통해 ‘무단이탈’ 죄를 묻고 있다.
이천수의 측근에 따르면 이천수는 급여지급을 장기 연체한 알 나스르를 국제축구연맹(FIFA)에 이미 제소한 상태다. 그러나 알 나스르도 선수 무단이탈로 이천수를 역시 FIFA에 제소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확인결과 FIFA에 이천수가 제기한 ‘임금 체불’ 관련 안건은 계류 중인 것인 것은 사실이었다.
중동은 급여 미지급과 이적 등 선수 분쟁이 심심찮게 발생해 동유럽, 아프리카 등과 함께 축구 선수로 뛰기에는 최악의 지역 중 하나라고 한다. 물론 아예 돈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중동 축구계에 정통한 에이전트 등 관계자에 따르면 사우디 리그는 ‘오일 달러’를 앞세우는 지역인 만큼 몇몇 클럽들은 어지간한 서유럽 클럽보다 많은 봉급을 주고 선수들을 사들인다. 다만 스폰서십 등 여러 가지 사안들을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몇 달치 봉급을 한 번에 몰아주는 경우가 잦다. K리그도 90년대 비슷한 일들이 비일비재했다고 전해진다.
사우디 리그에서 여전히 활약하고 있거나 예전에 뛰었던 이영표(알 힐랄)와 설기현(포항)에게는 전혀 ‘임금 체불’ 등 부정적인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천수가 애초에 알 나스르와 계약할 때 일종의 안전장치를 마련했어야 했다는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월드컵 출전 가능성은
이천수의 올해 가장 큰 포부는 월드컵 출전이다. 실력만 놓고 보면 이천수는 국가대표팀 멤버들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월드컵 본선이 다가오자 ‘아직 한국에 이천수를 능가할 만한 테크니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마저 들려온다. 이는 이천수를 잊고 그대로 묻어버리기에는 아쉽다는 의미로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허정무 대표팀 감독이 월드컵 출전을 위해 선수들에게 항상 강조해온 것은 ‘최상의 컨디션’과 ‘꾸준한 경기력’이다. 이천수는 여기서 발목이 잡힌다. 아무리 개인운동을 해도 월드컵을 위한 ‘감각’을 유지하기에는 절대 부족하다. 이천수가 월드컵에 나서기 위해서는 꾸준히 훈련하고 실전 감각을 유지하게끔 도울 수 있는 소속 팀이 있어야 한다.
일단 정황상 국내 복귀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아쉽게도 이천수의 국내 유턴의 키를 쥔 전남의 입장은 강경하다. 지난해 여름 ‘2009시즌은 팀에 머물겠다’는 당초 약속을 어기고 사우디 진출을 강행하자 전남은 이천수에게 ‘괘씸죄’를 물어 임의탈퇴 선수로 묶어버렸다.
당시 이천수의 전남행을 추진했던 에이전트는 “이천수가 계약기간 중 팀을 떠날 경우 위약금을 내야 한다”는 전남 측 요구를 받았고, 위약금 관련 내용이 담긴 계약서에 사인했다.
전남은 이천수에게 지급받기로 한 위약금을 설사 모두 받아내더라도 페예노르트에서 나온 뒤 갈 곳이 없어 어려움을 겪던 이천수를 믿고 받아줬다가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하는 탓에 여전히 용서해줄 생각이 없다. 전남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는 지적도, 이천수가 그간의 행동 때문에 결국 ‘자승자박’의 신세가 됐다는 지적도 모두 일리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천수와 전남이 문제를 풀더라도 알 나스르와 사우디축구협회로부터 이적동의서를 받아내야 한다. 더욱이 선수 등록 시한도 지났기 때문에 당장 K리그 팀으로 안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리저브(2군) 팀에서 몸을 만들고 R리그에 출전하는 게 전부다.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이천수가 어디든지 가려면 무조건 알 나스르로부터 이적동의서를 받아야 한다”면서 “관계가 조금 복잡하긴 해도 이천수가 금전적 손해를 감수한다면 의외로 빨리 해결(이적동의서 발부)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지방의 한 유력 구단이 이천수에 관심을 갖고 있고 전남이 이천수를 풀어주는 데 10억 원가량을 요구했다는 루머가 흘러나오고 있으나 해당 구단 관계자들은 “그런 일은 결코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해외리그로 노크
이천수는 부지런히 새 팀을 알아보고 있다. 본인도 K리그 유턴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일본과 러시아, 우즈베키스탄까지 두루 팀을 찾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부분의 선수 이적 시장은 닫혀 있지만 몇몇 리그는 여전히 열려 있다. 일본은 아시아 쿼터 이적이 여전히 가능하고, 러시아 역시 최근(4월 8일)에야 닫혔다. 스테보와 데닐손 등을 한꺼번에 영입한 분요드코르(우즈벡)도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니, 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오퍼를 받은 게 아닌, 이천수 측에서 오퍼를 넣은 것이다. 분요드코르로 가려면 선수 겸 스카우트로 활동하는 히바우두의 도움이 꼭 필요하지만 아직 원하는 답변을 받지 못했고, 예전에 한국인 선수를 영입해 나름 성공했던 일본의 J2리그(2부)의 한 클럽은 이천수의 상황 등을 정리한 정보를 국내와 일본을 오가며 활동 중인 한 대리인에게 요청했으나 더 이상 진행된 상황은 없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무적 신분’으로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