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주 넘어지거나 주변으로부터 걸음걸이가 이상해졌다는 말을 듣는다면 바로 병원 진찰을 받아볼 일이다. 사진은 기사내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 ||
우리가 걸을 때는 손발만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뇌와 소뇌, 뇌신경, 척수신경을 비롯해 신체 각 부분의 기능이 잘 조화를 이룰 때 정상적인 보행이 가능하다. 때문에 이들 중 어느 한 곳에 문제가 생기면 조화가 깨져서 쉽게 넘어지거나 걸음이 느려지고 몸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운 상태로 걷는 등의 이상을 보인다.
예를 들어 말초신경에 문제가 생기면 발을 땅에 디뎠을 때 뇌로 바로 정보가 전달되지 못해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워진다.
걸음걸이를 살펴보기 전에 우선 의자에서 일어나는 모습부터 확인해보자 . 신체에 이상이 없는 건강한 사람은 의자의 팔걸이를 짚지 않아도 한 번에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팔걸이에 의지하지 않고 일어나기가 힘들다면 뭔가 문제가 있다. 예전보다 근력이 약해진 경우가 가장 많고 무릎이나 엉덩이 쪽의 관절염 등이 원인일 수 있다.
발꿈치의 앞과 뒤를 이용해 걷게 하거나 일렬보행을 하도록 해서 평형감각도 체크한다. 일렬보행을 할 때 불안정하면 소뇌나 귀에 있는 전정기관의 이상이 의심된다.
또한 건강에 이상이 없으면 돌아볼 때 목이 쉽게 돌아가지만 문제가 있는 사람은 목이 돌아가지 않은 상태에서 몸부터 돌리며 비틀거린다.
특히 기억력과 사고력을 관장하는 전두엽이나 소뇌 등에 문제가 생기면 걸을 때는 불편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도 돌아보는 모습이 어색하다. 목의 회전이 원활하지 않을 때는 목뼈나 뇌기저동맥의 이상일 가능성이 있다.
이외에도 심장의 기능에 이상이 있거나 저혈압, 저혈당이 있으면 자주 넘어질 수 있다. 복용 중인 약물의 부작용으로 어지럼증, 저혈압 등을 보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때는 약을 바꿀 수 있는지 의사와 상의한다.
이처럼 다양한 질환이 걸음걸이와 관련이 있으므로 주변 사람들에게 걸음걸이가 이상해졌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거나 자주 넘어진다면 건강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인의 보행을 힘들게 하는 질환으로는 관절의 통증, 부기 등을 만드는 관절염이 대표적이다. 노년층에 가장 흔한 관절염은 바로 퇴행성관절염. 퇴행성관절염은 우리나라 55세 이상 노인의 80%, 75세 이상 노인의 대부분이 앓고 있을 정도로 흔한 질병. 관절 주위의 근육과 뼈가 약해져 관절이 뻣뻣하게 굳어 정상적인 보행이 더욱 힘들어진다.
하지만 아프다고 해서 방치하면 관절의 기능이 점점 더 약화되므로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몸을 움직이는 것이 좋다. 걷기나 수영, 실내 자전거 타기 등과 같은 운동을 꾸준히 해서 관절 주위의 근육을 단련시켜야 한다.
운동이나 약물요법, 물리치료로 통증이 사라지지 않을 때는 수술도 고려해봐야 한다. 연골이 남아 있다면 관절 내시경술을 하면 효과적이다. 정상적인 보행이 어렵고 무릎에 기형이 생긴 경우에는 연골이 완전히 닳아 없어진 상태이므로 인공관절을 삽입하는 것이 좋다.
류머티즘 관절염도 노년층에 흔한 편이다. 몸속에서 관절을 공격하는 물질을 만들어내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을지대학병원 류마티스내과 심승철 교수는 “아침에 일어나면 손가락이 뻣뻣해지고 무릎, 발가락 관절이 아프거나 뜨거운 느낌이 나면서 부을 때는 류머티즘 관절염 검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관절에 이상이 없는데도 걸음걸이가 이상해졌다면 치매나 파킨슨병이 원인일 수 있다. 보통 ‘치매’ 하면 기억 장애나 부적절한 행동 등을 떠올리지만 치매의 유형에 따라서는 보행 장애에서부터 증상이 시작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미국 예시바 대학 연구팀도 “걸음걸이로 치매를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치매 전 단계의 인지기능 장애를 가진 노인 120명과 정상인 노인 300명에게 보행 분석기를 달게 하고 보행과 뇌기능의 관계를 연구했더니 정상인 노인의 16.3%가 걸음걸이나 폭에서 이상이 나타난 반면 인지기능 장애를 가진 노인은 무려 51%가 걸음걸이에서 문제가 발견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밝혀진 치매의 원인은 70여 가지로 다양한데 원인에 따라 걸음걸이의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다리를 질질 끌거나 첫걸음을 떼기가 어렵다. 마치 발에 접착제를 붙인 것처럼 걷지만 상대적으로 팔의 움직임은 괜찮다면 혈관성 인지장애, 혈관성 치매, 정상압 뇌수두증에 의한 치매가 의심된다.
△종종 걸음을 치고 발의 움직임이나 손놀림 자체도 느려지는 경우, 돌아설 때 중심을 잡기 힘든 경우, 자주 넘어지는 경우에는 파킨슨병으로 인한 치매나 루이소체 치매 등일 수 있다. 파킨슨병 환자의 30~40% 정도는 말기에 치매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킨슨병이 있으면 몸과 팔, 다리가 굳어 보폭이 줄고 걸음걸이가 느려진다.
△비틀거리며 걷고 보폭이 넓어지며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걷는다면 알코올성 치매, 비타민 부족으로 인한 치매일 수 있다.
반면 치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알츠하이머 치매(노인성 치매)일 때는 걸음걸이에는 별 이상이 없다. 대신 금방 했던 일도 잊어버리거나 반복적으로 묻는 일이 늘어나고 사물이나 장소의 정확한 이름을 대지 못하고 ‘저것’ ‘그것’ 하는 식으로 대강 얘기하는 버릇이 생긴다.
치매라는 진단을 받았다면 약물치료를 비롯해 인지기능을 향상시키고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아주는 음악치료, 미술치료, 원예치료 등의 다양한 방법을 시도할 수 있다.
치매를 예방하려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고혈압과 당뇨병 심장병 뇌졸중 우울증 등을 멀리하는 것이 좋고 일단 생겼을 때는 잘 관리한다. 또 정상 체중을 유지하고 흡연, 과음은 삼간다.
걸을 때 허리가 구부러지고 오리걸음처럼 엉덩이가 뒤로 빠진다면 척추관협착증일 가능성이 높다. 척추관협착증은 척추 주변의 뼈나 인대가 노화로 두꺼워지면서 척추관이 점점 좁아져 신경을 누르는 질환이다.
척추관협착증이 있으면 눌리는 신경이 다리로 내려가는 신경이기 때문에 허리 통증보다는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발끝, 발바닥 등이 저리거나 당기고 힘이 없어진다. 또 허리를 펴면 통증이 심해 자꾸만 허리를 구부리게 된다. 상태가 심하지 않은 초기에는 물리치료, 운동처방, 주사요법 등의 보존적 치료를 하면 증상이 좋아진다.
별다른 이상이 없을 때도 걸음걸이가 불안할 때에는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속보나 수영 같은 운동도 좋고 어디서나 쉽게 할 수 있는 스트레칭이나 맨손체조도 효과적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스트레칭으로 온몸의 근육을 풀어주도록 한다. 하지만 뒤로 걷는 운동은 넘어질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
운동을 할 때는 적어도 1주일에 3회 이상, 한 번에 30분 이상 한다. 유산소운동과 함께 근력을 키우는 운동도 병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젊어서부터 미리미리 근력운동을 꾸준히 해야 노년에도 근력을 유지할 수 있다.
특히 인체 근육의 30%를 차지하는 다리의 근육량이 줄어들지 않도록 한다. 다리의 근육량이 줄면 쉬 피로해서 몸을 움직이기가 싫고 부상을 당하기 쉽다.
참고로 나이가 들면 리보솜같이 단백질의 합성을 촉진하는 세포 내 기관의 기능이 떨어져서 근육을 키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일반적으로 20~30대엔 2주만 운동해도 근육이 10~15% 커지지만 60세 이후엔 12주 이상 운동을 해야 10% 정도 커진다.
근육을 만드는 데는 운동과 함께 건강한 식습관도 중요하다. 나이가 들면 미각세포의 기능이 저하돼 식욕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근육 감소를 막으려면 고른 영양을 섭취하면서 살코기나 생선, 유제품, 견과류 등의 식품으로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관절염이나 치매 등 걸음걸이를 변화시키는 질환으로 고생하는 가족이 있을 때는 지팡이, 보조기 등을 사용을 고려한다. 욕실에 미끄럼 방지 타일을 붙이고 어두운 곳이 없도록 집안을 밝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 탈수현상이 있으면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기 쉬우므로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도록 신경 쓴다.
▲ 관절 통증은 노인의 보행을 힘들게 하는 대표 질환이다. 골밀도 진단 모습. 사진제공=을지대병원 | ||
조금만 주의해서 살피면 보행 장애를 보이는 노인의 걸음걸이를 알 수 있다. 해당되는 항목이 있을 때는 관련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1. 전보다 걸음이 느려졌다.
2. 보폭이 좁아져서 종종걸음으로 걷는다.
3. 몸이 구부정하게 앞으로 굽고 다리를 끌면서 걷는다.
4. 첫걸음을 떼기가 어렵다.
5. 마비가 없는데도 발자국 떼는 것을 힘들어 한다.
6. 다리에 마비가 있어 힘을 주지 못한다.
7. 중심을 잡지 못해서 자꾸 넘어진다.
8. 걸을 때 넘어질 것 같아 무언가를 잡으려고 한다.
9. 몸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운 상태로 걷는다.
10. 걸을 때 팔의 흔들림이 없이 차려 자세로 걷는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을지대학병원 류마티스내과 심승철 교수·신경과 김정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