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수화물을 과다섭취하면 노화가 빨라지고 비만 당뇨병 심장병 위험이 커진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현대인들의 유전자가 1만~5만 년 전 원시인들과 같다? 이들과 유전자가 같은데도 농경시대 이전의 원시인들이 적게 먹거나 아예 먹지 않았던 탄수화물 식품을 과다 섭취하면서 비만과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 요즘 유행하는 ‘구석기 다이어트’ 이론이다.
탄수화물 중독이 어떻게 현대인들의 건강을 위협할까. 탄수화물 식품을 섭취하면 췌장에서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 호르몬이 분비된다. 지나치게 많은 양의 탄수화물을 먹는 경우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 호르몬이 그만큼 피로해지는 것이다. 인슐린의 기능이 떨어지는 상태를 ‘인슐린 저항성’이라고 하는데, 인슐린 저항성이 있으면 복부에 지방이 쌓여 복부비만이 된다. 인슐린 분비량이 증가한 상태에서는 우리 몸에 지방이 잘 쌓인다.
박용우 리셋클리닉 원장(전 강북삼성병원 비만클리닉 소장)은 최근에 펴낸 <원시인처럼 먹고 움직여라>(팝콘)를 통해 “인슐린 저항성이 생기면 렙틴이 인슐린의 신호에 둔해지는 ‘렙틴 저항성’이 생긴다. 이때는 인슐린 저항성이 더 심해지고 살이 잘 찐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 조사에 따르면 비만 치료를 받는 여성의 75%가 탄수화물 중독에서 비롯된 하체 비만이라는 보고도 있다. 또한 탄수화물 섭취량이 많으면 혈액 속의 중성지방 수치가 높아지고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좋은 콜레스테롤이 감소해 심장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탄수화물 중독을 유발하는 주범으로는 정제 탄수화물이 대표적이다. 정제 탄수화물은 탄수화물의 섬유질, 필수지방산 등을 없애버려 칼로리만 내는 식품으로 설탕이나 설탕보다 단맛이 강한 액상과당, 흰 밀가루로 만든 빵이나 면류 식품 등을 말한다.
포도당과 과당이 결합한 이당류인 설탕은 과당이 50%를 차지하고, 액상과당은 포도당과 과당이 함께 섞여 있는 형태인데 과당이 55~65%로 더 많다. 그런데 우리 몸의 세포는 과당에 둔감해서 설탕이나 액상과당 등이 많은 식품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어도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는다. 때문에 간까지 안전하게 들어간 과당은 지방합성을 촉진시키는 자신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한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설탕과 액상과당 섭취가 해마다 증가한 30여 년 동안 비만 인구는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콜라나 사이다 같은 청량음료에 단순당이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일 맛의 우유 역시 설탕 함량이 높아 주의해야 한다.
직장인들이 출근 직후, 점심식사 후에 무심코 마시는 자판기 커피, 커피믹스에도 정제 탄수화물인 설탕이 듬뿍 들어 있다. 스스로는 커피를 마신다고 생각하고 ‘카페인 중독’을 의심할지 모르지만 실은 정제 탄수화물인 설탕을 먹는 것이고 ‘탄수화물 중독’일 수 있다는 것이다.
탄수화물 중독이 의심된다면 1~2주 정도 정제 탄수화물이 많은 이들 식품을 멀리해 본다. 만약 몸에 별다른 스트레스가 없다면 괜찮지만 참지 못하고 케이크나 초콜릿을 찾는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낫다.
인슐린과 렙틴의 저항성을 개선시키려면 나쁜 탄수화물 식품, 즉 설탕이나 액상과당이 많이 들어 있는 식품부터 줄여야 한다. 식사 후에 케이크나 초콜릿 같은 달콤한 후식이 생각날 때는 양치질을 해보자. 이와 함께 몇 가지 노력도 필요하다.
[1]단백질·섬유질 섭취를 늘린다
지금보다 단백질 섭취를 늘리면 포만감이 빨리 오기 때문에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일 수 있다. 단백질은 소화와 흡수, 저장 과정에서 자기 칼로리의 2~3%를 소모하는 지방, 8~10%를 소모하는 탄수화물과 달리 20~25%나 소모하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할 때도 신경 써서 섭취하는 것이 좋다.
흔히 권하는 단백질 섭취량은 체중 1kg당 0.8g. 하지만 박용우 원장은 “자신의 건강체중 1kg당 1.0~1.2g로 더 섭취하고, 다이어트를 할 때는 이보다 많게 건강체중당 1.2~1.5g을 먹는 것이 좋다. 같은 칼로리를 먹어도 단백질 섭취량을 늘리면 체중감량 효과가 크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자신의 건강체중이 60kg이라면 하루에 60~72g의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 좋고, 다이어트 중에는 72~90g으로 늘려 섭취해야 한다. 다만 단백질은 지방을 제거한 살코기, 닭고기, 생선, 해산물, 달걀 등의 질 좋은 것으로 섭취하는 게 좋다.
또한 단백질과 함께 섬유질이 많은 식품을 섭취하는 데도 신경을 쓴다. 섬유질이 많으면 혈당이 서서히 올라가기 때문에 인슐린 저항성이 예방된다고 한다.
[2]밥은 반 공기씩만 먹어도 된다
흰쌀밥보다는 잡곡밥을 먹을 때 혈당이 서서히 오른다. 그래도 흰쌀밥은 나물이나 생선, 달걀, 두부 같은 반찬과 함께 먹기 때문에 빵이나 면 종류를 먹는 것보다는 혈당이 올라가는 속도가 느려 인슐린이 무리하지 않는다.
하지만 쌀밥이든 잡곡밥이든 과식을 하면 인슐린을 자극하고, 이것이 반복되면 인슐린 저항성이나 렙틴 저항성으로 이어진다. 때문에 탄수화물의 총섭취량을 지금보다 줄이는 것이 좋다.
뇌가 하루에 사용하는 포도당의 양은 약 120g으로, 이 중 3분의 1 정도는 재활용해서 쓰고 나머지 80g 정도만 음식을 통해 얻는다. 따라서 적어도 하루 100g 정도의 탄수화물이 필요하다.
박 원장에 따르면 밥 한 공기에 들어 있는 탄수화물 함량이 약 70g이므로, 매끼에 반 공기씩 하루에 밥 한 공기 반만 먹어도 필요한 탄수화물을 모두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에서 간식으로 먹는 탄수화물 식품을 피하더라도 밥의 양을 줄이지 않으면 큰 도움이 안 된다. 물론 이는 신체활동량에 따라 달리 적용해야 한다. 활동량이 많다면 그에 비례해 탄수화물 섭취량을 더 늘려도 좋다.
[3]가짜 배고픔에 속지 말아야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는 ‘가짜 배고픔’이 잘 나타난다. 식사를 제대로 했는데도 세 시간 이내에 허기가 지면 ‘가짜 배고픔’일 가능성이 크다. 이때는 무조건 탄수화물 식품을 찾기보다는 물을 많이 마시거나 가볍게 산책을 해보자.
이렇게 해도 배가 고프다면 이전 끼니를 부실하게 먹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채소나 삶은 달걀 같은 단백질 식품을 적당량 먹는 게 좋다.
단맛이 생각날 때도 우선 물을 마시고, 단맛의 유혹을 참기 힘들 때는 과일을 먹는 게 좋다. 단, 시판하는 과일주스가 아닌 과일이나 신선한 과일로 만든 생과일 주스를 먹어야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꾸 단맛을 찾게 되므로 스트레스는 그때 그때 해소해야 하고,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운동이나 취미 등 다른 방법으로 해소하는 게 바람직하다.
[4]간식은 패스트푸드 대신 견과류
흔히 간식이 생각나면 패스트푸드나 과자를 많이 찾고,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라면 떡이나 빵, 옥수수, 감자 같은 이른바 ‘웰빙 간식’을 먹기도 한다. 하지만 떡이나 빵, 옥수수, 고구마, 감자 등 웰빙 간식 역시 고탄수화물 식품으로 채소 등과 함께 먹지 않으면 인슐린 분비를 강하게 자극한다.
이런 고탄수화물 식품만 먹는 것보다는 잣이나 호두, 땅콩 등의 견과류를 간식으로 먹는 것이 좋다. 만성 스트레스로 인한 산화를 막아주는 비타민 E나 지방 연소를 자극하는 오메가-3 지방산 등이 풍부하다. 호박씨나 해바라기씨 등의 씨앗류를 먹거나 아마씨 가루를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다이어트를 할 때는 견과류로 좋은 지방을 잘 섭취하면 지방 연소가 촉진되고 운동을 했을 때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리셋클리닉 박용우 원장
탄수화물 중독 체크리스트
책상 위에 항상 과자 초콜릿?
평소 배고프지 않은 데도 음식물을 섭취하거나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푸는 경우, 배불리 먹고 나서도 곧바로 케이크나 쿠키 등이 생각나는 경우에는 탄수화물 중독이 의심된다. 이미 탄수화물 중독 상태인지 자신의 식습관을 꼼꼼히 체크해 보자.
1 아침을 배불리 먹어도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배가 고프다.
2 빵이나 떡, 면 종류를 먹게 되면 양을 조절하지 못하고 없어질 때까지 먹는다.
3 피자,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식품을 즐겨 먹는다.
4 식사를 하고 나면 졸리고 나른한 경우가 많다.
5 신맛이 나는 과일보다 단맛이 나는 과일을 좋아한다.
6 스트레스를 받으면 초콜릿이나 과자 같은 단 음식을 먹어야 해소된다.
7 원두커피보다는 설탕이 들어간 커피믹스로 탄 커피를 좋아한다.
8 정말 배고프지 않은 데도 먹을 때가 자주 있다.
9 다이어트를 계속하는 데도 그때뿐이고 다시 살이 찐다.
10 책상 속이나 식탁 위에는 항상 과자, 초콜릿 등이 놓여 있다.
[결과]
3~5개: 심각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탄수화물 중독의 위험이 있다. 식습관 개선이 필요한 단계다.
6개 이상: 이미 탄수화물 중독일 가능성이 높다. 적극적으로 식습관을 개선해야 하고, 혼자서 해결하기 어렵다면 전문가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