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교연 건양대병원 수간호사
[대전=일요신문] 육심무 기자 = 건양대병원 신교연 간호사는 1998년 대학을 졸업하고 개인병원 등에 근무하다가 건양대병원이 처음 문을 연 2000년 입사해 현재는 수간호사라는 명칭이 익숙한 중환자실 파트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격리병동에 입원해 있던 환자가 심장마비로 위급하다는 연락을 받고, 환자를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메르스에 감염됐다.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의 신분으로 약 한 달을 지냈고, 메르스라는 질병과 싸우는 환자의 신분으로 또 한 달을 지냈다.
메르스 퇴치의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포장을 수상한 신교연 간호사에게 당시의 상황 등을 들었봤다.
- 메르스 환자를 치료한 의료진이자 본인이 환자로 투병했던 시련의 시간이 1년이 지났는데 달라졌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인지.
“사망률이 40%에 달한다며 공포가 우리 사회를 잠식한 메르스 사태로 외국인 관광객이 급감하고, 학교가 휴교를 하고, 한 마을 주민들이 모두 재가 격리하는 등 전쟁을 방불케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 불과 지난해 인데 벌써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외국여행 여부 등 감염가능성을 문진하는 의료진에 대해 ‘아픈데 시간을 끈다’며 항의하는 환자와 보호자분들이 많은 실정입니다. 감염병에 대한 지나친 염려나 불안도 좋지는 않지만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력의 신장에 따라 세계 각국으로의 직항로 개설이 늘면서 우리나라와는 지구 반대쪽에 있는 국가와 지역의 전염병이 우리 현실로 발현되기 까지 걸리는 시간이 여객기 운항 속도 만큼이나 빠른 것 같습니다. 리우올림픽을 전후해 산모와 태아의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지카바이러스가 우리 언론 뉴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메르스에 앞서 사스와 신종플루로 정상적인 사회 경제활동이 타격을 받은 지도 그리 오래지 않았는데 대부분의 시민들의 뇌리에선 이미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불안해 할 필요는 전혀없지만 외국여행을 다녀오신 후 감기증상 등 불편한 점이라도 있으면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시고, 의료진의 설문에 보다 너그럽게 협조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메르스 유공 국민포장 수상
-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메르스 퇴치 유공으로 개인으로는 최고 수준인 국민포장을 받았는데.
“의료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도 큰 상을 받아 부담감을 느낍니다. 사실은 의료인이 감염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럽기도 하고요. 메르스 사태 이후 전혀 생각지 못하게 프로야구 시구자로 초청받는 등 분에 넘치는 영웅대접을 받기도 했습니다. 누구라도 했을 일을 칭찬해주시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응원의 메시지에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큰 힘과 용기를 되었습니다. 의료인으로서의 자세를 뒤돌아보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입원 중 보내주신 많은 분들의 격려와 사랑을 생각하면 지금도 코끝이 찡하고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현재는 가볍게 회상할 수 있을 정도가 됐지만 한편으로는 저도 정확히 모르는 후유증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문득 화가나기도 하고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하는 등 여러 감정 현상이 복잡 미묘하게 얽혀있는 모양입니다. 환자의 치유를 돕는 의료인에서 환자가 되어 겪어야 했던 스트레스는 아직 저에게 남모를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보내주신 편지와 성원이 힘이되어 앞으로 어떠한 어려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의료인의 한사람으로 환우들이 믿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환자들의 곁에 항상 있겠다는 말씀은 자신 있게 드릴 수 있습니다.“
- 유쾌한 기억은 아니겠지만 당시 감염과 격리 치료는 어떻게 진행됐는지.
“우리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면서 33격리병동에 환자들이 격리조치 되었는데,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투입돼 격리실 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메르스 격리병동은 총 4개의 음압병실로 이루어진 곳으로 메르스 감염자는 물론 감염자와 밀접접촉한 환자의 격리관찰을 하면서 치료까지 병행하는 곳으로, 당시 건양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4명 중 3명이 자택격리 된 상황이어서 내과교수 및 전공의, 간호사를 총 동원하여 환자진료를 했습니다. 환자를 진찰할 때는 방호복을 반드시 입고 격리병동에 입장해야 하는데 5분만 지나도 온 몸이 땀으로 젖고 숨이 턱턱막히며 입술도 바짝 말랐습니다. 완전방호를 하고 있기 때문에 물한모금 마시는 것은 커녕 숨쉬기도 어려운데다가 탈수현상으로 머리가 어지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메르스 감염의심자로 격리병동에서 치료를 받던 환자 한명이 심정지를 일으켰고, 최소한의 의료인이 투입되어야 할 상황에서 과연 누가 들어가야 하나를 놓고 봤을 때 가장 숙련된 사람이 들어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의심없이 환자에게 다가가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습니다. 약 20분 동안 쉴틈 없이 심폐소생술을 하여 맥박이 돌아왔다가 또다시 심정지가 일어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1시간동안 사투를 벌였지만 환자는 안타깝게도 사망하셨습니다. 이 후 계속되는 업무에 몸살기운이 느껴져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르스 검사를 받았고, 검사결과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아 6월14일 국가지정병원인 충남대병원에 입원하여 치료 후 완치판정을 받아 7월4일 퇴원했습니다.”
메르스 대응 유공자 시상
-의료진으로 혹은 환자로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정말 제가 메르스에 감염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설마가 현실이 된 순간 화나고 챙피하고 도망가고 싶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항바이러스제를 투약하는 치료가 힘들었지만 몸이 아픈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의료진이나 환자의 입장에서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사회적 시선이었습니다. 의료진 가족이나 친지들이 많은 걱정을 하고 어린 자녀들과 생이별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진 가족들에 대한 유언비어나 괴담 등을 접할 때는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일하는데 사회에서 오히려 격리자로 인식하는 것이 슬펐습니다. 제 동료 중 몇 명은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말라’, ‘지금 당장 집으로 데려가라’ 라는 연락을 실제로 받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사명감으로 하루하루 버텼습니다. 모두가 힘들고 누구도 격리병동에 들어가기 싫겠지만 또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었습니다.“
-병원 복귀 사진이 언론에 실렸던 기억이 나는데.
”먼저 충남대학교병원 의료진들은 저의 불안한 마음까지도 친절하고 세심하게 치료를 해주신 것에 대해 이런 기회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격리상태로 치료받으며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지,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지는 않을지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갔습니다. 퇴원 후 건양대병원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후배 간호사가 ‘수고하셨어요 파트장님’이라고 말하는데 그 한마디에 너무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또 같이 심폐소생술에 참가했던 전공의 선생님과 동료들을 보니 또 한 번 눈물이 났습니다. 저에게 보내주신 편지와 SNS를 통한 사랑에 답장도 못해 죄송하고, 어느 분의 말씀처럼 즐겁게 저의 일을 다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제가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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