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역의 KTX 개통을 정부에 요구해온 광주시가 돌연 광주역과 광주송정역간 셔틀열차를 추진하자 광주역의 KTX 개통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일요신문] 광주시가 최근 코레일과 광주송정역~광주역 간 셔틀열차 운행을 추진하면서 KTX 진입과 광주역 존폐를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오는 12월 개통 예정인 수서발 고속철(STR) KTX의 광주역 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던 광주시가 느닷없이 셔틀열차 운행을 들고 나오면서 논란에 불을 붙이는 모양새다. 두 역간 셔틀열차 운행은 호남고속철도 개통 전 국토부가 광주역 KTX 운행 중단과 관련해 검토했던 4가지 대안 중 하나이기도 하다. KTX 광주역 진입 요구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셔틀열차 운행 계획이 튀어나오자 셔틀열차 운행과 KTX 광주역 미진입 간에 모종의 ‘묵계’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KTX 진입과 존폐 여부를 둘러싼 광주역 논란의 내막을 들여다봤다.
KTX의 광주역 진입 여부는 ‘광주역 존폐’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광주역 존폐논란은 지난해 4월 광주송정역 호남고속철 개통에 따라 광주역 KTX의 운행이 중단되면서 불거졌다. KTX 개통을 계기로 KTX 정차역이 광주송정역 1곳으로 일원화되자 KTX 운행이 중단된 광주역 주변 상권이 급속히 쇠락하자 광주역의 존치 문제가 쟁점화된 것이다. 지금까지 광주시 행정기조는 전체적으로 ‘광주역 존치’를 염두에 두고 진행 중이다. 시는 수도권에서 서대전역을 거쳐 익산역으로 가는 KTX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반면, 북구청, 일부 북구의회 의원과 북구 주민들은 ‘광주역 폐쇄’를 주장하고 있다. 광주역 부지에 북구청, 세무서 등 공공기관 유치 푸른길공원과 같이 철길부지의 녹지공간 활용, 광주역사와 철길로 단절된 도심을 연결하는 도로 개설 등의 활용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광주역 존폐 논란은 그간 광주시와 북구가 줄기차게 정부에 요구해온 수서발 고속철 KTX 광주역 진입방안이 가시적으로 현실화되지 못하면서 확산되고 있는 측면도 있다. 호남고속철 개통 직후 ‘광주역 폐쇄’ 입장을 정했다가 광주시와 지역 정치권을 따라 광주역 존치로 입장을 바꾼 북구는 지난 8월 11만 명이 참여한 ‘호남선 KTX 광주역 진입’ 서명부를 국토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국토교통부는 오는 12월 개통 예정인 수서발 고속철도 운영에 따른 철도운영계획을 10월 중순 발표할 예정이다. 광주시와 북구 등에선 이 계획에 서대전역 경유 익산역 종점을 내용으로 하는 호남선 KTX가 광주역까지 진입하는 방안을 포함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하고 있다. 하지만 국토부의 철도운행계획에는 아직 호남선 KTX의 광주역 진입이 포함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레일 측도 KTX의 경우 ‘1도시 1개역’ 원칙이 전국 공통으로 적용돼 광주송정역과 광주역의 2개역 진입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이런 와중에 광주시가 불쑥 광주송정역~광주역 셔틀열차 운행 계획을 내놓으면서 논란을 키우고 있다. 수서발 고속철 운행에 맞춰 국토교통부, 코레일과 협의해 광주송정역과 광주역을 오가는 셔틀열차를 운행하면 주민 불편을 덜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시는 12월부터 광주역~광주송정역 간 왕복 14회, 편도 28회 셔틀열차가 운행되면 두 역이 18분 내로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윤장현 광주시장은 “이번 셔틀열차 운행 결정은 교통편의는 물론 도심 활성화와 도시관광 측면에서 그 의미가 크다”며 “디자인 등을 포함해 종합적인 계획을 세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추진하라”고 지시한 상태다.
일각에선 그간 수서발 고속철 개통에 맞춰 광주역에 KTX 유치를 추진해 온 상황에서 광주시가 갑자기 셔틀열차 운행에 공을 들이자 “두 역간 셔틀열차가 KTX 광주역 미진입을 인정한 대안으로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물론 광주시는 셔틀열차 추진이 광주역에 KTX 진입과는 별개 사안이라고 펄쩍 뛰며 선을 긋고 있다. ‘교통편의’에 중점을 두고, 셔틀열차와 광주역 KTX 진입을 ‘투 트랙’으로 추진한다는 게 광주시의 기본 입장이다.
그러나 셔틀열차 운행을 두고 광주시가 자충수를 두고 있다는 비판적 지적이 나온다. 시가 코레일과의 논의를 통해 셔틀열차를 운행할 경우 광주역에 대한 KTX 진입 요구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광주역·철길 시민환원 대책위원회’는 지난 9월 26일 시의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시와 북구가 광주역 주변 구도심 활성화를 위해 그간 KTX 광주역 진입을 주장해 온 것인데 이제와 셔틀열차를 내세우는 것이 석연치 않다”며 “셔틀열차는 결코 광주역 문제의 대책이 될 수 없다. 광주 발전을 고민한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대책이다”고 비판했다. 거의 1시간에 1대 꼴로 운행하는 셔틀열차가 ‘교통편의’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이게 광주역 주변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대안이 되긴 어렵다’며 갈팡질팡하는 시 행정을 꼬집었다. 시내버스, 지하철과 연계·환승이 안 되고, 광주시가 추진 중인 도시철도 2호선에 광주역이 포함돼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셔틀열차의 지속가능성은 더욱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수서발 KTX 광주역 진입 요구가 무산될 경우 광주역 문제에 대처할 ‘플랜B’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호남고속철도 개통으로 KTX 운행이 중단된 광주역은 이용객의 급격한 감소, 상권 축소 등 ‘쇠락’의 길을 걷고 있으나 수서발 KTX 광주역 진입 요구 외에는 지금까지도 광주시의 대책은 전무한 상태라는 것이다. 대책위는 “지난해 호남고속철도 개통으로 광주역에 KTX 운행이 중단된 이후부터 이 상태로 시간만 보내는 것을 우려해 빨리 광주역 활용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지만 광주시는 아직도 눈 가리고 아웅하고만 있다”며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KTX 유치해보겠다고 광주역을 존치할 경우 또 다시 5~10년이란 시간만 허비하게 될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만일 셔틀열차 운행만 결정되고 KTX의 광주역 진입이 무산될 경우 극에 달한 광주역 주변 도심공동화 문제와 관련해 광주시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대책위는 “더 늦기 전에 셔틀열차 운행 같은 자충수를 그만둬야 한다”며 광주역을 폐쇄하고 부지와 철길 주변을 행정복합타운과 문화·체육시설 등으로 조성하고 남구~동구로 이어지는 푸른길을 북구~광산구로 이어가는 방안을 제시했다. 여기에 코레일이 셔틀열차 운행비용으로 광주시에 연간 12억 원을 요구하면서 운영비 보전에 대한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이와 관련, 광주시 관계자는 “셔틀열차 운행은 올해 초부터 추진해 온 것”이라면서 “셔틀열차 추진이 KTX 진입 요구와 맞지 않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이 사업은 광주역에 KTX 진입이 되냐 안 되냐를 따져 추진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또 코레일이 운영비를 요구한 것과 관련해서는 “시가 직접 운영할 경우 열차를 새로 구입하는 데 1량 1편성에만 60억 원이 들어간다, 3편성일 경우 무려 180억 원이 필요하다”며 “인건비나 철로 사용료, 차량 유지보수, 감가상각비 등을 고려하면 12억 원이 결코 많은 금액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나아가 역을 철거하고 복합행정시설을 들이자는 주장도 있지만 철길을 들어내기 위해서는 철도공사 부지 매입이 이뤄져야 해 중앙정부 협조와 천문학적 예산 확보 등 난관이 예상된다는 게 광주시의 입장이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