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신도시 등 대규모 주택단지에 다양한 지역 맘카페가 개설되며 각종 분쟁이 야기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인근에서 애견샵을 운영하는 A 씨(여·42)는 이제는 맘카페라면 진절머리가 난다고 했다. 5년 전, 이 지역에 애견샵을 열면서 주민이 된 A 씨는 낯선 곳에서 맛집, 쇼핑세일 등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인근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지역 카페에 가입했다.
문제는 지난해 7월 불거졌다. 일이 바빠 강아지를 돌보지 못해 미안하다는 한 주민의 글을 본 A 씨가 ‘재능기부’ 차원에서 무료 미용을 해줬는데, 주민이 고맙다며 카페에 올린 감사 글을 보고 똑같이 무료로 미용을 요구하는 연락이 몰려들었다. A 씨에게 온갖 사연이 담긴 장문의 메일을 보내거나, 카페에서 직접 그를 지목하며 무료 미용을 요구하기도 했다. 당황한 A 씨가 취지를 설명하고 거절 의사를 밝히자 “재능기부를 골라서 하나” “한 명만 해주는 이유가 뭐냐”는 글이 올라왔다. 심지어 A 씨의 애견샵에 대한 혹평이 실린 글이 카페에 지속적으로 올라오면서 주민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결국 A 씨는 ‘재능기부’ 두 달 만인 지난해 9월, 사과 글을 올리고 카페를 탈퇴했다.
# ‘정보공유’가 권력화
지역 맘카페는 보통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로 구성돼 있다. 초기에는 젊은 가정주부들을 중심으로 육아 정보가 공유됐는데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직접 경험했다’는 점에서 신뢰도가 높아지면서 점차 회원 수가 늘어 대형 맘카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육아는 물론, 이웃끼리 지역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데까지 범위가 넓어져 전국 신도시나 주거공간이 밀집된 곳의 맘카페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일부 맘카페에서 공유되는 정보가 ‘권력화’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특히 앞서의 A 씨의 사례처럼 지역 상권에서는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한다. 수도권의 한 신도시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B 씨(38)는 “아파트 단지 인근이라 맘카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글 하나에 매장 이미지가 결정될 정도다. 단순히 입소문 수준을 넘어선다”며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엄마’들과의 언쟁은 피하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일부 맘카페는 정보 공유로 얻은 ‘권력’을 ‘상업화’하기도 한다. 지난 3월까지 한 지역 맘카페 운영진을 맡았던 C 씨(여‧33)는 기자와 만나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카페 운영진들은 지역 상인들이 카페에 광고를 올리게 해주는 대신 한 건 당 30만 원에서 50만 원의 광고비를 요구했다. 여기에 일부 업체에는 지역 행사 등이 열릴 때 ‘협찬’을 요구하기도 했다. C 씨는 “관련 업체만 100여 개가 넘었다. 단순 계산으로만 홍보 수익이 3000만~5000만 원에 달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광고비를 내지 않은 업체의 ‘후기’ 글이 올라오면 통보 없이 글이 삭제되기도 했다. 지난 2월, 회의감이 들었던 C 씨가 카페 수익에 대한 글을 올렸고, 이에 동조하며 투명화를 요구하는 회원들이 늘어나자 맘카페 운영자는 이들을 강제로 탈퇴시키고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이에 대해 카페 운영자는 상업화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회원들이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며 “업체가 다양하고 각양각색이라 모두 광고를 허용하면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제한적인 홍보 기회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C 씨를 비롯한 회원 명예훼손 고소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 도를 넘는 바이럴 마케팅
인터넷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면 의견 충돌이 생길 수 있다. 운영 방식이 자신과 맞지 않거나 회원들과 마음이 맞지 않으면 탈퇴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맘카페에 올라와 있는 글과 정보 상당수가 지역 주민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임의로 작성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역 주민 소통과 ‘직접 경험한 정보 공유’라는 기본적인 맘카페의 취지와 신뢰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바이럴 마케팅 업체가 맘카페를 중심으로 영업을 시작하면서 이러한 논란이 일부 맘카페들 사이에서 불거지고 있다. 지난 9월, 또 다른 수도권 신도시 인근의 상가들은 일제히 이 지역 ‘맘카페 운영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일정 금액의 홍보비를 내면 맘카페에 손님이나 학부모가 쓴 후기 글을 올려주거나 댓글을 달아 주겠다는 얘기였다.
이 지역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D 씨(여‧52)는 “전화에서 언급한 맘카페에 글을 올렸더니 곧바로 운영자에게 전화가 왔다”며 “바이럴 마케팅의 일종이라며 카페에서 그런 요구는 일절 하지 않으니 응대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맘카페에서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다는 등 카페 활동을 하려면 다양한 조건이 있다. 일정 기간 카페에 접속하거나 정해진 개수의 글과 댓글을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하지만 바이럴마케팅 업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영업을 하고 있다. 기자와 만난 한 바이럴마케팅 업체 관계자는 “카페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갖춘 아이디를 판매하는 업체들이 있다. 그곳에서 구매해 사용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맘카페에서 바이럴 마케팅을 하는 업체들의 ‘작업’ 방식은 치밀하다. 보통 15개에서 20개가량의 아이디를 확보해 홍보한다. 직접 후기 글을 올리고 다른 아이디로 접속해 동의한다거나 공감한다는 댓글을 작성한다. 특히 제목과 조회 수보다는 글에 달린 댓글 수를 보고 클릭을 하기 때문에 댓글 관리 명목으로 추가 금액을 요구하는 바이럴 마케팅 업체도 있다. 이러한 방식의 관리 기간은 비용에 따라 짧게는 한 달에서 6개월이다.
반대로 맘카페에서 홍보 대상을 물색하기도 한다. 지역 업체 리스트를 확보한 뒤, 신생 아이디를 활용해 “이사 왔는데 좋은 학원 알려주세요” “맛집 알려주세요”라며 정보를 묻는 글을 올린다. 이 때 언급되지 않은 지역 업체에 전화를 걸어 카페 홍보를 권유하기도 한다. 앞서의 바이럴마케팅 관계자는 “20~30대가 주로 모이는 카페나 블로그에서도 마케팅을 하지만, 맘카페가 가장 효과가 있다. 일부 맘카페에서 마케팅 단속을 엄격하게 하지만, 바이럴 마케팅 업체들이 시간을 투자해 맘카페에서 홍보를 하려는 이유는 다 여기에 있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서울의 한 변호사는 “최근 맘카페 등 인터넷 공간에서 생긴 각종 분쟁으로 상담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운영진의 엄격한 관리와 소비자의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앞서와 같은 형태의 바이럴 마케팅의 경우 과도한 허위 내용이 포함돼 있거나 과장 광고로 소비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이를 통해 부당한 이익을 취한 사실이 입증되면, 사기죄까지 적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