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저드 대전시향 예술감독겸 상임지휘자 취임연주회
[대전=일요신문] 육심무 기자 =대전시립교향악단 신임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제임스 저드(67)의 취임 연주회에 대해 음악평론가들은 한 마디로 성공적인 연주회였다고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제임스 저드에 대한 팬들의 높은 기대가 때문에 대전예술의 전당 연주회장 객석은 청중들로 가득찼고, 이에 부응해 수준 높은 지휘로 단원들의 능력을 이끌어 내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특히 연주의 난이도가 높은 편인 베토벤의 7번 교향곡을 악기와 연주자들간의 조화를 무리 없이 이끌어내 완성도 높은 연주를 선사해 대전시향의 기량 향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임스 저드의 대전시향 마에스트로 취임 연주회에 대해 음악평론가인 백석문화대 오지희 교수의 리뷰를 싣는다. 오지희 교수는 서울대 음악대학 이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음악대학원에서 서양음악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백석문화대 실용음악학부 교수인 그녀는 현재 대전예술의 전당 아카데미 ‘음악을 따라 흐르는 클래식’ 강사로, 음악평론가 및 해설가로 활동하면서 클래식 음악의 저변 확산에 나서고 있다. <편집자 주>
대전시향의 새로운 선택, 새로운 출발 9개월 가량의 공백기간을 거쳐 기다렸던 대전시립교향악단 제 8대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제임스 저드(James Judd, 67세)가 선출됐다. 올 해 초부터 약 7개월에 걸쳐 객원지휘자를 초빙해 적임자를 찾았고, 그 과정에서 전문가와 단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지휘자 저드는 취임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당당히 대전시향의 마에스트로 자리에 올랐다.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로린 마젤 부지휘자로 주목을 받은바 있는 제임스 저드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이스라엘 필하모닉과 같은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 지휘 경험을 통해 현재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실력자다. 이러한 지휘자가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3번과 베토벤 교향곡 7번,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과 함께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마단조로 대전시민 앞에 정식 데뷔무대를 성황리에 치뤘다. 무엇보다도 취임연주회의 레퍼토리 선정은 매우 뛰어난 선택이었다.
지난 6월 30일, 객원지휘자로 초빙됐을 때의 연주곡목은 브람스의 비극적 서곡과 슈만의 첼로협주곡 가단조, 브람스 교향곡 1번 다장조였다. 그 때도 대전시향 단원들의 음악적 흐름을 잘 포착하여 브람스 교향곡의 묵직한 울림을 효과적으로 표출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낭만시기에 형식의 중요성을 포기하지 않았던 브람스에 이어 고전시기 형식과 내용의 탁월한 균형감각을 지닌 베토벤 교향곡 7번으로 취임무대에 선 것은 대전시향과 관객 모두를 만족시키는 최선의 작품이라고 여겨진다.
오지희 백석문화대 교수
첫 곡 레오노레 서곡 3번은 오페라 음악을 창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베토벤의 지난한 역정을 상징하는 곡이다. 음악이 수시로 극을 압도하는 상황으로 여러 번 개정될 수밖에 없었던 오페라 피델리오 서곡은 그 중 3번이 가장 음악적으로 뛰어나다. 감옥에 갇힌 남편을 구하기 위해 남장을 한 부인 레오노레의 용감한 선택은 혁명의 빛나는 승리와 인간애의 구현이다. 이러한 의미를 갖고 있기에 서곡은 조용히 장중하게 흐르면서 점차 승리의 힘찬 표상을 가슴벅찬 울림으로 들려준다. 섬세한 표현력과 강렬한 음악적 효과가 요구되는 이 곡을 지휘자 저드는 원곡의 의미를 잘 살리며 부분 부분이 살아있는 입체감 있는 음악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마단조로 무대에 선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은 평소의 발랄하고 개성있는 성향대로 힘이 넘치고 다채로운 음색을 지닌 멘델스존 협주곡을 들려주었다. 흔히 멘델스존 음악은 섬세하며 심지어 유약한 느낌을 지니고 있다고까지 해석하는 음악가들도 있으나, 사실 이는 옳지 않은 설명이다. 멘델스존의 대표적인 바이올린 협주곡은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아주 강력하고 화려한 낭만주의의 걸작으로 표현될 수 있는 작품이다. 백주영은 특히 2악장과 독주 카덴차에서 유려한 선율의 흐름을 정교하게 표현하며 멘델스존 음악이 지닌 우아함과 강렬함을 당당하게 보여주었다. 대전시향 역시 백주영의 연주스타일에 반주를 잘 맞춰주며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음향을 들려주었다.
음악회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베토벤 7번 교향곡이었다. 음악 성격상 축제와 춤의 환희를 상징하는 듯한 이 작품은 베토벤 당대에도 초연 공연에서 가장 큰 환호를 받은 교향곡이기도 하다. 통상 4개의 악장을 지닌 교향곡은 2악장이 느리고 서정적으로 움직이는데, 7번 교향곡은 느리게 흐르는 악장이 없다. 그렇기에 이 곡의 핵심은 바로 규칙적인 형식미 안에서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선율과 그 흐름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부각시키는가에 연주의 성패가 달려있다.
지휘자 저드와 대전시향은 최선을 다해 베토벤 교향곡 7번에 내재된 음악적 본질을 소리로 옮기려는 노력을 펼쳤다. 아직 지휘자의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아서 1악장은 처음부터 일치된 하모니를 들려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저드의 지도에 따라 최상의 연주력을 펼치려는 모습은 인상적으로 다가왔고, 열정은 객석에 앉은 관객 한명 한명에게 전달됐다. 때로는 지휘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간신히 좇아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세세한 부분은 놓치기도 했지만, 베토벤 7번 교향곡이 표출하는 환희의 힘을 드러내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다시 말해서 7번 교향곡을 통해 지휘자 저드의 카리스마가 단원 한명 한명에게 통했고 통솔력 역시 충분히 입증됐다. 저드는 레오노레 서곡을 통해 당당한 승리의 기쁨을, 교향곡 7번을 통해 취임연주회를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한편으로, 짧은 시간에 이만한 성취를 이루어낸 데는 전임지휘자 금노상의 역할이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금노상이 주도한 베토벤 교향곡 시리즈를 통해 대전시향이 베토벤 교향곡을 단단히 연주할 수 있는 기본을 갖추었기에 저드의 지도력이 십분 발휘될 수 있었다. 환호받은 취임연주회의 카리스마는 앞으로 다양한 레퍼토리를 펼치며 본격적으로 입증될 것이다.
새로운 지휘자와의 새로운 출발은 당연히 대전시향의 새로운 노력과 합쳐져 이루어진다. 이제 공은 대전시향 단원에게 넘어갔다.
오지희<음악평론가, 백석문화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