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제17회 연합회장배 및 제3회 지평선배 전국 줄다리기 대회’에 참가한 청풍달구벌 줄다리기팀이 시합에 임하고 있다.
경기장 내 응원석이 들썩인다. 무대에 각 8명씩 선수가 들어서고 줄을 잡자 장내에 날카로운 긴장감이 감돈다. 모두가 심판의 손짓에 주목한다. 시작과 동시에 줄이 팽팽히 당겨진다.
지난 1일 전북 김제 벽골제 특설야외경기장에서 전국 줄다리기 대회가 열렸다.
전국 줄다리기 대표 80개팀 930명이 참가한 이번 대회에는 일본 미야기현 선발팀, 타이완 대학연합팀 등 국외 2개 팀 30명도 참가했다.
특히 이날 대구 대표로 출전한 청풍달구벌은 남·여 우승, 혼성 3위를 차지하며 한국대표로서의 저력을 과시했다.
아직까지 대구시에는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은 줄다리기. 누구나 한번쯤 줄다리기를 해봤지만 스포츠 경기로는 다소 낯설다.
<일요신문>이 한국대표 대구시 줄다리기협회 청풍달구벌을 만나 ‘줄다리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대표의 손은 거칠었다.
고영미(여·36) 코치의 손은 딱딱한 굳은살로 가득했다. 그나마 그녀는 나은 편이다. 줄을 잡는 선수들의 손은 하나같이 영광의 상처가 새겨져있다.
손뿐만 아니라 줄이 들어가는 옆구리도 굳은살이 베겨있다.
“지금은 손 상태가 많이 좋아진 겁니다. 줄을 잘못 잡거나 손에서 줄을 놓치는 경우 손이 더 많이 까지거든요.” 수년째 코치를 맡고 있는 그녀는 초보자일수록 손이 더 상한다고 설명했다.
훈련때는 장갑과 보호대를 착용하지만 정작 시합때에는 맨손으로 줄을 잡는다. 본연의 힘이 손바닥을 통해 그대로 전달돼야 하기 때문이다.
옆구리에 착용하는 보호대도 시합때는 벗는다고 한다. 줄이 몸에 닿아야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광의 흔적’ 한국대표의 손바닥과 손목에는 줄이 지나간 흔적들이 남아 있다.
“줄다리기는 기술과 단합력이 관건입니다.” 고 코치는 기술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도 팀내 전략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전략 노출은 곧 패배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스포츠 줄다리기는 팀당 8명이 출전한다. 이 8명의 출전선수의 몸무게의 합에 따라 480㎏부터 무제한급까지 모두 9체급으로 나뉜다. 1~7번 선수는 풀러(puller), 마지막 8번째 선수는 앵커(anker)라고 불린다.
고 코치는 특히 앵커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각 팀마다 포지션 또한 전략마다 다르게 배치되지만 이른바 ‘박는’ 역할을 하는 앵커는 팀의 마지막 기둥이자 최후 보루이다. 등과 어깨에 줄을 두른 채 마지막 줄을 웅켜잡은 앵커는 전력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앵커가 팀 전체의 경기력을 컨트롤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선수들의 정신력과 단결력 입니다.”
그녀는 훈련과정을 통한 선수들간 ‘한마음, 한 뜻, 한 정신’이 전력의 핵심이라고 전했다.
동일한 체중 제한의 조건에서 당기는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스포츠 줄다리기는 시간 제한이 없다. 4m를 먼저 당기려면 그만큼 버티는 기술과 힘의 조절이 필요하다. 8명의 선수가 경기 상황에 맞춰 한몸처럼 움직여야 된다는 것이다.
줄을 잡고 당기는 순간 8명의 호흡이 시작된다. 똑같은 타이밍에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손은 줄을 움켜진 채 몸을 최대한 낮춘다. 상대의 힘이 가늠된 순간 동시에 한몸처럼 다리를 움직여 상대를 끈다.
매 호흡마다 8명이 일심동체가 되어 발걸음 하나조차 흐트러지지 않고 임해야 상대를 이길 수 있다.
한국 줄다리기 대표로서 힘든 점도 많았다고 한다.
그들을 가장 힘들어 하는 것 중 하나는 마땅한 훈련 장소가 없다는 것이다. 줄다리기 전용구장이 없는 한국 대표다. 현재 이들은 대구 내 학교 운동장이나 강당을 빌려 매트없이 맨 바닥에서 연습에 돌입한다.
선수전용 매트는 무려 3000만원. 설치비용만 20만원이 들어간다. 줄다리기 전용 신발도 국내에는 생산되지 않아 자비로 대만에서 직접 수입한다.
지난 1일 ‘제17회 연합회장배 및 제3회 지평선배 전국 줄다리기 대회’에 참가한 청풍달구벌 줄다리기팀이 시합에 임하고 있다.
고 코치는 열악한 환경도 훈련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다리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개인적으로 디스크가 있었어요. 그런데 줄다리기가 전신운동이자 허리를 펴는 자세가 완성되야 줄을 잘 잡아요. 이 운동을 통해 디스크도 낫고 한국 대표까지 됐죠.”
줄다리기를 통해 인생관도 달리 바뀌었다고 한다.
“마라톤이 인생이라는 말이 있듯 저는 줄다리기도 인생과 같다고 생각해요. 엄마 뱃속에서 시작해 학교, 사회, 다양한 일들을 거치며 사람들과 마음을 맞추죠. 때론 시합 가운데 뒤쳐져 힘들때 ‘포기할까’라며 수많은 번뇌와 고민이 나를 괴롭히지만 곁에 사람들이 나를 붙들고 이를 악물고 버티는 모습을 보며 이겨내게 되요.”
이번 김제에서 열린 전국줄다리기는 아시아대회 선발전이었다. 아시아 줄다리기 대회는 다음달 말 태국에서 열린다. 그녀의 올해 목표는 아시아 대회에서 대만을 꺾는 것이다.
현재 아시아 줄다리기는 대만과 일본이 최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미 청풍달구벌은 일본을 꺾은 전적이 있다.
고 코치는 “사실 대만은 어릴적부터 헬멧쓰고 줄을 잡는 선수들이 많아요. 저희 선수들은 학생부터 주부까지 줄 처음 잡아본 사람이 대부분이라 쉽지 않죠. 하지만 항상 감독 중심으로 선수들과 코치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줄을 당길 겁니다. 곧 세계가 끌려 올거라 확신합니다”라며 포부를 드러냈다.
한편 지난 2011년 결성된 청풍달구벌 팀은 ▲2013년 기지시 줄다리기대회 혼성 1위 ▲제13회 국민생활체육회장배 남성 및 혼성 부문 1위를 차지하며 혜성처럼 등장했으며 ▲2014 전국 생활 체육 대축전 줄다리기대회에서 14년 만에 최초로 남·여·혼성 3개 부문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제15회 연합회장배 남·여·혼성 전 부문 우승 ▲제14회 국민생활체육회장배 종합우승 ▲2015 전국생활체육대축전 남·여·혼성 종합 우승 ▲제16회 연합회장배 및 제2회 지평선배 남·여·혼성 종합 우승 ▲2015 타이완줄다리기협회 초청 국제 실내줄다리기대회 남·여 금·은메달 획득 ▲제8회 전국 스포츠줄다리기대회 남·여 우승 ▲2016전국생활체육대축전 남·여·혼성 우승 등을 이어가며 대한민국 줄다리기를 대표하는 강자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대구= 남경원 기자 skaruds@ilyod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