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은 지난 9월 22일 보건복지부가 의료인의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한 기준을 담은 의료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을 내놓으면서부터 시작됐다. 복지부는 최근 주사기 재사용 사태 등에 대응해 ‘비도덕적 진료 행위’를 구체화하는 내용의 행정처분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복지부는 “다나의원 사건과 같이 국민건강상의 심각한 위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처벌 수준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며 “의료인의 중대한 건강상의 문제를 모니터링하고 직업윤리 및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한 대책의 일환으로 개정 내용을 마련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이번 개정안에는 간호조무사 자격 신고 및 교육기관 관리 강화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비도덕적 진료행위 관련 처분 개정은 의료 과실에서 비롯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비도덕적 진료 행위를 규제하자는 취지였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똥이 튀었다. 비도덕적 진료 행위에 불법 낙태 행위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에는 허가받지 않은 주사제 사용과 불법 낙태 행위 이외에도 대리수술, 오염된 의약품 및 사용기한이 지난 의약품 사용, 진료 목적 외 마약·향정신성 의약품 처방 등이 비도덕적 의료행위로 지정됐다.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에 해당하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이 법에는 산모나 산모의 배우자가 유전적인 정신장애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혹은 여성이 강간 등에 의해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이나 인척에 의해 임신된 경우 등에 해당될 때만 낙태 수술이 허용된다. 이 경우가 아니면 임신중절수술 위반에 해당돼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적발될 수 있다. 기존에도 법을 위반하는 임신중절수술이 적발되면 형법과 의료법에 따라 형사처벌 및 면허 결격사유 처벌 규정에 따르게 된다.
또 이런 행위가 적발될 경우 시행되는 처벌기준 역시 강화됐다. 불법 낙태 행위를 포함한 비도덕적 의료행위가 적발될 경우 시행하던 의사자격 정지기간이 대폭 늘어났다. 기존에는 1개월이었던 자격 정지 기간이 이번 개정안에는 12개월로 늘어났다. 의료계에선 2개월 이상 의사 면허를 정지하면 사실상 병원을 폐업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반발하고 있다.
산부인과의사회는 “개정안이 바뀌지 않으면 낙태 시술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동석 산부인과의사회장은 “거의 모든 낙태가 ‘원치 않는 임신’ 때문인데 이들을 모두 출산시키면 ‘중학생 임신 출산’ 등 사회적 혼란을 누가 책임질 것이냐. 처벌 위주의 정책보다는 정부가 인공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먼저 이끌어내야 한다“며 ”불법 낙태에 대한 고소·고발이 활발해지면 낙태가 더욱 음성화돼 임부가 위험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고, 중국 등으로 원정 낙태를 가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산부인과 의사는 “이미 처벌 규정이 있는데 이 개정안이 발의되면 이중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라며 “이 개정안에는 선고유예 이하를 받은 경우까지 처벌범위를 확장하려는 의도가 있다. 또 이중처벌보다 더 수치스러운 것은 비도덕적 진료행위라고 이름붙여 우리 의사들을 비도덕적 인간으로 폄하하는 것이다. 환자들이 어쩔 수 없는 경우 낙태를 원하면 의사는 이들을 위해 수술을 해야 하는데 비도덕적이라고 몰고 가면 안하고 말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복지부가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국민인식조사결과에 따르면 가임기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임신중절수술을 한 경험이 있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이유는 원하지 않는 임신이었기 때문으로 드러났는데 현행법상 불법에 해당하게 된다.
여성단체 역시 개정안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페미니스트들이 모여 만든 모임인 불꽃페미액션은 검은 리본으로 손목과 배, 입을 막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이는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통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들은 ”보건복지부의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개정령 안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 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해 여성을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며 ”현행법 체계에서 임신중절수술을 범죄로 규정하거나 배우자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삭제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각계의 반발에 복지부는 대한의사협회 안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의견을 발표했다. 그러나 불법 낙태는 의료인으로서 명백한 비도덕적 의료 행위라며 이 개정안을 유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사전 협의에 없는 내용이며 협의 과정 없이 보도자료를 발표한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복지부는 이 개정안을 오는 11월 2일까지 입법예고했다. 구체적인 행정처분의 대상 및 자격정지의 기간 등은 입법예고 기간 중 전문가 및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