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박 후보 간 갈등이 급기야 검찰까지 끌어들인 셈이 됐다. 강재섭 대표가 이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 ||
당내 경선까지 불과 한 달여밖에 시간이 남지 않은 한나라당으로서는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심경이다. 두 주자의 공방이 한계를 넘어 자해 수준에 이르렀다는 말들이 오가는 판에 검찰까지 수사의 칼날을 곧추세우게 만든 상황이지만 당 지도부가 할 수 있는 일도 뾰족하게 찾을 수 없다는데 상황의 심각성이 더하는 듯 보인다. 당의 검증 청문회도 일주일을 채 남기지 않은 상태지만 과연 이 청문회가 어떻게 흘러갈지도 예상키 어려운 상황이다. 강재섭 대표는 “내가 광화문에 드러눕는 한이 있더라도 후보를 보호하겠다”고 했지만 그 말 속에서도 어려움이 묻어나온다. 과연 한나라당은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아름다운 경선’을 치를 수 있을까. 한나라당이 겪고 있는 내홍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관련한 고소고발 사태로 한나라당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 대선 정국에서 검찰의 수사가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뼈아픈 경험을 한 바 있는 한나라당인 만큼 불안의 정도도 심하다.
사태의 불씨는 지난 4일 이명박 전 시장의 처남 김재정 씨가 박근혜 전 대표 측 유승민 이혜훈 의원, 서청원 고문을 고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박 전 대표 측 의원들이 언론을 통해 음해성 발언을 일삼아 명예훼손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지난 9일 최고위원회를 통해 이 전 시장 측에 고소 취하를 권유했다. 강 대표는 “캠프 차원에서 고소, 고발하지 말라는 게 지도부 입장”이라며 “검찰에 수사해 달라고 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바보라며 ‘신탁통치’를 해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얘기이며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것과 비슷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이 전 시장 측은 공식적으로 당의 취소권유에 따르기로 결정했으나 당시 이 전 시장 캠프의 입장과는 달리 처남 김재정 씨는 ‘명예훼손 고소 취소 권유’를 거부함으로써 논란의 불씨를 더욱 지피고 말았다.
박 전 대표는 이 전 시장에 대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이 전 시장이 당의 권유에 따르는 모양새를 취해 명분을 취하고 시간을 끈 뒤 김 씨가 소송을 취소하는 시나리오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 전 대표 측 유승민 의원은 12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재정) 씨가 고소하는 것을 이 전 시장이나 캠프에서 몰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라며 “당초 김 씨의 변호사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도 이 전 시장 측 대변인이 함께 왔었다. 고소를 하러갈 때도 캠프의 법률지원단의 핵심 변호사가 같이 갔었다”고 근거를 덧붙였다.
이번 고소고발 사태에 대해서 양측이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는 것에는 이번 사건이 양 주자의 지지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즉 양 주자는 경선 경쟁에서 이번 고비가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 전 시장 측은 자신에 대한 검증공격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고비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전 시장 측 관계자는 “그렇게 검증 공세 포화를 얻어맞았음에도 지지율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본다”며 언론에 비친 것과는 달리 비교적 여유로운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이는 ‘이번 고비만 버티면 된다’는 계산이 뒷받침된 말이기도 하다.
역으로 이 전 시장과 관련된 의혹의 ‘키’를 쥐고 있는 처남 김재정 씨 문제 처리는 박 전 대표에겐 지지율 반전을 위한 절호의 기회다. 무엇보다 이명박 후보 캠프가 이번 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내홍을 겪고 있는 이 ‘틈’을 계속해서 파고들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박 전 대표 측 유승민 의원은 이 전 시장과 김재정 씨를 향해 “쇼를 하고 있다”며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양 주자 간의 싸움에 대해 한나라당 내에서는 우려를 넘어 한탄의 소리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심지어 ‘경선에만 이기면 본선승리는 떼어논 당상’이라고 자부하던 당 분위기에 위기의식이 점점 짙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 박근혜 양 주자가 상대후보를 깎아내리는 것에만 급급해 ‘공멸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조적인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경선까지 남은 기간을 어떻게 버텨내느냐가 관건”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위기의식은 당 지도부에도 팽배해 있다. 이 전 시장 측에 고소 취소를 권유했던 당 지도부는 김재정 씨 측이 취소 불가 입장을 밝히면서 검찰 수사가 계속될 것으로 보이자
“당내 문제가 당 외로 넘겨진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집안싸움’을 단속하지 못한 것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로였다. 나경원 대변인이 밝힌 당의 공식 입장과는 달리 강재섭 대표의 말을 들어보면 상황의 심각성을 분명히 느낄 수가 있다.
강 대표는 지난 9일 이 전 시장 캠프에 고소 고발을 취하해 달라고 촉구하면서 “우리 운명을 검찰의 칼날에 갖다 놓고 알아서 해 달라니 정신 나간 사람들이 캠프에 모여 있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외적에 대해 사생결단으로 싸워야 하지만 집안싸움은 ‘금도’를 지켜야 한다”고도 말했다. 외부적으로 유연한 이미지를 보여 왔던 강 대표의 발언 치고는 상당히 수위가 높아진 것이었다.
강 대표는 더 나아가 “한반도에 당나라 군대를 끌어오는 것” “단두대에 당의 머리를 들이미는 격”이라는 등 이명박 후보 측의 고소고발에 대해 연이어 문제점을 지적했다. 어쩌면 한나라당에겐 마땅히 공격할 만한 범여권 주자가 없는 현실이 악조건인 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에 대해서도 박 전 대표 측은 불만이다. 박 전 대표 측은 당 지도부가 ‘이명박 구하기’에 나섰다며 강한 불만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 전 시장에게 고소 취하를 권유한 것 자체가 (고소 취하의) 명분을 주려는 의도 아니냐는 것이다. 박 전 대표 측 이혜훈 대변인은 “소를 취하한다면 반대는 하지 않겠다”면서도 “소를 취하한다면 땅 판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등 문제가 됐던 각종 의혹에 대해 이(명박) 후보가 반드시 직접 밝혀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두 주자의 공방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가운데 양 주자들은 19일 후보 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애초 형식적인 청문회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으나 이번 고소 취소 논란으로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일각에선 “박근혜 전 대표 측에선 이번 청문회를 벼르고 있을 것이다. 이 전 시장에 대한 공세 수위를 최대한 올릴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제대로 된 검증보다는 양 측의 공방만 더 가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한나라당은 검증위원회의 ‘부실함’을 외부에 노출해 버렸기 때문이다. 강 대표 스스로 당 검증위원회의 검증 능력에 의문을 제기한 것. 강 대표는 “검증위에서 자료제출을 요구해도 빨리 안 가져다준다더라. 부동산 자료, 장학회 자료 등을 다 내라 했는데 일부 낸 것도 대충 낸 것도 있다. 실컷 있다가 목록만 갖다 주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강 대표 발언의 취지는 ‘대선 후보들이 자료 제출에 제대로 응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었으나 이는 결국 한나라당의 후보검증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발언이었다.
그동안 이명박, 박근혜 두 주자들은 검증위원회에 대해 서로 다른 평가를 해왔다. 이 전 시장 측은 ‘검증은 검증위를 믿고 맡기자’고 얘기해 왔고 박 전 대표 측은 ‘검증위원회에서 못 하는 것들을 언론에서 다 하지 않느냐’며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박 전 대표의 입장에선 후보청문회를 통해 이 전 시장 검증에 사활을 걸 가능성이 크다.
범여권으로서는 한나라당 두 주자 간의 싸움이 즐겁기만 할 것이다. 이들이 각종 의혹으로 만신창이가 돼 본선에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한나라당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후보 간 갈등’이다. 경선을 앞두고 내우외환이 한꺼번에 몰아친 한나라당에게 12월 대선은 너무 멀어 보이는지도 모른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