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입학 특혜 의혹 “금메달 딴 학생 뽑으라”
정 씨의 특례입학 의혹은 지난달 열린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시작됐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 씨의 딸이 체육특기자로 입학한 2015학년도에 때마침 입학 종목이 11개에서 23개로 확대됐고, 추가 종목에서 합격한 사람은 정 씨 한 명에 불과하다. 최순실 씨 딸을 입학시키기 위해 종목을 확대한 것 아니냐”며 특혜 입학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에 이화여대 측은 “2013년 7월에 발행한 2014학년도 신입생 수시모집 요강에 미리 공지했으며, 2015학년도 대학입학전형계획은 2013년 11월에 확정됐다”고 해명했으나 이후에도 의혹은 지속됐다.
정 씨가 지원한 2014년 9월 수시전형 지원자격은 ‘최근 3년 이내 국제 또는 전국 규모 대회의 개인종목 3위 이내 입상자’이지만 원서마감일 이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따낸 마장마술 단체전 금메달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정 씨는 면접 당일 국가대표 단복을 입고 메달을 지참했다.
지난 13일 이화여대 교수협의회 홈페이지에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게시글도 올라왔다. 체대 입시평가에 참여했던 일원이라고 밝힌 한 교수가 “체대 평가장 입실 전 평가자들에게 금메달을 가져온 학생을 뽑으라고 한 것이 사실”이라는 내용의 글을 게재한 것이다.
이화여대 교수협의회 홈페이지에 게재된 교수의 증언. 현재 해당 게시물은 삭제된 상태다.
이런 의혹에 대해 송덕수 이화여대 부총장은 ‘CBS’와의 인터뷰에서 “정유라 양의 아시안게임 성적은 서류평가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금메달을 딴 학생에게 점수를 줘라 또는 합격시켜라 이런 얘기를 한 적은 전혀 없다. 특기자 전형의 취지가 자질, 역량, 성장 잠재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게 돼 있어 당시 입학처장이 ‘그런 점을 고려해 평가해라. 어떻게 하는지는 면접위원이 자율적으로 결정해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2014년 당시 입학처장이었던 남궁곤 교수는 정 씨가 수시 지원한 사실을 총장에게 보고한 바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정윤회 씨의 딸인 것이 알려지며 ‘승마귀족’ 등으로 유명세를 치렀기에 보고했고, 당시 최 총장은 정윤회가 누군지도 몰랐다”며 “원래대로 전형을 진행했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이에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체육특기자 입학 가능 종목 확대가 시행된 것과 최순실의 딸이 원서를 접수하자 입학처장이 총장에게 박근혜-최순실-정윤회의 구도를 그리며 설명한 것, 입학처장이 ‘금메달을 한 사람 뽑으라’ 지시한 것 등 입학 과정에서의 부정이 확실해졌다”고 비판했다.
#출석 없이 학점 인정…기한 늦은 레포트에 “망할 XX” 써도 친절한 교수
특례입학 의혹 이후에는 학점 특혜 의혹이 이어졌다. 정 씨가 수업을 참여하지 않고 부실한 레포트를 제출했음에도 B학점 이상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 6월 신설된 학칙이 정 씨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의혹이 제기된 개정 학칙은 ‘국제대회, 연수, 훈련, 교육실습 등의 참가 시 증빙서류를 제출하면 출석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해당 학칙은 2016년 6월 16일에 신설됐으나 3월 1일자로 시행하는 것을 부칙으로 정해 소급적용됐다.
학칙이 개정된 뒤 정 씨의 평점은 1학년 1학기 0.11에서 지난 1학기 2.27로, 여름방학 계절학기에서는 3.30으로 수직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화여대 측은 “이번 학칙개정은 유연한 학사운영을 필요로 하는 많은 학생의 입장을 배려하여 이뤄졌으며 특정인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교수협의회 측은 “해당 학생은 앞으로도 출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학사학위를 취득해 졸업할 수 있는지, 학교는 어떤 취지에서 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학적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과정을 개발해 실시하는 것인지 밝혀 주길 바란다”며 총장 및 대학 당국에 해명을 요구했다.
정 씨가 들었던 여름 계절학기 수업과 출석을 대체하기 위해 제출한 레포트도 의혹의 불씨가 됐다. 정 씨는 특히 의류산업학과 수업을 많이 수강했는데, 그 가운데 2016 여름 계절학기인 ‘글로벌 융합 문화체험 및 디자인 연구’ 수업이 문제시됐다. 수강생들이 정 씨를 거의 보지 못했다는 증언이 있었으나 2/3의 출석률이 인정된 것이다.
학교 측은 “담당교수 확인결과, 해당 학생이 패션쇼를 참관했고 자료 제출을 완료했다. 특별한 혜택을 지시한 바 없다”고 해명했으나 당시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의 단체 채팅방이 알려지며 특별대우를 한 정황이 드러났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카카오톡 채팅방에는 패션쇼 참석을 위한 항공권 등 비용과 관련해 “정유라 씨는 교수님이 따로 공지하신다고 합니다”라고 통보한 대화내용이 담겨있었다.
정 씨가 수강한 다른 수업에서도 같은 문제가 지적됐다. 지난 16일에는 이화여대 건물에 ‘정유라 씨와 같은 컬러플래닝과 디자인분반에 있었던 학생입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에서 학생은 “정유라는 어떻게 수업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고 최소 B 이상을 챙겨갈 수 있나요? 교수님께서 정유라 씨의 출석을 계속 부르셨고, 나중에는 자동 F에 이를 정도의 결석횟수가 차서 ‘얘는 이미 F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사진 =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이 사퇴를 발표한 19일 오후 이화여대 교수들과 학생들이 서울 이화여대 본관 앞에서 학생들의 안전과 각종 비리를 척결하자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정 씨가 체육과학부 교수에게 이메일로 제출해 B학점 이상을 받았다는 레포트 또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제출기간을 훌쩍 넘긴 과제물 이메일에 “네, 잘하셨어요”라고 칭찬했던 교수가 레포트 파일이 첨부되어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앗! 첨부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메일을 보냈다.
정 씨가 보낸 레포트는 오탈자가 난무하고 띄어쓰기와 맞춤법이 틀리는 등 대학생의 과제로는 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대부분 인터넷 검색 결과를 복사해 붙여넣은 것이며, “해도해도 않되는 망할 새끼들에게 쓰는 수법. 왠만하면 비추함” “마음속에 메트로놈 하나 놓고 달그닥, 훅 하면된다” 등의 저속한 표현이 담겨 있어 학점 특혜 논란을 부추겼다.
한편, 최 총장의 불명예 사퇴로 이대 내홍 사태는 봉합 수순에 들어갔으나 사실상 ‘꼬리 자르기’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교수협의회 측은 19일 열린 시위에서 “박근혜 정권의 가장 추악한 부분과 결탁한 최 총장은 사퇴했으나 비리 의혹은 여전히 남아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박근혜 정권과 최 총장을 바라볼 것”이라고 규탄했다. 같은날 고연호 국민의당 대변인도 “문제의 본질은 청와대와 최순실에게 있다. 국민의당은 최순실 게이트와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사실을 규명하기 위해 당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최순실 모녀를 둘러싼 갖가지 의혹이 증폭되자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은 한 달여 만에 입을 열었다. 20일 박 대통령은 “요즘 각종 의혹이 확산하는 것은 우리가 처한 위기를 가중할 수 있다. 어느 누구라도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받을 것”이라며 직접 진화에 나섰다. 다만 최 씨 모녀 의혹에 대해서는 “도를 지나친 인신공격성 논란”이라고 반박하며 이화여대 학사부정 문제는 언급하지 않아 불씨를 남겨놨다.
과연 재단법인 미르·K스포츠에서 시작돼 이화여대와 정치권까지 번진 ‘최순실 모녀’ 파문이 박 대통령의 진화로 사그라들지 아니면 박 대통령과 현 정권을 옥죄는 뇌관으로 더욱 확전될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공주승마’ 의혹…‘수첩경질’부터 ‘올림픽 로드맵’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 ⓒ연합뉴스 정 씨가 2013년 4월 경북 상주에서 열린 전국승마대회 겸 국가대표선발전에 출전해 2위로 준우승을 하자 판정시비가 일었고, 대대적인 경찰 조사가 진행됐다. 대회 한 달 뒤에는 청와대에서 승마협회를 감사하는 지시를 내렸고, 두 달 뒤 문화체육관광부는 감사결과 보고서를 올렸다. 보고서에는 ‘협회도 문제가 있으나 정윤회 측도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유진룡 문체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수첩을 꺼내들었다. 박 대통령이 보고서를 작성한 두 인사를 지명해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말한 뒤 두 인사는 한직으로 좌천됐다. 잊히는 듯했던 ‘수첩경질’ 의혹은 최근 노태강 전 체육국장과 진재수 전 체육정책과장이 잇따라 공직에서 물러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다시금 불거졌다. 지난 7월 잇따라 명예퇴직한 노 전 국장과 진 전 과장이 사실상 ‘강제 사퇴’했다는 것이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 장식 미술전 관련 보고를 받던 박 대통령이 노 전 체육국장의 이름을 보고 “이 사람들이 아직도 있어요?”라고 발언한 뒤 두 인사는 사퇴를 강요받았다. 노 전 국장은 사퇴요구가 ‘장관 윗선’의 뜻이라는 말을 듣고 “함께 일한 부하들은 더 이상 괴롭히지 말아달라”며 퇴직한 것으로 전해진다. ‘공주승마’ 의혹에 기름을 부은 것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대한승마협회의 ‘2020올림픽 중장기 로드맵’이다. 승마협회가 수립했다가 철회한 것으로 알려진 도쿄올림픽 로드맵이 정 씨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삼성이 정 씨를 전폭 지원하는 가운데, 삼성전자의 임원이 회장직을 맡은 승마협회 역시 정 씨를 지원하기 위해 600억대의 중장기 로드맵을 세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승마협회는 지난해 선수를 선발해 2016년 1월부터 2020년 7월까지 독일 전지훈련 캠프에 장기간 상주하는 방식으로 훈련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정 씨가 지난해 10월부터 독일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럽의 승마전문지 <유로드레사지>(Eurodressage)의 지난 2월 보도 또한 의혹을 부추긴다. 스페인의 유명 기수인 모르간 바르반콘이 자신의 말 ‘비타나V’를 한국의 ‘삼성팀’에 팔았다며 “한국의 정유라가 탈 예정이며 삼성이 독일에 승마장을 마련해 정 씨를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의혹에 대해 승마협회 측은 “로드맵에 따라 해외 훈련에 지원된 돈은 전혀 없다. 정 씨는 개인 자격으로 훈련을 떠난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현재 <유로드레사지> 홈페이지의 해당 기사는 삼성과 관련한 내용은 삭제되고 “한국의 송하경이 승마장을 샀다”고 수정돼 또 다른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송하경 모나미 사장은 “되팔 목적으로 산 것”이라고 밝혔으나, 송 사장이 승마장 계약을 체결하기 직전 삼성이 모나미와 99억 원대의 계약을 체결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모나미가 일감을 받는 대가로 승마장을 인수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