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원 직원이 이명박 후보의 부동산 정보를 열람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권 차원의 선거 개입에 대한 논쟁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외 각료들의 모습. | ||
현재 정부와 친노그룹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야당 대선 주자들에 대한 공세의 흐름은 ‘투 트랙’(Two Track)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분석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반도 대운하를 공개 비판하며 정치 중립 위반 시비를 불러온 이래 총리실 국정원 검찰 등 정부의 각종 권력기관이 중립 위반 시비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사건들을 쏟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친노그룹을 중심으로 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이 전 시장의 위장 전입 의혹을 제기한 것도 이들이 정부와 고급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기관의 움직임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선을 불과 6개월여 앞둔 지금, 정치권에 일고 있는 2007년판 ‘신 관권선거’ 논란을 추적해 봤다.
한나라당의 한 인사는 얼마 전 “현재의 관권선거 징후는 ‘투 트랙’으로 나타나고 있다. 청와대 총리실에 이어 국정원 검찰 등 정부기관이 전방위적으로 이 전 시장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면 ‘여당’인 열린우리당이나 그 외곽조직에서 그것을 바탕으로 이 전 시장에 대한 의혹을 계속 제기하고 있다. 정부기관과 여당의 양동작전은 청와대나 여권 핵심의 조직적 컨트롤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야당후보에 대한 여권의 총공세는 김영삼-김대중 정권 때의 관권선거 책략보다 훨씬 정밀하고 간접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다못해 시장에 당선되어도 재선을 위해 ‘비밀팀’을 가동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대통령 선거는 오죽하겠는가”라며 분통을 터뜨린 바 있다.
‘신 관권선거’라는 비난은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시발이 됐다. 그는 한 달 전 한 공개석상에서 작심한 듯 이 전 시장을 겨냥해 ‘한나라당 집권은 끔찍한 일이다’, ‘한반도 대운하에 투자할 민간기업 어디 있나’는 등의 발언을 쏟아내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경고까지 받은 바 있다. 노 대통령의 이러한 작심한 듯한 발언들이 정부기관들로 하여금 거침없이 그 뒤를 따르게 하고 있는 것으로 한나라당은 보고 있다.
우선 막강한 잠재 파워를 갖고 있는 정보기관인 국정원의 선거 개입 논란이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명박 캠프의 실질적 좌장인 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국정원이 2005년 3~9월 이명박 X파일을 작성한 의혹이 있다. 특정지역 책임자인 L 씨가 업무를 인수인계하면서 X파일 관리를 잘하라고도 했다”고 언급해 큰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국정원이 2년 전 이 전 시장을 조사하는 태스크포스팀을 운영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파문은 쉽게 가라앉기 힘들 전망이다. 이 팀은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 공사 완공(2005년 10월 1일)을 전후해 당시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이 주도해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이재오 최고위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한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국정원 소속 직원 K 씨가 행자부 전산망에 접속해 이 전 시장의 처남 김재정 씨의 부동산 거래내역에 접근한 사실도 확인됐다. 국정원은 K 씨가 속한 팀은 기획부동산의 투기 동향과 공직자 투기 실태 보고 업무를 맡았던 ‘부패척결 TF팀’이었을 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전 시장 측은 “국정원의 TF팀이 이 후보와 이 후보 친인척의 부동산 관련 등 정부 자료를 100차례 이상 조회했다는 믿을 만한 제보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국정원(사진)이 2년 전 이명박 전 시장에 대해 조사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관권선거 논란이 더 커지고 있다. | ||
국정원이 X파일 존재 여부로 곤욕을 치르는 동안 검찰은 이 전 시장의 부동산 의혹 등에 관한 고소 고발 건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해 자칫하면 정치적 ‘중립’을 의심받을 수도 있는 상황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검찰 출입기자들 사이에선 정상명 검찰총장의 ‘마음’이 변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대선과 관련) 검찰이 바빠서도 안 되고 그러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힌 정 총장은 이 전 시장의 부동산과 관련한 고소 고발 사건이 들어오자 이례적으로 선거문제를 다루는 공안부가 아닌 특수부에 배당하고 고소 취하 여부와 상관없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검찰이 청와대의 이 전 시장에 대한 시각을 그대로 이어받아 강경 수사를 하는 것 아니냐”며 수사 지속 배경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총리실까지 대선 정국에 개입한 듯한 모양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7월 11일 ‘공직기강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대선 공약 검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 부처 산하의 국책연구소가 대선 주자의 공약을 검증하는 관련 보고서를 대량 생산하도록 국무위원들이 독려하라는 주문이었다. 정부의 국책 연구소들이 야당 주자들의 공약을 곱게 봐줄 리 만무하며 조그만 단점도 없는 공약이 존재할 수 있겠냐며 한나라당은 반발하고 있다.
정부 기관의 이러한 움직임과 함께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도 이명박 전 시장 관련 각종 의혹을 조직적으로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 이 전 시장 측의 시각이다. 국정원 등 정부기관이 이 전 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 등을 담당하고 있다면 ‘여당’에서는 그 정보를 받아 정치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여권 인사들이 고급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기관과 함께 관권선거를 벌이고 있다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며 실제로 일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자는 지난해 1월경부터 여당이 한나라당의 빅2에 대한 광범위한 자료 수집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여당의 한 관계자로부터 직접 들은 바 있다. 그는 당시 “당 외곽조직 중 하나인 모 기관이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X파일을 수집하고 있는데 그 분량이 엄청나다고 들었다. 특히 이 전 시장에 대한 비리가 많아 그것이 모두 터질 경우 그는 한방에 날아갈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해찬 전 총리나 김혁규 의원도 최근 공식 비공식 자리에서 이와 비슷한 발언을 했던 적이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난 2005년 3월경부터 국정원을 중심으로 이명박 X파일 등의 1차 기초 자료 수집을 시작했고 여권도 몇 개월 뒤인 2006년 1월부터 야당의 대선 주자에 대한 자료를 집중적으로 수집한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여권 인사들이 무슨 007작전처럼 정부로부터 고급 정보를 받는 게 아니다. 그들은 정부 인사들과 동문회, 지인들과 만남 등에서 자연스럽게 만나 정보를 교환한다. 내가 알고 있는 여권 인사들도 보면 국정원 보고서를 주기적으로 보는 것을 자랑처럼 이야기하고 다닌다. 정치적 센스가 있는 의원이라면 고급 정보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인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모든 상황들은 여권 핵심과의 교감 아래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