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민주당 박상천 김한길 공동대표 | ||
그런 가운데 통합민주당의 사정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박상천 대표를 중심으로 당대당 통합에 반대하는 세력이 만만치 않은 가운데 김효석 이낙연 의원 등 통합민주당 대통합파는 탈당을 예고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의중도 무조건적인 대통합 편이다. 그런 가운데 대통합신당 세력은 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인제 의원과 추미애·김영환 전 의원 등까지도 ‘범여권 대선주자 확대연석회의’에 끌어들이기 위한 ‘별동대’까지 구성한 것으로 확인돼 통합민주당을 뒤흔들고 있다. 통합민주당 압박이 점점 거세지고 있는 형국이다.
대통합신당 창당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일 범여권 대선주자인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손학규 전 경기지사,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김혁규·천정배 의원 등이 처음으로 대선주자 6인 연석회의를 개최하면서였다는 게 범여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열린우리당 탈당그룹 ‘대통합추진모임’ 소속 중진의원은 “지난 6월 ‘문·근·영’(문희상·김근태·정동영)의 두 차례 회동과 ‘기·대(김원기·정대철) 문·근·영’ 만남을 통해 범여권의 대통합 원칙을 합의했던 게 대통합신당 창당 논의에 불씨를 지폈다. 그리고 6월말 시민사회운동단체 원로들과 열린우리당 탈당파가 국민경선추진협의회(국경추)를 결성하면서 탄력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대선주자 6인 연석회의가 열린 이후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한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 등은 자신들이 배제된 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러자 국경추에서는 범여권의 대선 예비주자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연석회의를 추진하기로 했다. 여기서 범여권 예비주자 확대연석회의에 통합민주당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이인제 의원과 추미애·김영환 전 의원 등도 합류시켜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하게 됐다. 범여권 대통합의 한 축인 통합민주당 후보들을 배제해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에 국경추는 지난 9일 지역본부장단 회의를 갖고 예비후보자 연석회의와 관련해 통합민주당 3명의 후보를 비공개로 접촉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3개 팀으로 나눠 3명의 예비후보를 접촉한다는 구체적 방안까지 마련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국경추는 이런 계획에 따라 이미 세 명의 예비후보를 접촉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경추의 한 핵심 인사는 “세 명의 민주당 후보들을 접촉했는데, 연석회의 참석 여부에 대해선 확답을 받지는 못했다”며 “김영환 전 의원은 ‘민주당 경선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인제 의원은 ‘연석회의 참석은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추미애 전 의원은 ‘당과 협의를 해 봐야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세 후보 모두가 연석회의 참석 여부에 대해 즉답을 피하면서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는 게 이 인사의 전언. 그러면서 이 인사는 “민주당 후보들이 연석회의 참석에 대해선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대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데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고 덧붙였다. 대통합추진모임 소속 한 재선 의원은 “열린우리당 탈당파와 민주당 대통합파, 시민사회세력인 미래창조연대, 손학규 전 지사의 지지조직인 선진평화연대 등이 함께 대통합신당을 만들고, 이후에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등이 합류하게 되면 통합민주당 주자들도 대통합 흐름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이들의 속셈은 세 주자를 합류시킴으로써 통합민주당내 대통합 반대론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이다. 이들의 속셈대로 대선 주자마저 대통합에 참여할 경우 대통합파의 탈당이 기정사실화돼 있는 통합민주당으로서는 껍데기만 남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렇잖아도 통합민주당 내 사정은 사면초가다. 현재까지 박상천 대표를 위시한 통합민주당 지도부는 당대당 통합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대통합신당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으나 당 안팎에서 일고 있는 대통합 요구는 갈수록 강도를 더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통합민주당 김효석 이낙연 의원 등과 박준영 전남지사, 박광태 광주시장 등 대통합파 8인은 당 지도부에 범여권대통합 동참을 강하게 요구하며 탈당 의사를 밝히고 있다. 박준영 지사는 대통합이 안 되면 통합민주당을 탈당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박 지사는 지난 19일 “지금은 탈당이 중요한 게 아니라 대통합이 우선이다. 하지만 안 될 경우에는 탈당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박광태 시장 역시 같은 날 “박준영 지사와 함께 (대통합) 신당이 창당되는 마지막까지 박상천 김한길 공동대표를 설득해 대통합에 합류하도록 설득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 지사와 박 시장의 이날 발언은 사전에 논의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지역 광역단체장들도 지도부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형세다. 이보다 앞선 지난 7일에는 민주당 범민주세력대통합추진위원회 소속 91명도 “(통합민주당은) 기득권을 버리고 대통합의 대도에 합류하라”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엄대우 씨 등 구(舊) 민주당 원외 지역위원장 55명도 지난 19일 대통합신당에 참여하기 위해 탈당한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DJ)도 한나라당과 맞서기 위한 대통합을 계속 강조해 왔다. DJ는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민주당 전직 의원들 모임인 ‘이목회’ 소속 의원들과 합석한 자리에서도 “국민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면서 “잘못한 게 있으면 얘기하고 빨리 서로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DJ의 복심이라고 해야 할 김홍업 의원 역시 일정 시점이 되면 제3지대 신당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높아지면서 박 대표는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이후 대통합 신당 추진에 적극 나서고 있는 한 중진은 “대통합 신당을 (김홍업 의원이) 전면에 나서 주도하기는 어렵겠지만, 화룡점정 역할은 해 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범여권 대통합이 가속화되고 있는 속에서 통합민주당 내 세 명의 대선주자들에 대한 국경추의 접근은 통합민주당으로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지금 ‘대통합추진모임’은 오는 24일에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하기로 했으며 다음달 5일에는 창당대회를 갖는다는 로드맵이다. 국경추는 지난 1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손학규 전 경기지사,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무소속 천정배 의원, 우리당 김혁규 의원,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 등 범여권 예비대선주자들이 오는 9월 15일부터 약 한달 간 전국순회 국민경선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일사천리는 아니다. ‘대통합추진모임’은 지난 19일 미래창조연대, 선진평화연대, 통합민주당의 대통합파 등과 함께 오찬 회동을 가지려 했다. 하지만 미래창조연대가 창당준비위원회의 지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날 불참을 통보했다. 역시 지분 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미래창조연대의 불참으로 4개 단체 대표들의 오찬회동이 불발로 끝난 직후 대통합추진모임의 핵심인사는 “시민단체에서 50 대 50의 지분을 요구하고 있는 문제로 4개 단체 대표들의 오늘 오찬이 연기되긴 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주거나 받거니 하는 핑퐁게임이라고 보면 된다”며 “시민단체 사람들(미래창조연대)은 자력으로 창당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지분문제는 대통합신당으로 가는 데 큰 걸림돌이 아니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대통합신당 창당까지 다소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큰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대선주자들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단숨에 풀린다거나 단순히 대선만을 위한 창당이 얼마나 갈 것이냐는 의구심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런 큰 대세 앞에서 통합민주당은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의 변수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로 열린우리당’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도, 그리고 호남이라는 기반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통합민주당의 존재를 아예 무시할 수는 없는 실정이며 따라서 범여권의 통합민주당 무력화 작업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한나라당 경선이 반환점을 돈 가운데 범여권도 조만간 통합민주당까지도 포용한 그럴듯한 모양새의 대선구도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병일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