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바드 대사는 이번 사건에 대한 자신의 심경이 담긴 회견문을 낭독하던 도중 “오늘 아침 부시 대통령이 나에게 여중생 가족들과 한국 정부, 그리고 한국 국민에게 사과의 뜻을 전달할 것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내왔다”면서 부시의 간접사과문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대목은 허바드 대사의 회견문에서 잠깐 나오는 짧은 ‘대사’였다.
“슬픔과 유감을 표명하고…”
허바드 대사는 “부시 대통령은 ‘이번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슬픔과 유감을 표명하고, 이 같은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한국과 긴밀히 협력할 것’을 밝혔다”고 전했다.
이런 갑작스런 부시 대통령의 사과 메시지에 대해 일부에서는 간접적이긴 하지만 미국 대통령의 ‘천금같은 외교적 언사’로 사과를 받아냈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1995년 오키나와에서 미군에 의한 일본 여학생 성폭행사건 발생했을 때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직접 사과한 것이나 사건 발생 후 5개월이나 지난 뒤에야 유감을 표시한 점을 생각해본다면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 부시 미국 대통령의 간접사과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월 방한한 부시 대통령이 오산공군기지 미군장병들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 | ||
미국 대사관 드 구즈만 부대변인은 이에 대해 “대통령이 대사와 나누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전화 팩스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전보통신문으로 보낸 것이다. 여러 가지 통신 채널이 있는데 이번처럼 전보통신문으로 보내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좀더 공식적인 외교적 메시지를 전하는 데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중요한 건 사과한 것”
긍정론도 하지만 사과의 표현 수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미국측은 사과(apology)라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실제 부시의 메시지에는 사과라는 말은 없고 유감(regret)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에 대해 대사관측은 “유감(regret)이라는 말은 곧 사과를 뜻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말로는 사과한다고 했지만 실제 표현은 ‘유감’이라는 단어를 써 사과의 수준을 낮췄다는 해석도 있다.
또 하나의 논란거리는 부시 대통령이 이번 사건에 대해 직접 사과한 것이 아니라 주한 미국 대사에 메시지를 긴급히 보내 간접사과 형식을 취했다는 점.
이에 대해 공로명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사과의 형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정중한 것은 외교 문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것이다. 그밖에 사과 당사자가 피해 당사자 수반에게 직접 사과를 표명하거나 언론에 공개 사과를 하는 것 등의 방법도 있다. 그런데 사과 방법만 놓고 보면 이번 부시의 사과가 ‘최고의 예우’를 갖춘 사과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 전 장관은 “사과의 방법과 격식을 너무 어렵게 생각해서도 곤란하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대통령이 사과를 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며 사과방법에 대한 지나친 해석을 경계하기도 했다.
그러면 공 전 장관이 밝힌 대로 부시 대통령이 메시지를 허바드 주한 미국 대사에게 보냈다면 이것이 한국 정부에게도 전달됐을까. 만약 그렇다면 공식 외교문서로 보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훨씬 사과 수준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정부에 보냈을 것이다?
<일요신문>은 부시 대통령이 허바드 대사에게 보낸 ‘전문’ 공개를 미국 대사관에 정식으로 요청했다. 하지만 드 구즈만 부대변인은 “아직 ‘전문’이 있는지는 확인중이다. 만약 있다면 한국정부에도 보냈을 것이다”라고 다소 애매한 답변을 했다.
이와 관련해 외교통상부측은 “미국으로부터 여중생 사망 사건과 관련한 어떤 외교적인 사과문서도 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미국은 사과의 뜻이 담긴 공식 외교문서를 한국정부에 보낸 것이 아니라 부시의 간접적인 사과표명으로 이번 사건을 매듭지은 것이다.
한편 정부는 이번 사건의 미묘한 성격을 의식한 듯 공식성명을 내지 않았으며 외교부 당국자의 ‘코멘트’ 형식을 통해 미국측의 사과에 대해 “긍정적”이라는 견해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