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4일 평양 방문을 마치고 귀환한 노무현 대통령이 도라산남북출입사무소에서 정상회담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현재로서는 국민적 성숙도와 경제 이슈에 묻혀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일부 정치 전문가들은 “남북 평화 선언의 국회 비준을 놓고 여야가 대립을 할 것이 예상되고, 11월에 각종 남북 회담이 열리는 것 자체가 ‘북풍’이 이번 대선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북풍’과 대선의 이차방정식을 풀어본다.
“간이 안 맞아. 그것이 문제야.”
지난 10월 4일 이용득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위원장이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내뱉은 말이다. 물론 음식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의 대선 구도가 이명박 후보의 독주 체제로 굳어지면서 너무 ‘싱겁게’ 판이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음식 간에 빗대 한 말이다. 사실 이번 대선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일방적으로 리드하면서 선거 정국의 긴장감마저 떨어뜨리고 있고 국민적 관심도 아직까지는 낮은 편이다.
하지만 그런 무미건조한 선거 정국에 짠 소금 역할을 할 소재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바로 남북정상회담. 사실 이 소재는 식상한 감이 없지 않다. 지난해부터 이미 정치권에선 노무현 정권이 낮은 지지율 회복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과 경제 이슈가 결국 평화 이슈를 묻을 것이라는 ‘한나라당적 시각’이 대세를 이루면서 큰 반향이 일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남북 간에 합의된 사안과 그 로드맵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정상회담과 그에 따른 평화 이슈가 무덤덤한 대선 판에 ‘짠 소금’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분석도 점점 세를 얻는 분위기다.
먼저 정상회담 자체로는 대선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부터 살펴보자. 2000년 첫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를 7년여간 바라본 국민들의 의식이 이미 성숙해 있기 때문에 ‘말초적인’ 자극에 덜 민감할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의 ‘진정성’도 작용하고 있다. 그는 이번 회담을 대선 영향력 차원이 아닌 ‘한반도평화와 동북아 질서의 구조적 변화라는 큰 틀’에서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 노 대통령은 10월 4일 귀국 보고회에서 “특정정당이나 후보에게 불리할 것도, 유리할 것도 없다고 본다. 후보의 전략 자체가 유·불리를 가르는 것이지 이 합의가 누구에게 유·불리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정상회담에 따른 ‘평화’ 이슈가 지속적으로 국민적 관심을 얻게 되겠지만 그것 자체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선점하고 있는 ‘경제’ 이슈를 넘어서는 동력으로 작용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정치권의 한 컨설턴트는 이에 대해 “현재 많은 국민들이 ‘경제’는 당장의 먹고 사는 문제이자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는 반면 ‘평화’는 미래의 문제이자 모두의 문제로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두 이슈의 중요성이 뒤바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게 등장한다. 먼저 이번 남북 평화 선언 자체가 가지는 대선 영향력은 떨어지지만 정부와 북한 간에 이루어질 후속조치의 이행 여부에 따라 평화 이슈가 대선 직전까지 화약고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명한 10개항의 선언문에 대한 남북 간의 조속한 합의 이행을 위해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는 절차를 거칠 계획이다.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회 비준동의를 거치면 남북정상선언은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가지게 된다. 이는 노무현 정권이 “남북 관계는 정권의 교체와 상관없이 연속성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는 논리 아래 강력하게 추진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특히 한나라당은 범 여권의 ‘의도’에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네 가지 공격 전략을 마련해놓고 있다. 먼저 이번 선언이 경협을 위장한 퍼주기라는 것이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 회의에서 “대한민국이 얻은 것은 추상적 선언 몇 개에 불과한데, 북한에는 경협을 위장해 엄청나게 많은 퍼주기를 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경협 지원에만 30조 5000억 원이 들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경제적 실익을 따져 물을 계획이다. 또 공동어로수역 설정으로 서해 북방한계선을 사실상 무력화시킨 것은 헌법의 영토부분을 포기한 것이라는 점도 부각시키고 있다. 이는 국민들의 영토에 대한 ‘본능적인 의식’을 자극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북핵 폐기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지 않은 것과 정부가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 북한 강제수용소 폐쇄 등의 강하게 요구하지 않은 점은 또 다른 저자세 외교라고 공격할 예정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으로서는 국회 비준 과정에서 자신들의 비판이 ‘과잉 생산’될 경우 ‘반 평화 세력’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고, 그것은 곧 범 여권을 도와주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염려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개혁 성향 의원들은 “‘남북관계 정상화 및 한반도 평화정착’ 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좀 더 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는 지적을 많이 하고 있다. 그래서 무조건 발목잡기 식의 비판은 오히려 수구세력이라는 부메랑을 맞을 것이라는 인식도 하고 있다.
하지만 범 여권 내에서도 대선 판세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는 평가가 없지 않고, 학계와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신당 경선이 혼탁과 비방전으로 얼룩지면서 남북정상 선언의 후광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한나라당이 정상회담 인준 과정에서 무리수를 두며 실수를 하더라도 현재로선 그 카운트파트인 신당이 그 반사이익을 거두기에는 너무 지리멸렬해 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그런데 남북 평화 선언 이행 여부와 함께 대선 한달 전 ‘남북 회담 릴레이’가 열리는 것도 선거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우선 11월 서울에서 개최키로 합의한 남북 총리회담은 남북공동선언의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2007 남북정상회담’의 연장선상에서 마련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역시 11월에 평양에서 열기로 한 국방장관 회담은 양측이 원칙적으로 확인한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에 대한 추가 논의를 위해 일정이 잡혔다.
그런데 정치권에선 “남북정상회담에 이은 남북회담 잇단 개최가 대선을 불과 한 달여 앞둔 정치권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퇴임을 불과 몇 달 앞둔 노 대통령이 대선 전에 모종의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잇따라 무리하게 남북회담을 개최하려 한다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은 정상회담과 대선의 관련성에 대해 “범 여권은 이번 정상회담을 대선에 이용하려고 피나는 노력을 하겠지만 그러기엔 내용이 너무 부실해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하지만 “종전 선언을 위한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과 관련, 입영을 앞둔 당사자나 부모들의 표심을 자극하기 위한 모병제 공약 등이 나온다면 대선판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마음을 놓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