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순형 의원(왼쪽), 이인제 의원 | ||
조 의원은 지난달 30일 이 의원 측의 동원·금권 선거 의혹과 이에 대한 중앙당의 시정조치를 요구하며 선거운동 전면중단을 선언했으나 중앙당이 현재까지 만족할 만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고 판단, 6일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조 의원은 “현재 민주당 경선은 평소 나의 원칙과 소신에 맞지 않다. 이런 경선에 참여해 내가 설령 후보가 된들 정통성이 있겠는가”라며 “중대한 사태가 발생했음에도 당이 시정조치를 안한다고 하면 차라리 내가 조용히 물러나는 게 정답인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의원 캠프의 장전형 대변인은 “금권·동원 선거의 증거를 가지고 있다”며 “선관위가 경북 경선을 무효화시키지 않는다면 검찰에 고소조치를 취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조 의원 측의 주장에 민주당의 다른 후보들도 동조하는 분위기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지난 3일 열렸던 제주 경선에서는 모든 후보가 참석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후보들 간의 논의 결과 ‘마지막으로 한번 뚜껑이라도 열어보고 결정하자’는 의견이 있어 결국 조 의원과 장상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은 참석했다”고 전했다.
결국 민주당 경선은 손가락 하나만 잘못 까딱해도 모든 후보가 ‘선거 불참’을 선언할 수도 있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당내 선관위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현재 민주당에서는 내부적으로 ‘박상천 사퇴론’까지 제기되고 있을 만큼 심각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선관위에서는 지난 4일 오전 10시경부터 후보들이 제기한 문제를 가지고 밤늦게까지 회의를 거쳤지만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다음날인 5일에도 최고위원회 회의를 여는 등 ‘경선 부정 의혹’ 문제들을 놓고 계속해서 대책 마련에 고심을 해 왔지만 결국 이렇다할 방안도 내놓지 못한 채 경선을 그대로 진행시키는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결국 당 지도부의 미온적인 대처가 조 의원의 경선 포기를 가져온 셈이며 여타 후보들의 반발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조 의원이 ‘후보 사퇴’까지 결심하며 금권·동원 선거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 의원 캠프에서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바로 ‘이인제 후보가 인천·전북 경선에서 금권 및 동원 선거를 벌였다’는 내용으로 이뤄진 총 10여 건에 달하는 휴대폰 녹취록이다. 이는 조 의원의 캠프 관계자가 자신의 휴대폰으로 통화내용들을 녹음한 것들이다.
조 의원 측에서는 이 녹취록을 근거로 ‘A 협회의 K 회장이 이 의원 측의 조직 동원 선거에 깊숙이 관련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A 협회는 지난 9월 초 인천 R 호텔에서 발대식을 올렸다. 이 발대식에서 정치인 중 유일하게 이 의원이 공식적으로 참석해 ‘발대식 격려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 의원 측에서는 이날 A 협회가 사용한 1300여만 원에 이르는 식대를 이 후보 측에서 제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증거로 조 의원 측이 제시한 것은 한 여성과의 통화내용이다.
“(이인제 후보가) A 협회에서 표를 몰아주면 대통령에 당선된 후 협회사무실 만들어주고 여직원 1명까지 해서 총 3명의 급여를 2년 동안 대주겠다고 했다. 훗날 단체 지원도 약속했고 당시 돈도 오갔다는 것으로 들었다.”
“2억~3억 정도 건네줬다고 들었다. 인천 R 호텔에서 당시 행사 식대인 1300여만 원도 이인제 측에서 지불했다. 당시 참석자들은 다 공짜로 밥을 먹었다…당시 모임 주최자인 K 회장도 ‘이인제가 밥값을 냈다’고 순순히 자백했다.”
하지만 당시 행사를 담당했던 R 호텔 직원에게 문의한 결과 당시 식대는 제보 전화처럼 수표로 계산된 것이 아니라 계좌를 통해 입금됐다고 한다. 또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인천지부가 지난 20일부터 이 사건 조사에 착수한 결과 계좌에 식대를 입금한 인물은 A 협회의 이사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조 의원 측에서는 입금인의 성명이 A 협회 관계자라고 하더라도 돈을 이 후보 측으로부터 건네받아 입금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녹취 내용은 이 의원 측에서 동원선거를 했다는 주장과 관련된 것들이다. 지난 27일 민주당 전북 경선 당일 오전에 녹음된 것으로 보이는 통화는 조 의원 측 관계자가 A 협회 K 회장에게 동원을 부탁받은 사람인 것처럼 위장해서 K 회장을 돕고 있다고 알려진 C 씨와 나눈 대화다.
―여보세요. C 씨 되십니까? 저는 김OO 입니다.
“아 예…. 죄송하지만 누구신지 잘 모르겠는데…”
―K 회장님 소개로 전화 드렸습니다. 80장(80명) 가지고 있는데 그거 누구였죠? 이인제 씨인가…그분 찍어드리면 되는 거죠?
“예예…. 회장님과 통화해 보시고 오후에 회장님과 만나서 그쪽이랑 협의하세요.”
조 의원 측에서는 전북 투표 당시에 ‘4시 반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투표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K 회장이 동원한 협회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K 회장은 이러한 조 의원 측의 주장을 ‘전혀 근거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K 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인제 후보가 현재 재정도 전혀 없고 A 협회와 연관도 없는 사람인데 왜 그 돈을 내주겠냐”며 “결코 밥값을 내줬다고 누구에게 인정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조직 동원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나는 순수하게 협회와 관련된 일만 하는 사람”이라며 “정치와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라고 밝혔다.
이 후보 측 역시 조 후보 측의 주장에 대해 ‘깜도 안 되는 3류 시나리오’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 후보 측 관계자는 “조 후보가 그동안 민주당에서 쌓아온 업적과 명예가 잘못된 정보를 주는 아랫사람들로 인해 실추될까봐 걱정이다”라며 “조 후보가 오히려 상처를 입게 될까봐 걱정스럽다”고 말하며 모든 의혹을 부정했다.
국민들의 관심 밖에서 펼쳐지던 민주당 경선은 그나마 대중적 인기를 모으던 조 의원의 후보 사퇴로 더더욱 추악하고 잊혀진 경선으로 흘러갈 전망이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