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정동영 후보, 손학규 후보, 이해찬 후보 | ||
범여권 주변에선 이러다간 당이 또다시 분열되는 최악의 사태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극단적인 소리마저 나돌고 있다. 정 후보가 5일 중재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면서 갈등은 일단 봉합 국면으로 접어든 듯 보이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최종 승자가 가려진다 하더라도 경선 불복 등 후폭풍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 후보 측은 6일 경찰의 캠프사무실 압수수색 시도와 관련해 ‘친노의 후보 찬탈 음모’라고 격노하고 있는 반면 이 후보 측은 불법 선거운동 의혹에 대한 경찰의 최종 수사결과가 나올때까지 경선 일정을 미뤄야한다고 맞서고 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정국으로 빠져들고 있는 신당 경선의 행보를 진단해 봤다.
“세후보가 이별 전쟁 수순에 돌입한 것 같다.”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최근의 신당 경선 상황을 지켜본 신당 고위당직자 A 씨의 일성이다.
4일 오후 기자와 만난 A 씨는 “당 지도부의 고육책에도 불구하고 세 후보 모두 한치의 양보도 없는 극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것은 경선판을 깨자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원샷 경선’ 중재안에 참여했던 A 씨는 “마지막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세 후보가 결국 적당한 선에서 합의하고 중재안을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앙금의 골이 깊어진 만큼 최종 결과에 패자가 불복하는 사태가 벌어질 개연성도 농후하다”며 경선 후 분열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A 씨의 주장처럼 동원·조직선거 논란에서 촉발된 정동영 손학규 이해찬 세 후보 간의 대립각은 경선 주도권 장악을 위한 기 싸움 수준을 넘어 적전 분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당 지도부로부터 ‘원샷 경선’ 중재안을 이끌어 낸 손·이 후보 측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불법선거에 대한 보다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동시에 정 후보 사퇴 카드까지 꺼내 정 후보를 압박하고 있다. ‘정동영 대세론’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2, 3위인 손·이 후보가 ‘정동영 죽이기’에 협공을 취하고 있는 분위기다. 양측은 선거인단 전수조사와 동원 경선 의혹 규명이 이뤄지지 않으면 14일 원샷 경선에도 응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어차피 이대로 가다간 정 후보에게 신당 대선후보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에 따른 양측의 전략적 협공작전으로 풀이된다.
손 후보는 4일 성명을 통해 “당 지도부가 경선 방식과 일정을 재조정한 것은 일부 후보 진영의 타락한 조직 동원과 구태의 불법선거 때문”이라면서 “백번 사죄하고 책임져야 마땅한 일”이라고 정 후보를 겨냥했다. 손 후보 측 우상호 대변인은 6일 경찰의 정 후보 캠프사무실 압수수색 시도와 관련해 “이런 상황을 초래한 책임은 전적으로 정 후보 캠프에 있는 만큼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라”며 “선거기간에 후보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것이 다소 어색한 것은 사실이나 진실규명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 측도 ‘정동영 때리기’에 적극 가세하고 있다. 이 후보는 4일 직접 기자회견을 갖고 “정당생활 20년 동안 지켜본 선거 중 가장 무법하고 무도하며 타락한 선거”라며 “잘못된 제도로 치러진 선거라면 위법적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정 후보 측을 압박했다. 이 후보 측 김형주 대변인은 6일 “영장 발부한 사건을 막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처음부터 정 후보가 이번 사건은 음해라고 했기 때문에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일단 정 후보가 5일 당 지도부의 중재안을 받아들이면서 갈등은 일시 봉합 국면으로 접어든 듯이 보이지만 앙금이 완전히 사라진 건 결코 아니다. 정 후보 측은 당초 양측의 이 같은 협공과 당 지도부의 중재안에 대해 강력히 반발해 왔다. 정 후보는 4일 “당이 패배한 후보들의 생떼에 끌려 다니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하면서 향후 경선 일정에 불참하겠다는 초강수를 꺼내든 바 있다. 4일 오후 기자와 만난 정 후보 측 정기남 공보실장은 “원샷이고 투샷이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특정 후보 손을 들어준 당 지도부나 경기가 불리하니깐 판을 깨려는 후보나 준엄한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분개했다. 정 후보 측은 특히 선거사무실 압수수색건에 대해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 후보 캠프 선대위는 7일 기자회견을 갖고 “선거를 일주일 남겨둔 상황에서 (정 후보에게) 선거를 포기시키려는 노골적인 시도이며 이를 통해 결국 대선후보를 찬탈하려는 음모”라며 “이해찬 후보 측과 친노세력의 공권력을 동원한 정치탄압”이라고 비난했다.
정 후보 측은 지금도 친노그룹을 대표하는 이 후보 측과 반노주자인 손 후보 측이 야합해 비노주자이면서 민주평화개혁을 대표하는 정 후보를 죽이기 위한 고도의 대권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후보를 지지하는 참여정부평가포럼(참평포럼)이 ‘정동영 죽이기’ 플랜의 배후자라는 게 정 후보 측의 주장이다.
실제로 정 후보 측은 참평포럼 긴급 운영위 발언록(10월 1일)을 근거로 제시하며 “당 해체와 친노 신당 만들기를 위한 쿠데타 음모”라고 주장해 또 다른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정 후보 측 김현미 대변인은 4일 “당에서 (정동영) 후보자격 박탈하도록 밀어붙여야… 판을 깨거나 끝까지 가서 우리가 패배하는 경우 등 긴급사태시 대통합민주신당은 우리 머릿속에서 지워야” “우리가 소생하려면 정동영 출당시켜야” “이병완 참평포럼 대표가 스스로 여차하면 당 만들자고 얘기했었다” 등의 회의록 발언을 공개하며 “참평포럼이 정동영 죽이기의 배후다. 이 후보는 즉각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이 후보 측의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를 정점으로 한 친노그룹과 손 후보 측의 ‘정동영 죽이기’ 플랜은 더욱 치밀하고 은밀하게 전개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친노그룹은 노무현 대통령 명의도용 사건이 정 후보 캠프와 깊은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배후세력을 밝히기 위해 모든 정보망을 풀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주도한 서울 종로구의원 정인훈 씨가 아들 박 아무개 씨 등 대학생 3명과 함께 서울 숭인동과 창신동의 PC방 2곳에서 노 대통령 등 최대 523명의 명의를 도용해 신당 국민경선 선거인단에 허위 등록한 혐의를 받고 있는 만큼 정 후보 측과 사전 교감 내지는 사주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친노그룹은 정 씨 사건에 정 후보 측 핵심 관계자가 연루됐다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정 후보에게 치명타를 안길 수 있다는 판단하에 정보통인 386 핵심 의원 주도로 사건 본질을 파헤치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정 후보 측이 ‘원샷 경선’을 우려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경선 파행’에 따른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정 후보가 ‘대승적 결단’이라는 명분을 축적한 후 중재안을 받아들인 것은 ‘원샷 경선’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기는 하다. 경선 방식이 변경됐더라도 선거인단 자체에는 변화가 없고 조직력이 탄탄한 정 후보가 우세할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선 일정 파행 이후 손·이 두 사람의 지지율은 하락하고 있는 반면 정 후보의 지지율은 수직 상승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다.
이런 가운데 손·이 후보 측이 ‘원샷 경선’ 승부수를 띄운 이면에는 경선 막판 전략적 연대를 염두에 둔 사전 정지작업 성격이 짙다는 섣부른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대로라면 어차피 정 후보가 승리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된다면 두 후보의 선택지는 몇 남지 않는다. 정 후보를 주저앉히기 위해서는 ‘원샷 경선’ 직전에 두 사람이 전략적으로 연대해 한 사람에게 표를 몰아주는 것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을 것이란 현실론이 두 사람의 연대 가능성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정 후보가 원샷 경선 미끼를 덥썩 문 만큼 경선 추이를 지켜본 뒤 막판에 연대 카드로 승부수를 띄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두 사람의 연대론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결단이 전제돼야 하고 패색이 짙은 2, 3위 후보 간 정치적 야합이라는 거센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현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정치는 생물이고 대권이라는 대어를 낚기 위해서는 정치적 피아 구별이 무의미했던 과거 전례에 미뤄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순회 경선이라면 양측 모두 선뜻 양보가 어렵겠지만 단 한번의 기회뿐이라면 연대의 희망도 있다는 분석이 없지 않다.
정 후보의 최종 결단도 범여권 대선구도에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당 지도부의 중재안 결정 이후 정 후보는 격한 반응을 보이며 향후 경선 일정 불참 카드로 역공을 취했지만 어느 정도 대세론을 구축한 것으로 판단하고 중재안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정 후보는 5일 여의도 대하빌딩 캠프사무실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갖고 “경선 판이 깨져서는 안된다는 대의와 원칙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원칙 사이에서 많이 고민했다. 당을 위해 다시 한번 저를 버리겠다”며 당 지도부의 ‘원샷 경선’ 중재안을 대승적 차원에서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정 후보가 중재안을 수용한 이상 손·이 후보가 선거인단 전수조사 등 기타 요구조건을 철회할 경우 신당 경선은 극적으로 파행을 피하고 14일 원샷 경선과 15일 대선후보자 지명대회를 통해 최종 후보자 선출 일정은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 사람의 감정의 골이 깊어진 만큼 경선 후가 더 문제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 후보가 최종 후보로 선출되더라도 손·이 두 후보가 불법·부정선거를 이유로 경선의 정당성을 부정할 경우 신당은 또다시 극심한 내홍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후보 선대위원장인 유시민 의원은 “88올림픽 당시 100미터 달리기에서 금메달을 딴 벤 존슨이 금지약물 복용으로 1등을 놓쳤다”고 언급한 바 있고 이 후보 캠프 일각에서는 정 후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 후보가 1위를 못할 경우에도 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반부 누적득표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며 대세론을 확산시키고 있었던 정 후보인 만큼 예상치 못했던 당 지도부의 경선 규칙 변경을 문제 삼아 경선결과에 불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범여권 후보 단일화라는 또 하나의 고개를 남겨 두고 있는 만큼 경선 후유증은 그대로 치명상이 될 수도 있다.
신당 경선이 마지막 고지를 향하고 있지만 그 길목은 이래저래 첩첩산중이다. 경선불복과 분열 불씨 등 또다른 핵뇌관을 안고 결승점으로 치닫고 있는 신당 경선이 어떤 식으로 막을 내릴지 또 대망론을 꿈꿨던 정·손·이 세 후보의 명암은 어떻게 달라질지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신당 경선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