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광화문광장을 비롯해 전국 70여 곳 주요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이번 집회에는 오후 9시 30분 마지막 집계 기준으로 서울 광화문 광장에만 주최측 추산 170만 명이 집결했다.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전주 등 주요 도시 집회에 모인 인원은 62만 명으로 집계됐다. 경찰 추산으로도 전국 총 42만 명으로 역대 가장 많은 인원이 집회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촛불집회가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가운데 시민들이 청와대 100미터 앞까지 횃불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이번 집회는 지난 11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 이후 처음 개최된 집회다. 지난 5차 집회보다 참가자들이 대폭 증가한 것은 박 대통령이 담화를 통해 사실상 퇴진을 거부한 것에 분노했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심지어 이번 집회는 애초에 지난 5차 집회를 마지막으로 대규모 집회가 계획돼 있지 않았다가 12월 2일 예정돼 있던 탄핵소추안 처리 일정이 대국민담화 등 변수로 무산되면서 긴급하게 결정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다 인원이 운집한 데에 대해 주최측인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3차 대국민담화에서 박 대통령이 즉각 퇴진을 거부하고 자신의 거취 문제를 국회에게 떠넘기는 모습을 보인 것이 시민들의 분노의 기폭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탄핵을 차일피일 미뤄온 정치권에 대한 분노가 더해졌다. 이날 본 집회에 앞선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서울진보연대 등 사회단체가 주최하는 ‘박근혜 퇴진! 새누리당 해체! 국정농단 공범 새누리당 규탄 시민대회’가 열렸다. 주최측 추산 약 3000여 명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참가자들은 새누리당 대형 깃발을 찢고, 새누리당 당사에 걸려있던 현수막에 계란을 던지는 등 강한 항의 퍼포먼스를 보였다.
한 참가자는 “아무도 박근혜(대통령)의 명예로운 퇴진을 바라고 있지 않다. 언제까지 자신의 잘못을 뒤로 숨긴 채 정치권에 책임을 떠넘길 건가, 그 책임을 곧이곧대로 받아 눈치만 보고 있는 정치권들도 모두 이번 국정농단의 공범”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질세라 보수단체도 맞불을 놓았다.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등 보수단체는 이날 오후 2시부터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앞에서 ‘헌정질서수호를 위한 국민의 외침’ 집회를 열었다. 주최측 추산 약 3만 여 명이 모인 이날 집회에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참가해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지 못하면 대한민국이 무너진다” “대한민국 쓰레기 언론과 야당, 반미 종북세력 등이 저를 난도질한 이유는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집회 현장에서 진보와 보수단체 간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3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서 제6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그러나 그런 우려가 무색하게 6차 집회는 헌정 사상 최다인 200만 명을 넘어서 또 한 번 촛불집회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냈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는 10월 29일 1차 집회(범국민행동)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 촛불’에서 2만 명, 11월 5일 2차에서는 당초 예상했던 5만 명에서 4배 이상 늘어난 20만 명이, 11월 12일 3차 집회에서는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서 지속 증가세를 보여왔다. 수능을 마친 학생들이 대거 참여한 11월 19일 4차 집회는 전국적으로 열려 서울 60만 명 등 전국 95만 명으로 집계되는 등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는 촛불집회에는 점점 많은 국민들의 목소리가 더해지고 있다.
4일 새누리당은 염동열 수석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6차 촛불집회에 대해 “열 번 백 번, 끝없는 반성과 국민께 다시 한 번 사과와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면서도 “탄핵과 질서 있는 퇴진 중 어떤 것이 국정 혼란을 최소화하고 재도약의 국민에너지로 모아갈 수 있는지 더 성찰있는 청와대와 정치권의 선택과 고민이 필요한 때”라며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의 4월 퇴진론을 공고히 했다. 이어 “어떤 선택이든 일방 통행은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또 다른 논란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비추기도 했다.
한편 6차 집회는 사상 처음으로 청와대의 ‘코 앞’인 효자치안센터 앞까지의 행진이 허용됐다. 효자치안센터는 청와대로부터 불과 100미터 거리에 위치해 있다. 광화문광장에서 청운동길, 효자동길, 삼청동길 등 3 방향으로 나눠 오후 4시부터 진행된 1차 청와대 포위 행진에서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행진의 선두에 서서 박 대통령의 퇴진을 목 놓아 외쳤다. 이어 2차 행진에서는 촛불 대신 횃불을 든 416명의 시위대가 행진을 이끌었다.
애초 오후 5시 30분까지의 행진이 허용됐지만 일부 시위대가 시간을 넘겨서까지 행진을 계속하면서 경찰과 대치상황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집회에서도 연행자 없이 ‘평화 집회’를 그대로 이어나갔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