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7일 개성공단을 방문한 정동영 후보가 한 업체에서 직접 봉제작업을 해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
“다음 정부가 통합 정부가 되기 위해선 내부의 단단한 대통합이 전제돼야 한다.”
신당 후보로 확정된 후인 19일 처음으로 참석한 최고위원회의에서 정 후보가 던진 일성이다. 범여권 단일후보에서 나아가 이명박 후보를 상대로 대선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당력 결집과 지지세력 복원이 전제돼야 한다는 정 후보의 강한 의지가 담긴 발언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정 후보는 경선 승리 이후 스스로 몸을 한껏 낮추고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 불씨를 해소하는 등 당 화합과 범여권 통합 작업에 ‘올인’하고 있다.
19일 호남의 정신적 지주인 DJ를 예방한 것을 시작으로 같은 날 저녁 손학규 전 지사와 회동을 가졌고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20일)과 이해찬 전 총리(21일)도 잇따라 만나 선대위 참여와 협조를 부탁했다. 마지막 관문인 단일화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광폭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정 후보의 향후 대권행보가 그리 녹록지만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그의 대권행로를 가로막는 암초들이 당 안팎에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부의 적이 문제다. 비록 이해찬 전 총리와 손학규 전 지사가 경선 승복 의사를 피력하고 있긴 하지만 앙금이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전 총리를 정점으로 한 친노그룹과의 소원해진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 여부가 최대 과제다. 경선에 패한 후 “운전기사라도 하겠다”며 백의종군 의지를 피력한 손 전 지사에 비해 이 전 총리와 친노그룹은 여전히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 총리는 경선 직후 캠프 의원들에게 “우리가 뽑은 후보가 당선되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문했지만 선대위원장 등 중책을 맡는 것에 대해선 소극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총리의 측근인 윤호중 의원이 “자리보다 중요한 것은 경선 과정에서 상처받은 당의 도덕성과 개혁성 회복”이라고 말한 것도 가시지 않은 앙금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도 노 대통령과 정 후보와의 관계 정상화란 표현에 대해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18일 정례브리핑에서 “정치를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원칙의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미로 해석해 달라”며 “관계란 표현이 본질적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해석들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범여권 주변에선 이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친노그룹이 정 후보와 ‘느슨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진영을 재정비한 후 내년 총선 국면이 도래하면 당권 도전 등 또 다른 승부수를 띄울 것이란 얘기도 나돌고 있다. 또한 친노그룹 일각에서는 당권 투쟁이냐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 지지냐를 놓고 대책마련에 돌입했다는 소리도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세력과 조직 면에서 열세인 손 전 지사 측도 뾰족한 대안이 없어 일단은 정 후보 지지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지만 지분이나 공천권 문제에 부딪힐 경우 지지 철회 등 깜짝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경선 과정에서 ‘정동영 대권-김한길 당권 밀약설’이 불거진 바 있고 이 전 총리 또한 “내년 총선을 위해 공천 제도를 뜯어 고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어 또 다른 갈등을 부추기는 화약고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정 후보와 이 전 총리, 손 전 지사 등을 주축으로 한 신당 세 세력이 일시 봉합 국면을 맞이하고 있지만 언제 어떤 식으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동거에 들어간 셈이다.
호남필패론 등 정 후보가 안고 있는 태생적 한계도 극복해야 할 난제다. 16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지역주의 때문에 정동영 후보에게 후보가 아니라 ‘킹 메이커’를 하라는 권고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물론 김 전 의장이 “전국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는 것을 보고 대선에서도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새롭게 갖게 되었다”며 덕담을 건네면서 한 발언이지만 범여권 저변에 호남 필패론이 깔려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19일 정 후보의 예방을 받은 DJ가 그동안 줄곧 써왔던 ‘후보단일화’ 대신 ‘대연합’이란 다소 생소한 표현을 쓴 것과 관련해서 범여권 일각에서는 DJ의 대권 복심이 반영된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DJ는 이날 자택을 방문한 정 후보와 신당 관계자들에게 “국민이 바라는 바를 받들어서 국민 뜻대로 대연합을 준비해나가야 한다”며 “국민이 잘 이해를 못하면 설득을 하고 국민이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후보단일화는 후보 중심의 연대 성격이 강하지만 대연합은 정파 간 지분관계를 고려한 연정 성격이 짙다는 분석에 비춰볼 때 단일화 국면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정 후보에게 대선 승리를 위해 일정 부분 양보를 주문한 게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나라당의 전방위 검증 공세도 넘어야 할 과제다. 17대 마지막 국정감사가 상대 후보 ‘흠집내기’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정 후보와 연계된 각종 의혹들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 후보 부친의 친일행적 의혹이 불거지는가 하면 정 후보의 기자 시절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보도과정을 담은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정 후보가 구조작업을 방해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특히 정 후보의 주가조작 배후설 논란은 대선정국 내내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01년 정 후보가 처남 등을 동원해 코스닥 기업인 텍셀 엑큐리스 금화 피씨에스 등의 주가를 조작해 수십억 원을 챙겨 비자금으로 사용했다는 게 주가조작 배후설의 골자다.
한나라당 권력형 비리특위 산하 정동영 조사팀 관계자는 “2001년 사건이 불거진 당시 검찰 수사와 코스닥 불공정 거래를 감시하는 증권업협회 등 관계기관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이 같은 정황을 발견할 수 있으며 정 후보가 주가조작에 개입됐다는 의심을 씻을 수가 없다”며 정 후보 개입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이에 대해 정 후보는 “처남이 지인을 통해 투자했다가 시비에 휘말렸는데 참고인 조사에서 무혐의로 결론났다”며 “한나라당의 비열한 정치공세”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이명박 후보가 BBK 주가조작 혐의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만큼 정 후보의 주가조작 배후설로 맞불을 놓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어 정 후보 또한 치열한 공방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특히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정동영 X파일’을 서너건 더 준비돼 있다고 호언하고 있어 정 후보 측을 긴장시키고 있다.
과연 정 후보는 산적한 암초를 헤치고 범여권 후보단일화 고지를 점령하고 이명박 대항마로 우뚝 설 수 있을지 정 후보의 파란만장한 대권 도전기가 대선정국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로 부상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