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재근씨 | ||
인씨는 현재 한반도재단 산하 이웃사랑나누기 자원봉사단장을 맡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최근 들어 김 장관의 봉사활동 행사에도 함께 했고 1월8일에는 김 장관의 온라인봉사단인 ‘김근태친구들’ 주최로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합동 신년 하례식에도 참석했다.
이 때문에 정가에는 ‘인씨의 김근태 대통령 만들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인재근씨의 ‘정치적’ 행보를 두고 말들이 있긴 하지만 그의 경력을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는 지난 87년 남편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과 함께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공동 수상했다. 또한 민가협 총무,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등을 역임했다. 다른 대권주자의 부인들이 내조 차원에서 남편을 돕는 것과는 달리 그는 민주·여성운동의 차원에서 남편을 돕는 셈이다.
그는 김 장관에게 정치적인 조언도 적극적으로 하는 편. 인씨는 이에 대해 “젊은 시절 동지적 관계에서 그를 만났고 또 같은 일(민주화 운동)을 계속 해왔기 때문에 남편과 토론하고 의논하는 일이 많다”고 말한다. 김 장관 또한 인씨에게 정치적 조언을 많이 구한다고 한다. 다음은 그 대표적 사례.
“국민연금 파동이 있기 하루 전 남편이 내게 메일을 하나 보냈다. 복지부 홈페이지에 올랐던 그 글이었는데 내게 한번 내용을 보라고 했다. 글을 읽고 나서 정치적으로 파장을 일으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주무장관으로서 해야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단지 걸리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국내에 안 계시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장관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고 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다음날 언론에 보도된 후 난리가 나서 깜짝 놀랐다.”
정치적 파장에 대해 인 여사는 “파장을 일으킬 내용이었다면 절대 얘기하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라고 덧붙이면서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잘 했다고 하더라. 시장에 갔더니 박수를 치면서 환영해주었다. 국민들은 이렇게 좋다고 하는데 언론에서는 마치 대통령한테 반기를 들었던 것처럼 보도되어서 좀 그랬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계속되는 일문일답.
─총선 뒤 장관직 입성과 관련해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김 장관은 4·15총선 며칠 뒤 노무현 대통령과 만나서 통일부 장관직 제의를 받았다. 그런데 중간에 일이 꼬여서 복지부 장관을 해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두 달 동안 힘든 시기를 겪었다. 특히 가족문제(김 장관 형들의 월북, 납북 문제) 때문에 굉장히 괴로워했다. 그 동안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통일문제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건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어떻게 최종 결정을 하게 되었나.
▲장관 임명을 며칠 앞두고 마지막 가족회의를 했다. 아들 병준이가 이번에 장관을 해야 한다고 했다. 어느 장관을 하는 것이 중요했는데 이미 그때는 복지부 장관으로 다 (내정)되어 있던 시점이라 별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잘 된 것 같았다. 남편에게 ‘복지부 장관 참 좋은 자리다. 국민 생활과 직결되고 국민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래도 해야 되나…’라고 하면서 좀 서운해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고 있다.
─대권주자로서 김 장관을 평가한다면.
▲한 조사에서 오피니언 리더가 선호하는 차세대 주자 1위로 뽑혔는데 국민들 선호도에서는 6위였다고 들었다. 앞으로 열심히 해서 등수를 올리고 싶다. 김 장관이 내 남편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를 지켜보았는데 참 바르고 좋은 사람이다. (그의 자질이) 아까우니까 (국민들이) 써먹어야 하지 않겠나.
─대권주자로서 김 장관이 보완해야 할 점은.
▲(사무실에 걸린 김 장관의 사진을 가리키며) 저렇게 웃으면 참 좋지 않나. 텔레비전에만 나오면 굳은 표정이 되는데 무조건 웃어야 한다. 그러면 순수함 소탈함이 얼굴에 나타난다.
─당내 정동영 장관과 라이벌인데 예선 통과 자신 있나.
▲선거라는 게 자신감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맨 처음 선거 치르고 난 뒤 깨달은 게 있다. 지하철 역에서 1백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고 하면 그 중 따뜻한 눈길을 보내준 사람이 20명밖에 안 되고 그 나머지는 모두 냉랭하게 지나쳐버린다. 하지만 나는 내게 마음속의 지지를 보내준 그 20명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싸늘하게 대했던 80%는 하나도 생각 안 한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부터 ‘자신이 없다. 2~3등이나 4등 하겠지’라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못한다. 국민들이 김 장관을 점점 많이 알아줄 것으로 본다.
─평소 남편의 건강관리는.
▲아침에 일어나면 맨손체조를 한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조기축구를 한다. ‘축구 하러 가자’고 하면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한다. 나도 따라 가서 커피도 끓여 주고 달리기도 한다. 남편은 골을 넣으면 한 주일은 기분이 업되어 다닌다. 지난번 한일의원연맹 축구시합에 가서 한 골 넣었는데 그때 두 골이나 한국이 앞서고 있었기 때문에 ‘눈치 없이 넣었다’고 괴로워하더라(웃음).
─신년 운세 보았나.
천주교 신자라서 그런 것은 안 본다.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