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지율 1위인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투표일을 한 달여 앞둔 현재 50%대의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선두주자인 만큼 구도와 이슈 주도권에서 ‘협곡’과 ‘수세’로 몰리는 형국이다. 이 후보가 난관을 이겨내고 현재의 지지율을 지킬 수 있을지 수세의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지지율에 이상을 보일지 지금으로서는 확언하기 힘들어 보인다.
대선을 한 달여 남겨둔 상황에서 이명박 후보는 그 구도와 관련해 세 가지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출마, 보수진영의 분열 가능성, 기득권층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아직도 BBK 등 각종 의혹도 남아있다. 대선구도는 주로 계층·지역·이념성향으로 나뉘어 전선이 형성된다. 그동안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분석해 보면 이 후보는 계층적으로 화이트 칼라와 중산층 이상에서 지지층이 두터운 성향을 보이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수도권과 영남, 이념적으로 보수에서 중도 성향까지 지지층이 비교적 넓은 편이다. 선거구도만 놓고 보면 이 후보는 모든 전선에서 다수를 차지하면서 전선을 주도할 수 있는 고지를 이미 점령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들어 모든 전선에서 균열 조짐이 일고 있다.
무엇보다 이 전 총재의 출마 가능성이다. 이 전 총재가 출마할 경우를 상정한 MBC와 SBS의 후보별 지지도 조사에서 이 후보는 40%대로 떨어졌다. 이 전 총재는 20%대를 기록, 15%선에 그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제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전 총재가 출마를 강행할 경우 지역·이념성향별 지지도 면에서 이 후보의 지지층을 상당히 잠식할 수 있다는 분석이 그래서 제기된다.
이 전 총재는 이 후보의 ‘집토끼’로 인식되고 있는 영남권과 보수층에서 상당한 흡인력을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구도 면에서 본다면 지역적으로 수도권과 영남의 견고한 지지를 바탕으로 호남을 고립화한다는 이 후보의 전략에 구멍이 뚫리는 것이다. 대통합민주신당 정 후보가 서부벨트를 1차적으로 구축한 뒤 수도권으로 북진하면서 영남을 공략한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전 총재의 출마로 영남이 분산된다면 이는 매우 힘든 상황을 몰고 올 수도 있다.
두 번째로 전통적 지지층인 보수세력이 분열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도 예사롭지 않다. 이 후보 측은 그동안 한나라당의 핵심 기반인 보수층은 ‘잡아 놓은 토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 후보 측의 이런 판단은 당내 경선 이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측에 대한 적극적인 포용 노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양상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친박 의원들의 홀대에 대한 반발에도 무덤덤한 입장을 취해왔다. 그만큼 보수층의 지지에 대한 자신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런 지나친 자신이 변수가 됐다. 박 전 대표 측의 서운함이 이 전 총재의 ‘틈새’가 됐고, 급기야 정치적 가능성으로 확대됐다. 서청원 전 대표 등 박 전 대표 측 인사들이 이 전 총재와 공개적으로 접촉하기 시작하면서 이 후보 측에서는 ‘집 토끼’가 ‘산’으로 튀어나갈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세 번째로 대통합민주신당 정 후보의 ‘2080전략’이 자칫 기득권층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는 진보세력은 물론 일반 서민들에게 먹힐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후보를 잘사는 20%를 위한 후보로 몰고 가면서 정 후보가 못사는 80%를 챙기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들고 나온 것이다. 이 후보로서는 50% 이상 지지층을 확보해 놨는데 정 후보가 잘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의 대결로 구도를 가르는 데 성공한다면 50%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문을 걸어 잠거야 하는 ‘수세’에 몰린 셈이 됐다. 주로 경제정책 분야에서 이런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이 후보가 특성화 설립 확대를 말하고, 친기업 환경 정책을 주장하면서 정 후보와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민주당 이인제 후보 등으로부터 ‘잘사는 20%를 위한 대통령’이라는 파상 공세에 직면해 있다.
▲ 이명박 후보의 대선 후반 레이스가 갈수록 힘겨워지고 있다. 위 사진은 강동 뉴타운과 관련해 비리 의혹이 불거진 천호동 브라운 스톤 주상복합건물. 출마설이 돌고 있는 이회창 전 총재(아래 왼쪽)와 경선 갈등이 아직 아물지 않은 박근혜 전 대표. | ||
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최대의 승부처를 향해 가는 상황에서 이 후보는 이 전 총재의 출마 저지, 보수세력 껴안기, 서민층 공략 등 어려운 숙제를 안게 됐다. 대선 지형에서 가장 넓은 땅과 고지를 차지했던 이 후보가 점점 협곡으로 몰리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후보 측은 일단 이 전 총재에 대해서는 설득과 압박이라는 양동작전, 보수층에 대해서는 적전분열 필패론, 서민층에 대해서는 경제 대통령론으로 각각 대응하는 모습이다. 이 후보 측 이재오 최고위원, 이방호 사무총장 등이 잇따라 ‘차떼기 정당의 오명을 만든 당사자’라며 이 전 총재에 대해 견제구를 날렸다. 박 전 대표 측에 대해서는 보수분열이 좌파에게 정권을 헌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압박을 가했다. 박 전 대표가 “뭐 하자는 것이냐”며 발끈하자, 박 전 대표의 최측근인 김무성 전 사무총장을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끌어안는 화해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이 후보가 이런 양동작전으로 위기를 넘어설 수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 박 전 대표는 여전히 ‘오만의 극치’라며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박 전 대표 측의 한 의원은 “이 후보 측이 ‘혼자 힘’으로도 당선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면서 “화학적 결합은 물 건너 간 것 같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대선구도는 이슈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이슈에서 이기면 구도가 유리해지고 구도가 유리하면 이슈에 대한 주도력도 확대된다. 이 후보가 확고한 우위를 유지하려면 이슈 면에서 밀리지 말아야 하며 그렇게 되면 구도에 새긴 균열도 치유될 수 있다. 대선 이슈는 네거티브전이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후보가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보여준 것은 당내 경선에서 박 전 대표를 눌렀을 때다. 한때 지지율이 60%를 넘나들 정도였다.
그러나 경선 이후 이 후보를 향한 범여권의 검증 칼날은 당내 경선에서 박 전 대표 측이 휘둘렀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BBK 주가조작 사건 연루 의혹, 도곡동 땅 차명보유 의혹, 상암 DMC 건설비리 의혹, AIG 국부 유출 의혹, 천호동 뉴타운 비리 관련 의혹 등에 대해 범여권은 조직적이면서도 무차별적인 공세를 펴고 있다.
이런 공세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은 분명하며 그 경우 선거 초반 참여정부 실패론을 무기로 경제대통령이라는 이슈를 선점하면서 공세적 입장에 섰던 이 후보가 자칫 자신에게 쏟아진 의혹들에 대해 방어하는 수세적 입장으로 상황변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심지어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되면서 ‘면죄부’를 얻었다고 판단했던 사안이 박 전 대표의 표현대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불러 올 수도 있다’는 쪽으로 흐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먼저 이 후보의 BBK 주가조작 사건 연루 의혹은 미 국무부가 김경준 씨의 한국 송환을 승인함으로써 ‘핵폭탄’으로 돌변했다. “(주가조작은) 김경준이 다 알아서 한 일이며, 나와는 상관없다”는 이 후보의 해명은 김 씨가 귀국 이후 종전대로 “자금과 투자자를 이 후보가 끌어왔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경우 다시 거센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김 씨는 특히 이 후보 관련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물적 증거를 제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아직 그 증거가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검찰 수사의 진전에 따라서는 메가톤급 폭풍을 몰고 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BBK사건의 핵심은 이 후보가 LKe뱅크→MAF→옵셔널벤쳐스(주가조작)→A.M 파파스로 이어지는 주가조작 사건의 연결과정에 어느 정도 관련됐느냐는 점이다. 대통합민주신당 서혜석 의원은 “수천 명의 소액주주를 울린 주가조작 횡령액 384억 원의 행방이 드러나야 한다”며 “최종적으로 횡령액 중 국내로 간 부분을 계좌추적을 통해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BBK 사건은 이 후보의 도곡동 땅 차명 보유 의혹과도 연결돼 있다. 도곡동 땅의 매각대금이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 때문이다. 따라서 김경준 씨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에 따라 대선판도가 요동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검찰 조사에서 이 후보의 주장대로 김경준 씨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이 난다면 의혹을 부풀려온 범여권이 오히려 치명적인 역풍에 휘말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검찰 조사는 상당한 시일을 요할 것이 분명하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그만큼 이 후보로서는 부담이다. 문제는 이 후보와의 연결고리가 드러날 경우로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이 전 총재 측이 이 후보의 ‘유고’까지를 고려하면서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한 여론조사기관의 조사에서 이 후보의 지지층 가운데 30%가량은 BBK 조사 결과에 따라 지지를 철회할 수도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나는 등 ‘살아있는 변수’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한나라당과 이 후보 측이 이 사안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는 아마도 10년 가까이 야당으로 있으면서, 여당 시절 정보를 수집 분석해 본 경험을 가진 인적 자원이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상대가 어찌됐든지 여당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통합민주신당이 국감 과정에서 내놓은 BBK 관련 자료들은 확실히 당내 경선과정에서 나온 것과는 ‘수준’이 다를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나은행의 LKe뱅크 투자과정에서 이 후보의 최측근인 김백준 씨가 사업설명회에 참석한 사실과 구체적인 계약서(안)까지 제시됐는가 하면 LKe뱅크가 MAF에 1250만 달러를 전환사채와 주식 매입형식으로 투자한 의혹 등을 내놨다. 이러한 구체적인 자금 흐름을 담은 자료들은 ‘기관’의 도움 없이는 입수하거나 그려내기가 어렵다는 게 한나라당의 시각이다. 한나라당이 범여권의 이런 공세의 배경에 청와대를 지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범여권이 BBK 외 나머지 의혹들에 대해서도 공세를 펴겠지만 대선까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BBK가 이 후보에 대한 마지막 핵심 공격 루트가 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이 같은 구도와 이슈 면에서 이 후보가 승세를 굳히느냐 마느냐가 마지막 ‘승부처’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치 않고 있다.
정기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