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 후보 개입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 씨에 대한 검찰 조사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나 구체적인 증거나 드러날 경우 이 후보는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반면 김 씨 송환 배경에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거나 제2의 김대업식 공작정치로 귀결될 경우 이명박 대세론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이고 노무현 정권과 범여권은 공멸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선정국을 끝장 대결구도로 몰아넣고 있는 ‘김경준 태풍의 영향력과 파괴력을 진단해 봤다.
김 씨 송환이 임박하면서 BBK 사건은 이제 대선 변수가 아닌 상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 씨에 대한 검찰 수사 추이나 결과는 이 후보와 정 후보의 대권가도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씨 송환과 BBK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될 경우 어느 쪽에 유리할지 아직 속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실체적 진실 규명을 떠나 이 후보가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만큼 검찰의 최종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한나라당과 이 후보 측에 불리한 카드가 될 것이란 점에서는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김 씨가 서울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검찰 체포 과정과 수사 진행 상황 등이 연일 언론을 통해 보도될 것이고 이 경우 가뜩이나 각종 의혹에 시달려 온 이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의혹은 강해질 것으로 분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속담처럼 의혹이 증폭될수록 철옹성 같았던 이 후보의 지지율도 그만큼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이 최근 김경준 씨 송환을 앞두고 각종 자료들을 잇따라 공개하면서 이 후보 개입 의혹을 추궁하는 등 융단폭격을 가하고 있는 현실도 이 후보 측으로서는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신당 측은 설령 이 후보가 BBK의 실제 주인이 아니더라도 주가조작에는 개입했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 후보가 김 씨와 모든 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한 만큼 “주가 조작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이 후보의 말은 명백한 거짓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신당은 이 후보가 대표이사로 있던 LKe뱅크의 계좌가 주가 조작에 동원된 사항을 증거로 제시한 상태다. 또한 LKe뱅크가 150억 원을 투자한 MAF펀드에서 Am파파스로 돈을 송금하고 Am파파스가 LKe뱅크 지분을 매입한 정황에 미뤄 ‘돈 세탁’ 의혹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이처럼 신당 측이 BBK 사건과 이 후보의 연관성을 밝히기 위해 융단폭격을 퍼붓고 있는 가운데 이 후보와 한나라당은 이를 정치공작으로 규정, 맞불을 놓고 있다. 김 씨의 거짓말에 기업들이 속아서 투자한 것이며 이 후보와 연관성도 김 씨의 일방적인 진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주가조작도 김 씨가 단독으로 저지른 범죄일 뿐 이 후보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은 1일 하나은행 내부 문건에 대해 “문서번호도 없고 기초적인 사실관계도 틀린 짜깁기 문서로 거짓 주장을 한 것”이라고 반박하고 나섰고 차명진 의원은 ‘돈 세탁’ 의혹과 관련해 “LKe뱅크는 MAF라는 펀드에 가입한 것일 뿐 운용권을 갖지는 않았다. MAF는 김 씨와 김 씨 누나 에리카 김 등이 주도한 펀드였다”며 이 후보와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하지만 신당 측은 한나라당이 거짓말로 물타기를 하고 있다며 BBK 사건에 ‘올인’하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정 후보 측은 ‘이명박 저격수’로 통하는 핵심 의원들을 전면에 내세워 대반전을 꾀하고 있는 형국이다. 김현미 의원은 1일 “2000년 12월~2001년 2월에 자행된 BBK의 1차 주가조작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정식 조사를 하지 않았다”며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김 의원이 지적한 시기는 현재 알려진 BBK 주가조작 사건(2001년 9~12월) 이전이다. 이 후보가 김 씨와 LKe뱅크의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던 때인 만큼 이 후보의 연루 가능성이 보다 높아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후보의 돈 세탁과 탈세 의혹을 제기한 바 있는 박영선 의원은 1일 또다시 “LKe뱅크의 증권업 면허 취득 과정에 특혜의혹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고 이 후보가 BBK의 실소유주라고 주장한 정봉주 의원은 4일 BBK 횡령자금의 흐름을 추가로 공개했다. 신당 지도부도 이 후보에 대한 검찰 고발을 적극 검토하는 등 공중전을 펼치고 있다. BBK 호재를 대선 국면에 최대한 활용해 불리한 전세를 역전하겠다는 의지다. 이와 관련 31일 기자와 만난 신당의 한 중진 의원은 “김 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 이 후보의 거짓말이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라며 “김 씨 스스로 BBK 실제 주인이 이 후보라고 주장하고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확실한 물증도 가지고 귀국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확실한 물증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한다”며 “다만 여러 정보망을 통해 김 씨의 송환 결정 과정을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바 있는 만큼 김 씨가 들어오면 모든 게 밝혀질 것”이라고 답했다.
신당 일각에서는 김 씨의 누나인 에리카 김 변호사가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에 자진 출두해 이 후보에게 치명상을 안길 수 있는 증언을 할 것이라는 소리도 꽤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에리카 김은 한때 이 후보와 관련 구설수에 오른 인물인 만큼 그가 한국 검찰에서 이 후보와의 관계나 사업과 관련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증언할 경우 상당한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내 교민신문인 <선데이저널>은 10월 19일자 기사에서 “에리카 김 변호사는 주변 인사들에게 ‘신변만 보장해 준다면 증인으로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경우에 따라 폭탄증언까지 나올 수도 있어 이래저래 12월 대선의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신문은 이어 “최근 김 씨 누나 에리카 김이 돈세탁, 허위세금 보고 등 4건의 혐의로 연방검찰에 기소돼 지난 11일 법원에서 유죄를 시인함으로써 변호사 자격까지 박탈당할 최악의 위기에 몰려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최악의 위기 상황에 직면한 김 씨 남매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이 후보와 전면전을 선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정황이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나라당이 김 씨 송환 배경 등과 관련해 ‘제2의 김대업’ ‘청와대 배후설’ 등을 제기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정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1일 최고중진회의에서 “김 씨는 3년이나 송환을 피해왔는데 10년 이상의 형을 살아야 할 피의자가 대선 전에 갑자기 들어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고 이상하다”고 전제한 뒤 “오래 전부터 여권이 김 씨를 귀국시켜서 선거판을 흔든다는 말이 돌았다. 2002년 김대업식 공작정치를 시도한다면 전 국민의 비난과 저항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나라당과 이 후보 측은 청와대를 정점으로 한 범여권이 김 씨 남매와 접촉해 신변 안전 등을 담보로 이 후보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도록 사주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로 차명진 의원은 1일 국회 운영위 질의를 통해 “신당 의원 두 명이 김 씨와 접촉했다”면서 “한 명은 변호사인 남편을 통해 김 씨 측 변호사와 만났고 또 한 명은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미국으로 보내 접촉하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차 의원은 이어 “문제의 의원들은 P, J 의원으로 신당이 김 씨 귀국과 관련해 사실상 김 씨와 내통했다는 반증”이라고 강조했다. 심재철 의원도 이날 운영위 국감에서 “김 씨의 조속 귀환 결정에 청와대와 신당의 배후 또는 개입이 있었다”며 정치공작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1일 오후 기자와 만난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DJ 정부 시절 핵심 실세와 현 정부 고위 인사가 미국에서 김 씨 남매와 변호사를 여러 차례 접촉한 정황을 확보하고 있다”며 “전·현 정권이 정권 연장을 위해 치밀하게 정치공작을 펼쳐왔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이 후보는 물론 당 차원에서도 전력투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김 씨 송환이 결정된 이후 여야 정치권은 사생결단식 전쟁 모드로 돌입한 형국이다. 신당과 정 후보 측은 검찰 수사가 불가피 해진 BBK 사건을 ‘이명박 죽이기’와 보수·기득권 층 분열이라는 그야말로 대선 꽃놀이패로 활용한다는 전략인 반면 한나라당과 이 후보 측은 제2의 김대업 사건으로 몰고 가 지지층을 더욱 결집시켜 궁극적으로 연말 대선을 완승으로 이끄는 매개체로 삼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대선정국을 검게 뒤덮고 있는 ‘김경준 태풍’이 핵폭탄으로 변할지 아니면 찻잔속의 태풍에 그칠지 다음주 송환될 김 씨의 입에 정치권과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