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열린 제5차 촛불집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무효 소송 서명 운동이 한창이었다. 대선무효 소송인단은 대선무효소송 판결로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키겠다며 시민들의 서명을 받았다. 소송인단은 지난 2013년 1월 4일 대선이 끝난 직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상대로 대선 무효 소송을 제기했으나, 대법원은 3년 11개월이 지나도록 소송을 개시조차 하지 않은 상태다.
선거무효 소송을 주도하고 있는 한영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노조위원장은 지난 13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탄핵정국과 별개로 무효소송이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씨는 “탄핵은 국회를 통과해도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선거무효소송은 개시만 하면 100퍼센트 승리한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경우 선거법 위반 혐의를 두고 이미 파기환송 판결까지 나왔다. 중앙선관위의 개표 및 선거법 위반 또한 공문 자료가 다 있다. 준비는 완벽하게 돼 있어서 재판이 진행되면 반드시 승소할 것이고, 자동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구속될 것이다. 다만 법원이 재판을 진행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대선 사건에 비하면 최순실 게이트는 새 발의 피다. 성완종 불법 대선자금과 국정원의 대선 개입, 선관위의 개표조작 등은 실체가 드러났다. 전 국민의 참정권을 농락한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공직선거법은 ‘선거소송은 다른 쟁송에 우선해 신속히 재판해야 하고 소가 제기된 날부터 180일 이내에 처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소송은 지난 2013년 1월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4년 가까이 처리되지 않고 있다.
대법원 측은 “해당 사건은 마지막 심리 진행 상황에 ‘현재 여러 관련 사건을 통일적이고 모순 없이 처리하기 위해 심층검토 중’이라고 기록돼 있다. 법정 기한준수의 경우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필요규정이 아닌 ‘훈시규정’으로 해석돼, 실제 당사자 간의 합의 등 사유가 있어 도과되어도 무리가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한 씨는 “해당 사건의 당사자는 대선무효 소송인단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다. 선관위 측에서 재판을 거부하고 있고, 그 입장에 따라 진행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빨리 재판이 속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춘몽이라는 가명을 쓴 정 아무개 씨는 지난 2013년 4월 25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지난 대선은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1인 시위를 했다. 이상민 인턴기자
대선무효소송의 쟁점 중 가장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국정원 대선개입’의 파기환송심 진행 또한 지난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았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댓글 사건을 용병술로 볼 수 있지 않느냐는 식의 심증을 적극 적으로 드러내는 재판장의 지휘가 절절한가. 적절한 범위에서 지휘해야 한다”며 재판장의 부적절한 소송 지휘를 지적했다.
박 의원에 따르면 지난 9월 30일 열린 공판에서 재판장은 검찰에게 ‘국정원법을 엄격히 적용할 경우 다른 활동도 불법이 될 수 있는데, (댓글 활동이)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벗어나느냐’고 물으며 손자병법에 빗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심상철 서울고법원장은 “해당 사건은 1심과 2심의 양형에 큰 차이가 있었고, 대법원에서는 심리가 미진하다는 이유로 파기환송됐다”고 답변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해 징역 3년 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원 전 원장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은 1심에서 집행유예, 2심에서 징역 3년을 받았으나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됐다.
여전히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내년 대선을 앞두고 ‘묻지마 예산’으로 불리는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예산은 2017년 86억 원 가량 증액됐다. 국정원은 다른 부처와 달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심의를 받지 않고, 국회 정보위원이 회계자료를 복사하거나 메모하지 못해 제한된 조건에서 심사해야 한다. 이에 일각에서는 불투명한 국정원의 예산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증가해 ‘제2의 대선개입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이번 ‘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에는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가 수사팀장으로 내정됐다. 윤 검사는 지난 2012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당시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다가 직무 배제 후 좌천됐으며, 국정감사에서 수사과정에 외압이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한 바 있다.
윤 검사와 함께 3년 전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했던 이복현 춘천지검 검사도 특검으로 파견됐다. 박영수 특검팀에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했던 윤 검사팀이 합류했다는 소식에 과거 흐지부지됐던 대선개입 사건 수사의 불씨가 되살아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