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일석 전 서울부시장 회고록. | ||
서울의 대표적인 도로와 건축물의 이름을 대면 대뜸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차일석 전 서울시 부시장이다. 도시 행정 및 계획 분야의 달인으로 미국 유학 뒤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를 지내다 지난 66년 서울시 부시장으로 임명된 그는 재임 기간 중 낙후된 서울을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수도 서울의 청사진을 제시했던 차 부시장이 최근 회고록 <영원한 꿈 서울을 위한 증언>(동서문화사)을 출간했다. 차 전 부시장은 책에서 부시장 재임 시절 역사적인 서울 개발사와 그 뒤에 얽힌 비화를 상세히 털어놓았다.
부시장에 임명된 뒤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세종로 지하도. 서울에서 가장 인파가 붐비는 세종로에 지하도를 만들고 보도 육교를 세웠던 그의 구상은 현재까지도 시민을 보호하는 도시 행정 기본 철학에 가장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역사적인 세종로 지하도의 공사비가 단돈 1원밖에 들지 않았다면 믿겠는가? 차 전 부시장은 실제 세종로 지하도 건설에 대림산업이 단돈 1원만 받고 공사를 해줬다는 후일담을 전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당시 차 부시장은 서울시가 발주하는 대규모 공사에 현대와 더불어 대림산업을 필히 배려했고, 그 뒤로 대림산업은 빠르게 성장했다고 한다.
서울시 부시장으로서 박 대통령과의 만남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 인연 때문인지 차 전 부시장은 서울 개발사를 이야기할 때마다 박 전 대통령과의 일화를 빼놓지 않았다.
한강 제1교에서 여의도 입구까지 이어지는 강변도로 준공식 당시 차 부시장이 도로 건설에 “1km에 1억원이 들었다”고 박 대통령에게 전한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그는 경부고속도로(서울에서 부산까지 4백30km구간) 건설에 4백29억원이 소요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공사 비용이 일종의 건설 표준이 됐던 셈. 차 전 부시장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했음을 엿볼 수 있다.
남산 외국인 아파트 건설 문제로 박 전 대통령과 설전을 벌인 기억도 소개했다. “남산은 서울시민의 안식처다”라며 대규모 아파트 건설을 계획하던 박 전 대통령의 고집을 꺾었다고. 당시 차 부시장의 ‘기세’에 눌린 박 대통령이 “동 수를 줄여 세 동만 지으면 어떻겠느냐”고 하자 차 부시장이 다시 “안 된다”고 해 결국 두 동을 짓는 것에서 합의를 봤다는 후문이다. 차 전 부시장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매사에 빈틈없고, 철저한 분”이라고 평했다.
63빌딩에 얽힌 일화도 눈길을 끄는 대목. 차 전 부시장은 신동아건설 사장 시절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이 대한생명의 새 빌딩을 세울 곳을 자문하자 여의도를 적극 추천했고, 모양도 신동아의 ‘ㅅ’을 상징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한다. 결국 차 전 부시장의 의견 그대로 63빌딩이 탄생했다고. 차 전 부시장은 당시 최 회장의 부인인 이형자씨가 기도를 하던 중 ‘63’이라는 계시를 받아 국내 최고 높이 빌딩의 층수가 63으로 정해졌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차 전 부시장은 현재의 강남을 언급하면서 도로 및 건축 체계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난개발의 극치”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단층, 고층 건물이 혼재한 신사동은 “무질서한 불량촌”이라고 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일까. 이명박 서울시장이 추진하는 청계천 복원공사, 강북 뉴타운 건설 추진에 대해서는 환영한다는 사견을 피력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의 수도 이전 계획에 대해서는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