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도피성 출국’이란 비난 속에 장기외유에 들어갔던 이 회장이 ‘깜짝쇼’에 가까운 전격 귀국을 택한 이유를 최근 검찰 기류와 맞물려 해석해볼 수도 있다. 검찰은 지금 대대적인 인사철을 맞이하고 있다. 얼마전 검사장급 인사에 이어 일선 부장급 인사도 곧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삼성이 이 점을 파고들었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일선수사 실무를 담당하는 부장검사에게 배정된 큰 사건들이 일단락돼야 그들에 대한 인사가 용이해진다. 만약 이 회장이 동계올림픽 기간을 지나 장기외유에 들어갈 경우 검찰은 모든 채널을 동원해 이 회장의 해외동선을 파악하는 한편 이 회장의 귀국을 종용해야 했을 것이다. ‘장기외유’에 걸맞는 ‘장기수사팀’이 유지됐을 수도 있다. 이번 이 회장의 전격 귀국으로 인해 검찰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사건 수사가 급물살을 탈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일선검사들에 대한 인사와 삼성이 원하는 대로 에버랜드 수사가 조기 마무리될 수 있다는 관측도 가능하다.
일부 호사가들은 삼성과 수사당국의 ‘모종의 물밑 합의’ 여부에도 주목한다. 법조 인맥이 두터운 삼성그룹이 이 회장 의 귀국시기를 조율하면서 검찰측과 의견을 나눴을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 회장의 귀국 직후 검찰은 ‘당장 소환 계획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여론을 감안했을 때 이 회장의 소환 없이 에버랜드 사건에 대한 조기종결은 불가능해 보인다.
지난해 안기부 도청 사건으로 홍석현 전 주미대사와 이학수 부회장이 검찰에 소환됐지만 결과적으로 처벌을 받지 않은 점도 주목할 만하다. 결국 삼성은 ‘총수 일가 소환’에 대한 절대불가 마지노선을 허물고 수사당국 역시 지난해 두산 총수일가나 홍석현 전 대사의 경우처럼 ‘융통성’있는 방법을 택할 것이란 관측이 재계와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등의 매서운 눈초리를 감안하면 삼성이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에버랜드 건이 간단히 넘어가지는 않을 전망이다. 일각에선 이 회장이 귀국하던 날 에버랜드 캐러비안베이 천장이 무너져 내린 사고를 두고 ‘조용한 귀국’을 원했던 이 회장과 삼성측 인사들의 억장도 함께 무너져 내렸을 거라고 쑥덕거리기도 한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