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기 정권의 기본 골격을 세울 대통령직 인수위의 면면과 활약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활짝 열린 청와대 대문. 청와대사진기자단 | ||
인수위는 앞으로 5년간 나라를 다스리게 될 차기 대통령이 한치의 차질도 없이 전임 정부로부터 국정을 인수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위원회다. 그런 만큼 단순히 대통령직 인수인계가 아니라 5년간의 국정 방향을 만들고 개혁의 흐름을 고르고 나름대로 차기 정부의 골격을 세우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 만큼 정권교체기에 있어 인수위의 파워는 그야말로 무소불위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수위 참여자들은 새 대통령의 측근에서 일하며 차기 정부에서 요직을 맡을 가능성이 높아 누구나 바라는 자리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인수위 활동 기간 60여 일이 정권 5년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말이 나오는가 하면 “과연 어떤 인물들이 인수위에 기용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17대 대통령 당선자가 확정되면 곧 인선에 들어가게 될 인수위의 파워와 책임을 살펴봤다.
앞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측에서는 일부 핵심 인사들을 중심으로 50여 명 규모의 실무팀을 꾸려 대선 이후의 ‘밑그림’을 그리는 세부 작업에 착수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 바 있다. 이 후보는 그러나 혹시 이러한 준비가 자칫 당선을 기정사실화하면서 국민들에게 오만하게 비춰질까 우려해 “대선 이후에 대한 언급은 절대 하지 말라”고 당내에 함구령을 내리기도 했다. 대외적으로 인선과 관련된 언급을 한 것으로 알려진 한 의원은 이 후보에게 불려가 호되게 질책을 당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후보가 “이미 인수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구나”라는 인상을 심어준 것은 사실 상당히 오래된 일이다. 지난 11월 30일 서울 YWCA 대강당에서 열린 여성정책토론회에 참석한 이 후보는 “당선이 되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30% 이상을 여성에게 할당하겠다”고 언급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 11월 20일에는 “방송·통신 분야의 정부 기능 조정은 현 정부의 공약이었지만 사실상 방치되면서 5년이 늦어졌다”며 “새 정부 인수위원회의 최우선 과제로 정부의 기능 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지난 12일 방송연설회에서 “한나라당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꾸리고 있다. 오만하고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다”라며 “국민 여러분이 본때를 보여주셔야 한다”며 공격하고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정 후보 역시 자신이 당선될 경우에 차기 구상안을 제시한 바 있다. 지난 13일 목포역 광장 유세현장에서 손학규 선대위원장을 ‘총리로 훌륭한 자질을 갖춘 분’, 천정배 가족행복위원장을 ‘법무장관으로서 검찰개혁을 확실히 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광주 송정 유세현장에서는 추미애 전 의원을 소개하며 ‘통일부 장관을 해서 김정일 위원장과 남북문제를 확실히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었다.
어쨌든 인수위 구성은 대통령 당선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첫걸음인 것은 분명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우선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설치령’을 상정 의결하게 된다. 설치령은 인수위와 인수위원장의 역할과 직무, 공무원의 인수위 파견, 관계기관 협조, 인수위에 대한 예산·인력 지원 등을 규정하며 공포일로부터 6개월간 효력을 갖는다.
인수위가 구성되면 당선자는 정부의 보고 라인을 사실상 장악하게 되며 직접 국무회의에 참석하지는 않지만 각 부처 장관 등 국무위원들로부터 수시로 업무보고를 받는 등 예비 대통령으로서의 대접을 받는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장·차관을 배제하고 국·실장 등 실무급으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았다. 이를 통해 행정부는 사실상 임기말 대통령보다는 당선자의 입김에 좌우되게 된다. 결국 정권 인수과정에서 대통령과 당선자가 협의와 조율을 거치는 과정이 인수위를 통해 이뤄지면서 인수위는 당선자에게 막강한 힘을 주는 동시에 인수위 자체도 같은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당선자의 공약 또한 인수위에서 검증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것도 인수위가 지닌 중요한 의미 중 하나다. 당선자의 후보 시절 공약이 과연 지켜질 수 있는지를 이 시점에 점검하고 수정하거나 전면 재검토 또는 폐기되는 순간인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경우 인수위에서 공약의 대부분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대폭 수정에 들어간 바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도 인수위가 “노 당선자가 대선과정에서 언급한 1000개 이상의 공약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향후 5년간 민간조달을 합치더라도 150조가 소요될 것”이라며 전면 재조정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인수위의 이런 파워 때문에 여러 가지 부작용을 연출하기도 한다. 역대 정권의 인수위를 보면 늘 거론되던 문제는 공직자들의 ‘줄타기’ 행태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산된 16대 대선 바로 다음 날 한 장관은 노무현 당선자 측근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아랫사람 앞에서 “나도 노무현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며 노골적인 구애작전을 펼쳐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DJ의 인수위가 활동하던 당시에 김영삼(YS) 정권의 ‘문서파기’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여야 정권 교체를 이루어 냈던 DJ의 인수위는 YS 정부로부터 직무를 인수받으면서 “IMF 경제실정 등에 대한 현 정부의 위법사실이 포착될 경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고발 등의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고 행정부 일부에서는 실정을 감추기 위해 문서를 파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DJ 인수위의 지나친 활동은 당시 정부 부처 인사들과도 많은 갈등을 야기하기도 했다. 당시 홍사덕 정무장관은 “인수위의 활동이 80년대 초 국보위를 연상케 한다”며 “인수위가 현 정부의 주요 정책결정 과정까지 문제 삼으려 하는 바람에 공직사회에 커다란 위화감을 주고 있다”고 인수위의 ‘월권’을 지적한 바 있다. 당시 청와대 고위관계자들 역시 “인수위가 법률로 정해진 행정사항 인수는 제쳐두고 각종 비리 및 경제실정을 조사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는 불만을 내뱉었고 인수위 측이 이에 반발하면서 갈등이 커졌다. 이런 갈등은 결국 DJ가 “인수위가 정권인수 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은 정확히 파악해야 하지만 사정기관이나 정책결정 기관처럼 비쳐서는 곤란하다”며 “정권인수를 순조롭게 마친 수 있도록 작업을 신중하고 조용하게 추진하라”고 당부함으로써 일단락됐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